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명상법의 설립자 마하리쉬와 비틀스

 

 

사는 네덜란드에 일명 TM(Transcendental Meditation) 대가 마하리쉬

(Maharishi)가 거주하고 있었다.  몇 년 전 91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은 뒤

고향 인도로 돌아간…,

이 요가의 대가 마하리쉬와 비틀스는 아주 깊은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반전운동이 한창일 때 평화의 상징, 히피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던 비틀스의
멤버들은  그가 거주하던 이곳을 방문하고 그들의 생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

존 레넌을 제외하고는

마하리쉬는 1990년부터 이곳 네덜란드 남부지방, Vlodrop(프로드롭)이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마하리쉬 방송대학을 설립하고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제자들 또한 오백여
명에 달한다
.

그가 말하던 구호가 지구 상의 평화라고 말하는 것 같고, 이들은 그들만의 지폐도 있다.
60,70년대에 이르러 요가의 대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연예인들. 비틀스,
비치보이스, 미아 패로우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히 연예인들과의  관계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고 알려진 마하리쉬는 그의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인도까지 간 존 레넌을
제외한
, 조지 해리슨등 나머지 비틀스의 구성원들은 이곳을
몇 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출처: life.de

사진출처: hotelspecials.nl
반전운동가
, 평화를 부르짖던 존 레넌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되였지만 이곳 네덜란드에는
아직도 그와 그의 부인 오노 요코가 신혼여행 때 평화를 위해 시위한
,
그 당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침대시위 사진들과 그들이 투숙했던 암스테르담
힐튼호텔에 두 사람이
투숙했던 방마저도 간직하고 있다
.
존 레넌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둘러봐도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젊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줬던  예술가로서
기억하는 나로서는 무척 의미가
있는 곳이라 생각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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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고향 네덜란드 덴 보스[‘s-Hertogenbosch/Den Bosch]

 

 

2주일간의 폭설과 다른 해와는 달리 영하로 떨어진 기온으로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오늘 드디어 큰마음 먹고 여행을 다녀왔다
. 여행이라고는 말할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기차를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알려져 있는
20세기

초 현실주의의 선구자 - 히에로니무스 보스(Jhieronymus Bosch/Jhieronymus van Aken)
고향 덴 보스로 향했다
.
일본을 다녀오신 분들은 아마 일본의 하우스 덴 보스를 방문했거나 알고 있을것 같다.
그러나 네덜란드에 이 일본의 하우스 덴 보스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다.
일본의 하우스 덴 보스는 네덜란드 축소판이라고 말할수

있고  암스테르담의 마두로담과 같은 가족들이 즐기는 테마파크라고 알고있다.

11세기에 설립된 도시 덴 보스 - 도시의 정식명칭이 세토겐보스 - 에는 당시 스페인전쟁,
프랑스전쟁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쌓여진 성벽 유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예전 목조건물로 유명했던 이곳의 목조건물들도 볼수있다
.

유럽 여러나라, 네덜란드 다른지방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시청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중앙역과 도시의 중심지가 잘 연결되여 관광객들이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을것이다.
나처럼 네비게이션을 가지고도 고속도로에서 길을 헤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것 같다.

항상 아름다운 성당의 건축물로 시작되는 유럽의 도시풍경은 어떻게 보면 자연이 아름다운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지루한감도 있을것 같지만 보는 이에 따라
또한 이것을 음미하는
태도에 따라 여행의 가치를 찾을수도 있을것 같다
.


16세기에 건축된 덴 보스 시청사입니다.
이 시청앞 광장에 일주일에 한 두번 시장이 열린답니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처럼...



네덜란드에서는 실내금연이랍니다. 음식점이던 카페던...
건물밖에 테라스를 만들어 놓은곳은 흡연자들을 위한 곳.
이곳에서만 흡연이 가능하답니다.


중앙호텔이라는 호텔. 우리식의 호텔은 이곳에서는 잘 볼수없습니다.









 

여름에는 운하에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배를 타는 이로 즐비하지만 겨울철이라
운하에는 갈매기밖에 볼수없었고 찌푸린 하늘과는 달리 단 하루만의 여행으로도
이주간의 폭설과 추운 겨울을 잠시 잊을수 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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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들의 생선에 대한 지식

 

 

타향에서 생활하면서 제일 그리운것이 음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재료를 구할수 있다면 여기서도 해 먹을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해 먹는

우리나라  음식과 한국에서 먹는것은 어쩐지 그맛이 다른것 같다. 같은 음식,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맛이 다르다고 느끼는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에서 우러나오는것은 아닌지.

