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감자를 먹는사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1.28 덧문으로 만나는 네덜란드 (78)
  2. 2009.05.27 고흐의 삶을 찾아서... (34)
다양한 색깔의 덧문으로 네덜란드 둘러보기


 

네덜란드 집들을 보면 아직도 덧문을 사용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옛집들, 이차대전 전후 건축한 집들에 많이 볼수있는 덧문은 현대건축물에

자주 만날수없는 그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것 같다. 굳이 몇년마다

페인트칠을 해야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이런 덧문을 사용하는 집들의 이 덧문에는
현대식건축물에서는 느낄수없는 아름다움과 옛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읽어볼수가 있다.

 

1943년 건축된 집이나 이차대전 폭격으로 1946년 재 건축되였다는 집이다.

 




네덜란드 어촌 볼렌담(Volendam)의 전형적인 집과 덧문

대학도시로 잘 알려진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만난 서민들의 집의 덧문

궁전후문에서 만난 헤이그의 여왕궁전

헤이그의 정치인의 마당이라고 불리우는 비넨호프(Binnenhof)의 일부분입니다.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옛 수녀원, 1647년에 건축되였다는 르네상스식의 수녀원

 
해바라기와 감자를 화폭에 담은 고흐가 잠시동안 머물던곳, 누에넨(Neunen)



우리나라에서 누에넨이라고 알려져 있는 고흐가 2년동안 머물렀던 이곳에는
고흐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기념관에서 많은 고흐의 작품을 구경할수도 있답니다.

19세기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화가의 한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짧은 생을 마친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이 뉴넨(Neuenen, 한국어: 누에넨)에서 1883년에서 1885년까지 
그의 부모와  거주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흐가 머물렀던 준데르트(Zundert)
이곳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것 같지만 실상 이곳에도 고흐의 기념관과
그가 남긴 많은 발자취를 만날수가 있다
.
오늘날 그의 작품 해바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미술가지만
생존했을 당시 화가로서 가난과 비웃음으로 생을 마쳐야 했던 화가의 생을
이 뉴넨(누에넨)에서 만날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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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해바라기와 감자를 화폭에 담은 고흐의 길을 따라서


생의 무상함을 하루아침에 느낀것도 아닌데 고국에서 들리던 슬픈소식은
다시금
인생의 허허함을 느끼게한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한줌의 재로 변하는 죽음이라는
처절한 모습은 나의 인생을 뒤돌아보게 해주기도했다
.

19세기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화가의 한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짧은 생을 마친
고흐의 삶을 찾아 그가 살던곳을 찾아나섰다.

1883년에서 1885년까지  그의 부모와 함께 거주했다는 네델란드의 도시
뉴넨
(Nuenen)이라는 곳을…(한국어: 뉴에넨)

그가 생존했을 당시 그는 화가로서 대우 받지못했다. 
위대한 이들이 살아있을동안 자주 외면당하듯이

주위의 사상과 동의하지 않는다는것은 배신자들이 하는짓이요
같은 행동을 하지않는이는 사회에서 버림받는것이다
.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런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고흐의 아버지가 목사로 지냈던 곳. 이곳에서 그는 병든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도 담기도...


고흐가족이 이곳에 머무르는동안 살던집.

뉴너빌레(NuneVille)라는 이름을 가진집.
고흐의 사랑하던 연인 마고트 베거만(Margot Begemann)이 살았던 집

그가 잠시동안 생활했던 이곳에는 아직도 많은 고흐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난과 외면에 절망했던 고흐의 그림속에 자주 등장하는 풍차,

사랑했던 여인의 집, 그의 가족들과 지내던 집이며 그시절 가난에 찌들린
서민들의 주식이였던 감자를 먹는이들의 그림들이 이시기에 그려진것이다
. 
화가시절의 그는 그의 그림을 담을 화폭마저 마련할 돈이 없었다.
그리하여 동생 테오가 마련해주는 한개의 화폭에 두번씩 그림을 그리기도

 

1837년 건축된 이건물은 고흐의 많은 스케치, 동생 테오와 교환하던 편지등을 보관하고 있는곳으로 
1976년부터 고흐의 자료보전소로 되였다.



이 작은 도시, 돌아가는 골목길마다 나는 그의 숨결을 느낄수가 있었다.

어디선가는 그의 처절한 외침이, 그가 같이 숨쉬던 농부들의 감자심는 풍경이
내눈앞에 펼쳐지기도
.
이곳에 자리잡은 고흐의 자료보전소에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그의 많은 스케치등이 보관되여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풍차

고흐는 살아생전 많은 해바라기를 화폭에 담았다.
그가 그리던 해바라기는 고갱이 아를에 체류하는동안 지낼 고갱의방
장식용으로 그린것들이였다
.
8월의 햇살아래 노란색의 찬란한 자태를 한 해바라기를 고흐는 4번씩이나 그렸다.
그중에서 두개의 작품이 그가 원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들을  그와 우정을 나누고자 하던 고갱의 방에 걸어두기도 했다.
해바라기의 꽃이 시들어지듯이 그들의 우정도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빈센트 반 고흐(1853 - 1890), 해바라기, 반 고흐미술관/Van Gogh museum, Amsterdam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먹물을 뿌려놓은듯한 하늘이 돌아가신분들을 애도하는것같다
.

해바라기의 꽃말이 기다림, 애도 혹은 숭배함이라 하니

그의 그림 해바라기는 가신분들을 애도하는것이며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마음을 뜻하는것이리라
. 
페루의 잉카문명에서는 이 해바라기가 태양신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해바라기꽃이 태양이 있는곳으로 고개를 향한다고 한다
. 

고흐의 해바라기, 가난과 서민의 상징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던 고흐

그가 떠난지도 수없는 밤과 낮이 지나갔건만 우리는 아직도 그의 그림들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고있다. 그가 만났던 생을 화폭에 옯겨놓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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