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델란드 위안부할머니들



내가 살고있는 네델란드는 그리 자랑스러운 과거를 지니고 있지않다.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이것은 단지 네델란드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유럽국가가 그당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발생했던 부당한 정책, 차별대우, 인권문제등으로 네델란드는 한때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었다.
당시 네델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는 공무원,
주재상사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제법 살고있었다.

이리하여 이차대전중 일본의 인도네시아점령으로 인하여 여기에 살던 젊은여자분들,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가슴아픈일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위안부
네델란드어로 Het Troostmeisje라고 표현하는...
Troost는 위안하다, het meisje는 소녀라는 뜻이다.
즉 일본군인들을 위안한다는...



작년 네델란드 외무부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었다.
이방문기간동안 그는 일본정부의 위안부인정과 그분들의 정신적 손해배상문제에 대해
네델란드 정부입장을
강하게 표현했다.
통계에 의하면 약 400여명의 그당시
위안부할머니들이 네델란드에 있다고 한다.
이분들에게는 그렇게 많은시간이
남아있지않다. 고령이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있는 이들이 바라는것은
일본정부의 진정한
공식사과, 그들의 자유의사로 위안부가 된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위안부가 된 이야기를
역사책에 표시되기를
원하고있다.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하고자 하며 탈취당한
인생의
한부분을 정당하게
취급받기를 원하고 있는것이다. 이분들의 이야기가 절대
잊혀져서는 안된다는것이
네델란드 공식정부입장.

많은 이들이 펄 하버(Pearl Harbor)라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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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정원을 손질하면서 좀 특이한 꽃이피는 동백꽃을 하나 구입했다.
네델란드를 꽃의나라라고 하고 수출도 많이 하지만 실상 꽃값이 만만치않다.
제법 키가 큰 동백은 근 40유로나 되니 그건 좀 비싼것 같고 좀 작은걸 하나 구입했었다.



나는 또한 동백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줄은 미쳐 몰랐다. 같은 동백이라도 영국출산지인
동백을
카밀리아 찰스라고 부르고
중국산도 더러는 보였다. 내가 산 동백은 아마 일본에서
접한 동백인것 같았다.

이름이 Camellia Japonica-Oki no nami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일본에 대해 아직도 약간 거부심같은것을 느낀다.
이것은 아마 나의 세대들이 가지는 일본에 대한 감정일것이다.
이 감정은 일본인 개개인에 대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시아에
저질은 행위와
아직까지 한번도 일본천황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비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일등으로 인한 불만같은것이리라.

그 유명한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도 아우스비치에 가서 화환을 놓고 그앞에서 무릎을
끓고 눈믈을 흘리지 않았나.

나찌독일이 저질은 죄악에 대해...
6백만명의 유태인들에게 용서를 빌고 이로하여 골다 메이어 수상마저도 독일땅에
처음 발길을 내딪고....

실지로 빌리 브란트수상은 유태인들에게 사죄하지 않아도 되는일이였다.
이렇게 잘못된것은 잘못된것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는게 정당한 일.

이십오년도 넘던 시절에 남편과 함께 일본을 여행한적이 있다.
친정집을 방문한 기회로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맞기고
싸서 고생한다는 노모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뒤로두고 부산에서 시모노세끼로 가는 배를 타고
열시간도
더 걸리는 긴 여행을 한적이 있다.
시모노세끼, 남편이 보고싶어했던 히로시마, 교토, 나고야등을 한바퀴 둘러봤다.
호텔에 숙소를 정하지않고 자그마한 일본전통 여관에다 숙소를 정하고 그때도
아마 벗꽃이 만발했던것 같았다.
너무도 친절하던 여관장 아저씨.
내 생전 처음으로 타봤던 신강생.
말이 통하지않아 지도를 펴고 보잘것없는
한자실력으로
남편과 둘이 길을 찾아
다녔던일. 밤늦게 돌아다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라면집에 들어가
순식간에
라면 한그릇씩을
뚝딱 해치운일. 너무도 깨끗했던 거리등의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에 고맙기도 했지만
히로시마에 가서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정리 잘되고 원자폭탄으로 죽은 영령을 기념하는 기념비.
어찌 한사람의 한국인의 이름이 기록되여 있지않다는 말이냐.
강제징병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우리들의 조상들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하루하루 고통을 이겨낼수 없었던 그 조상들.
치료는 커녕 죽은이에 대해 단 한마디의 말도 언급되여있지 않았던 히로시마.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푸르졌다 하다가 남편의 팔뚝을 끌어당겨
다시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기도 했던 히로시마.



이 동백을 살때 약간 망설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꽃은 꽃이고 또한 이동백의 희귀한것이 한나무에 두종류의 꽃이 핀다는것.

한가지에는 붉은색, 또 다른가지에는 분홍색의 동백이..

삼월내내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날씨마저 추웠던 이유로 동백이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몇번 봐도 꿈쩍도 않던
이꽃이 어느새
꽃이 피였다. 나는 이런꽃이 좋다. 좀 노블하다고
해야하나. 자신이 만만하게 보이는 꽃, 귀인같은 꽃.
이곳에서 피는꽃은 유럽남부지방이나
우리나라에서 보는것 하고는 또 다르다.

꽃이 나에게 주는 감상마저도...

기후탓일까. 꽃망우리가 한창일때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하니 언제 이것들이 활짝필
기회가 없다.

옛날 오동도나 말타에서 본 동백하고는 비교도 되지않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심상한
야포니카라는 동백.


선운사 동구[미당 서정주작]

선운사 고랑으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욕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공이 쉬어 남았읍디다.

책장을 뒤집어보니 발행이 1974년이라고 적혀져있다. 민음사출판에다 가격이  350원.


우리는 더러는 잊어버려서는 안될일을 잊고 사는때가 있다.
그러나 이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잊어서는 안될일이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서도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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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