육식을 별 좋아하지않는 내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제일 아쉬웠다고

생각했던것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자주 볼수있는 여러가지 눈에 익은 채소와

잘 익은 과일 그리고 좋아하는 갓가지 해산물이다.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와 비슷한 이런곳은 네덜란드 전국에서 볼수있고 이곳에서 튀긴 생선,
절인청어를 먹을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를 방문한다면 한번쯤 청어맛을 봐도
좋을것 같아요.

이곳 사람들은 생선을 잘 먹지 못하는것 같다. 아니 생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그들이 구입하는 생선들은 명태전을 만들때 사용하는 포를 뜬 명태,

가자미, 연어등이 전부라고 말할수있다. 우리들처럼 생선알을 먹거나

생선머리를 이용한 음식을 본다면 질겁을 할것이다.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생선요리를 주문하면 생선머리가 달린채로 생선이 나오는데도 이런 생선요리를

보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기가 일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아주 즐겨먹은 생선이 있다. 우리나라의 생선회와 비슷하다고

말할수 있는 날것으로 먹는 청어. 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냉동하였다가 손질하여

소금에 절인것이다. 13세기에 발견되어 이나라 대표음식으로 통하는

이 청어는 금요일 육식을 금했던 시절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음식이였다.

청어를 흰빵에다 넣어 먹기도 하고 암스테르담지역에서는 피클과 같이 먹기도

하지만 이 절인 청어는 생양파없이는 먹지 않는다.

양파의 독특한 냄새로 생양파를 지독히 싫어하는 이곳 사람들도 이 청어를 먹을때만큼은
청어를 생양파에 꾹꾹 찍어먹는다
. 남이 보던 말던 포크도 사용하지 않은채 손으로
청어꼬리를 쥐고 생선가게나 포장마차앞에서



 

네덜란드인들이 생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지 이곳의 생선요리 또한 아주 간단하다.
그저 기름에 튀기거나 구워서 생선을 먹는다. 남부 유럽지방에서 자주 볼수있는 생선스프,
오징어등을 먹을줄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주변국가와는 달리 쉽게 생선을 구할수 있고
생선 또한  많이 나는 나라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선요리나 생선에 대한 지식은 그리
해박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

 

종종 이태리나 그리스등지를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징어 튀김이 맛이
있더라고 하던것 같다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왜 오징어 튀김이 반지모양 둥근지를

잘 모른다. 오징어 몸뚱이를 썰면 둥근 모양이 되는데도

아예 오징어 다리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먹을줄도 모르지만 오징어 다리에 대한 생각 또한 우리와는 달라 징그럽다고들
하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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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신터 할아버지[Sinterklass, Sint-Nicolaas]

 

대체로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 크리스마스라고 알려져 있다면
네덜란드
최대 명절은 이 크리스마스가 아닌 12월초에 있는 신터클라스날이다.

아이들이 동화책속에서 자주 만나는 산터 클로스가 굴뚝으로 들어와 착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다고 믿는것처럼 네덜란드 아이들은
이 신터 할아버지가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어느 아이가
일년동안 착한 일을 했는지
또 어떤 아이들이 그동안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는지를 일일이 기록해놓았다가 신터클라스날에 선물을 주거나 꾸중을
듣는다고
  믿고 있다.


신터클라스 할아버지가 이렇게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오신답니다. 먼 스페인에서...



별별 모자를 다 쓰고 신터클라스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모습



즈박테 피터(zwarte Piet)라고 불리우는 신터 할아버지를 돕는 이들이 탄 배

오늘은 신터 할아버지가 멀리서 배를 타고 살고 있는곳을
방문했다
. 지역마다 방문하는 일정은 약간 다르지만 대체로 이맘때가 되면 꼭
방문하는 아이들의 존경과 희망의 대상
, 신터 할아버지.
북미에서 유행하는 산터 클로스와는 차이가 있는 이 유럽의 신터클라스는
원래 세인트 니콜라스
{St. Nicolaas}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실지로 성 니콜라스는
터키의 미라
(Myra)라는 지역에 있는 주교의 이름이라고도 알려진다.
가난한 사람과 배를 타는 사람,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다는 이 성자가
왜 스페인에서 온다고 전해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는 없다
.
다만 옛날 배를 타는 사람이 많았던, 이분들이 스페인에서 거주한적이
있었다는 이유로 네덜란드의 신터 클라스가 스페인에서 온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줄뿐이다
. 이곳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믿는 신터 할아버지가 오시는
이날부터 아이들은 장화
,
신발을 응접실에 두기도 하고 신터 할아버지가 타고
오시는 백마에 줄 당근을 신발에 넣어 두기도 한다
.

