과거의 막을 내리는 베를린, 미래의 막을 여는 베를린


브란텐부르크 개선문(Brandenburger Tor)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자유를 되찾고 베를린은 잿더미의 도시로 남겨지지만 페허로 된 도시
그 한가운데 우뚝 서있던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이 개선문이 그가 겪은 역사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도 유명하죠.
한때는 당당한 개선문으로 또 한때는 베를린 장벽의 상징으로...
길 한쪽으로는 민주주의가 반대편쪽으로는 다른사상의 나라가 공존하던.
그 가슴아픈 시절을 굳굳이 지켜보고만 있는, 1945년이후로 분단된 나라의 분단된 도시 베를린의
상징이였던 개선문은 지금은 통일된 독일의 상징으로 베를린을 지켜보고있다.

1789 - 1791년 건축가 Carl Gotthard Langhans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모델로 이 개선문을 건축하고
그래서 그런지 이 개선문을 두고 Athene aan de Spree(스프레강가의 아테네)라고 부르기도 한다.
1807년 나폴레옹에 의해 4마리의 말이 이끄는 승리의 2륜마차가 파리로 납치되나 1814년
다시 베를린으로 되돌아오고 이로 인하여 이 콰드리가가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서의 승리로 알려져있다.

Pariser Platz/파리져광장과 Platz des 18 Maerz/3월 18일의 광장

Unter den Linden(운터르 덴 린덴)거리를 지나 개선문으로 향하면 바로 개선문앞에 이 광장이 있었다.
관광객들의 집합소인것 같았던 광장. 유태인 출신의 인상파 미술가 Max Liebermann의 집과
대사관건물들이 즐비해 있고 프로이센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중항쟁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광장이 3월 18일의 광장.



페터 페테르의 기념비(Peter Fechter monument)와 동,서독으로 갈라져있던 길

 18세의 어린나이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기위해 장벽을 기어 올라갔다한다.
탈출에 성공하지못한 그는 동독의 병사로부터 총을 맞아 이곳에서 숨지게 된다.
동독인과 서독인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로 인하여 생겨난 기념비.
자유의 상징인 개선문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독일 국회의사당을 옆에 두고있는 이 기념비에
발길이 끓이지 않고 있었다.



브란텐브르크 개선문을 지나면 푸른숲의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라는 지역구가 보인다.
이름이 동물원이라는 구역. 이곳에 2차대전이 끝나기직전 소비에트연방국의
붉은군대에 의해 세워진 전쟁기념관이 있다.
옛날 히틀러정권시대에 샬로텐부르거 쇼세(Charlottenburger Chaussee)라고 이름지워졌는데
지금은 6월 17일 거리라고 부른다.
이 거리에 서있는 기념관에는 전쟁으로 사망한 2500명의 소련병사들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1994년 당시 소비에트언뱡국이 본토로 갈때까지 소련군인들이 근무했다는 곳이다.
현재 이름인 6월 17일은 동독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항의와 자유로운 선거에 대해 항쟁했던 날이며
이 데모를 동독은 소련군대의 힘을 빌려 진압하였다. 이거리는 그때 죽은자들을 추모하고자 지은 거리이름.

동과서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소비에트연합국의 군인도 없어진지 오래되였지만 현재 베를린은
과거의 유물을 잘 간직하고 있다. 추한 과거조차도 굳이 없애버리지않고 잘 보관해두고 있던 독일은
이런 과거를 막을 내리고 새로운 미래의 막을 여는 베를린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  2008년 베를린 여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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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