정성껏 그린 그림이나 신터클로스날 받기를 원하는 소망리스트와 함께

신터클라스의 축제가 유럽 전체에서 행해지고 있지는 않다.

작은 규모로 이 행사를 하는 나라로서는 독일, 벨기에, 프랑스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보다 더 큰 행사로 이곳 네덜란드 최대의 명절인 신터클라스날에는

착한, 불우한 아동에게 선물꾸러미를 안겨줄것이고 그렇치 못한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로 엉덩이 한대를 때린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이 기간만큼은 울던
아이들도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아이들의 존경, 희망의 대상 신터클라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는 즈박테 피터






예전 독일에서 생활하던 시절 이 신터클라스 도우미 신청을 한적이 있다.
평소 아이가 싫어하던 이딱기, 유치원 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큰아이의
이야기와 칭찬해줄만한 이야기를 쓴 편지를 미리 도우미 신터클라스에게 보내고

이 신터클라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약간은 겁에 질린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던

아이가 하는말
엄마, 신터클라스 할아버지 오셨네. 근데 벤츠타고 오셨네

백마는 어디있지?”

신터 할아버지가 많은 아이들을 방문하니 백마가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아마
자가용으로 백마 대신 우리집을 방문하시는가보다
.”
라고 아이에게 말해준적이 있다.

이렇게 묻는 아이에게 현명한 엄마의 대답은 무엇이였을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정도가 되면 이 신터할아버지가 더 이상 스페인에서

오시는것도 아니고 선물은 부모님들,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받는다는것을 알게
되지만 아직도 성인이던 아이들이던 이날만큼은 네덜란드인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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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카니발[carnival], 술만 마시는 사육제인가?

 

11 11(어제) 우리나라에서는 빼빼로 데이였던것 같다.

이곳에도 우리가 빼빼로 데이에 먹는것과 같은 과자가 있고 한국에서

생활할때 더러는 그런 과자를 먹어본 기억은 있지만 이 빼빼로 데이를

알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내가 생활하던 그 시절에는 그저
석가탄신일
,
성탄절등이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 알고 지내던 행사였던것
같은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색다른 행사들이 있는것 같다.
점점
무식쟁이가 되여가는 느낌이다.

어제 이곳 유럽의 몇 나라에서는 카니발 시즌 시작을 알리는 행사가 있었다.

카톨릭 국가에서 행해지는 행사로서 카니발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날이고 이 행사준비로 바쁜날들이 다가오고 있다는것을 알리기도

하는 날이다. 11 11, 오전 11 11분에서 시작되는, 카니발 시즌을

알리는 행사로서는 독일 쾰른에서 행해지는 퍼레이드가 제일 유명할것 같다.

네덜란드에서도 동네마다 카니발을 주최하는 단체에서 행사를 하지만

쾰른에서 주최하는 이 퍼레이드에 비교할수는 없다.





예전 이 카니발을 이해하지 못하던시절 왜 이곳 사람들은 이 카니발 기간동안
이렇게 정신없이 마셔대고 내가 보기에는 무슨 광대같은 옷을 입고 분장까지
마다하지 않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한적이 있다. 그냥 술만 마셔대는것이 아니라
노래, , 평상시 별다른 접촉도 없던 타인들에게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을 거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느낀 시절도 있었던것 같다.

그들이 이 카니발 기간동안 이렇게 정신없이 술을 마셔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이곳 사람들의 음주문화가 우리나라  음주문화와는 다른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 우리나라에서 주말 동료들과 회식을 하거나
술자리를 가지는 문화가 있다면 이곳 사람들은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가진
이들의 주말의 의미는 휴식
, 가족과의 공간마련이다. 우리들처럼 주말에
동료들과 어울린다는것을 이곳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뿐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
직장은 직장, 가정은 가정이다라는 이들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철저한
방지대책이라고 볼수있을것 같다
. 그리하여 이 카니발만큼은 술을 즐기자라는
이 사람들의 생각은 아닌지
. 이 카니발 기간동안 별별 일들이 일어난다.
술로 인하여 실수를 하는 이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일어나는
실수에 어느누구도 거론하지 않는다
.

이날 일어나는 실수등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한번은 행하는 실수로 그저
웃음으로
받아주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해마다 행해지는 카니발 행사에는 매년 수없이 많은 사회적, 정치적 테마로
행사가 이루어진다. 이 카니발 행사동안에는 고위 정치지도자들도
그들의 정치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을 웃음으로 받아 넘겨줘야 한다
.
만일 이 기간동안 일어나는
고위층에 대한 비판을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더욱 심한 비판으로 그들의 얼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일을 감수해야 할것이다
.

생각컨대 서구의 언론 표현의 자유는 이런 행사에서도 자주 만나는것 같다.

올해는 어떤 테마로 정치인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행사동안 거론될지 
벌써 궁금하다.

국민연금정책 아니면 국민건강보험에 대해

*** 댓글에 너무 부담감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댓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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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립공원 메인웩[National Park De Meinweg]

 

 

흔히 국립공원이라면 넓은 면적의 땅에 울창한 숲 혹은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
볼수있는 높은 산
, 그 산에서 만나는 많은 나무, 거대한 바위등을 연상할것 같다.

면적이 좁고 산이 없는 네덜란드에서는 그런 국립공원은 볼수없다.
남쪽지방에서 볼수있는 우리나라의 언덕정도의 산이 있을뿐.
산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벨기에나 독일로 여행을 가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에는 몇개의 자연환경보호지역으로 정해진
유명한 국립공원을 더러 만날수있다
.






비가 많이 온 탓인지 군데군데 버섯을 볼수가 있었다.


유명한 미술관으로 잘 알려진 크롤레 뮬러(Kroeller-Mueller)가 자리잡고 있는
호게 벨루웨(De Hoge Veluwe)가 그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살고있는곳에서 갈수있는 국립공원이 두어개 있다. 그중 이 메인웩이라는

국립공원은 독일국경근방에 자리잡고 있는지라 이웃나라 독일인들의방문도 아주 많다.

주말에 이곳 사람들은 산책이나 가족 혹은 친구들과 이런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일을 자주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단 하루만이라도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생각하는것 같다.











이 국립공원을 가로질러 달리던 옛 철길이 있다.
이 철길은 벨기에 안트웨르펜,
예전 유럽 최대공업지대인 루르지방까지
연결시켜주었던 철길이였으나 사용하지 않았던것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철길사용을 원하는 이들이 더러 생겨났다
.

그러나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이곳 주민들의 거세한 반대로
현재 이문제는 희지부지한 상태로 되여버렸다
.
한번 파괴된 자연은 다시 재생시킬수 없고 또한 재생시킨다고 하더라도
원상태로 복귀하기는 어렵다는점을 들수있을것 같다
.

때로는 만나는 야생동물, 희귀한 나무들로 동식물학자나 조류관찰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이곳에는 상점은 구경할수없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수있던
10월의 단풍은 국립공원에서는 만날수 없었고
갈색잎으로 변한
도토리나무만 만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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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공장에서 건축가들의 집합소로, 세라믹지역구

 

 

네델란드 여러지역에 로마시대의 유적물이 발견되는곳이 많이 있다.

벨기에와 독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마스(Maas)강이 유유히 흐르는
이 유럽연합의
탄생지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도 예외는 아니다.


High Bridge/Hoge brug, 벨기에 건축가 Rene Greisch작품





이 지역구 건축물 자재로는 구리, 아연 그리고 유리로 건축된 작품들이 많이있다.

그러나 이 마스트리흐트는 단지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품이나
고대건축물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축학도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 건축가들의 집합소라고 할만한, 옛 도자기공장 지역을
재 개발한 곳으로 네델란드 건축가 요 쿠넨
(Jo Coenen)의 지휘아래
만들어진 새 지역구이다. 생활공간, 사무실, 상점, 그리고 공공건물,
미술관, 시립도서관등이 이 새로운 지역구에 만들어져 있고
강 건너편의 고대건축물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해도 과언은 아닌것 같다.
 

Derlon(델론극장, 산업문화재이다. 공장의 일부였으나 지금의 소극장으로 사용하고있다)
소극장 뒤에 보이는 건축물이 마스트리흐트의 시립도서관 건축물이다. 이곳에 유럽 저널리스트 사무실이 있고
시립도서관에서는 해마다 세계사진보도전이 전시되기도 한다.

찰스공원에 위치한 아파트단지, 공원과 마스강을 바라볼수있어 서민들의 정서에도 도움을 주는것같다.

이태리 건축가 Aldo Rossi(알도 로시)의 작품

1992광장에서 만나는 구리로 만든 유로 상징타일

1992년 광장에 위치한 빌라 Jaunez, 네델란드 건축가 Jo Coenen이 설계한 곳으로
아랫층은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있다.



유명한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작품
La Fortezza라는 이름의 아파트, 마스트리흐트에 남아있는 방위성의 모양을 딴 건물이라고 한다.
그의 특유한 무지개처럼 둥그런 형식의 건축물인것 같다.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이 마스트리흐트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인것으로 알고있다.

이태리 건축가 마우라 비아바(Maura Biava), 유럽의 상징

한낱 허물어져가는
,
거의 페허가 되다시피한 공장, 이 공장이 있던곳을
이런 도시공간으로 이용된다는것은
좋은 현상인것 같다.
과거를 무척 아끼는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이곳을 둘러보면서 느낄수도 있다.
복귀할 건축물은 복귀하고 새로 건축되여야할 건축물은 건축하는
무조건 새로운것만이  아름답고 유명한 건축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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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파빌리온에서 만난 노동의 가치, 장어와 어부는 어디로

 

 

네덜란드 어촌 볼렌담을 찾아가는 관광객들에게는 이곳의 예쁜집들이나
전통의상이외에 장어
(paling,빠링)전시관으로 유명한
파빌리온
스미트-보쿰(Smit-Bokkum)이라는 집을 한번쯤은 방문한다.

예전 기독교가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줬던 시절 카톨릭을 믿는 가정에서는

금요일에는 육식이 금지되여 있었다.
우리가 절을 방문할때
육식을 하지않듯이..
그런 금요일 식탁에 주로 올려졌던 음식물들이 계란이나
청어, 훈제장어들이다.

이 장어전시관은 현재 5대에 걸쳐  150년간 훈제장어로 가업을 이어가고있다.

물론 이제는 훈제장어만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라 전시관뒤에

레스토랑, 관광객들의 전시관 안내등의 일도 하지만



예전 이 어촌에는 절반이상이 어부들이였고 장어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어부의 일을 이여받을 젊은이들도 없을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통제로 마음대로 장어도 잡을수 없고 대규모의 양식 장어장으로

인하여 어부들은 대형 양식 장어장과는 경쟁할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일들은 어촌에만 해당하는것은 아닐것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농촌모습,
개인이 경영하던 작은 상점들은 대규모의 농장,
대형마트에 자리를 비켜줘야만
하는게 오늘날의 현실.  

노동이라는것이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어느것이 더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고는

감히 말할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장어손질 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동안  이 노동이라는것이 얼마나 고귀한것이고  또한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기도  했다
.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훈제장어의 가격은 엄청난것이였지만
하루 절반이상의 시간을 이 작은 장어에 매달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에
비교한다면 무조건 가격이 비싸다고만 생각할수 없는것 같았다
.

기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장어의 껍질을 손질하고 하루종일 
일하던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얼마나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
도대체 노동이라는 의미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생활하는것 같다.
내 입안에 들어가는 한톨의 쌀알, 한조각의 생선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있는지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것은 아닌지

일하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손놀림은  더 이상 장어를 손질하는 손만이
아닌 예술가가 한 작품을 창조하듯이 그들의 고뇌
, 엄숙함마저 느끼게 해준것 같다.

노동은 고귀하고 어쩌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없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회색빛 하늘아래서 만난 어촌 그 어촌에서 다시 한번 노동의 가치를 생각했던 하루.

장어를 다듬던 그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예전 그들의 생계수단이였던 어업, 어부들이

지금은 점차 사라져가고 관광지역으로 변하는 모습에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마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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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렌담[Volendam]에서 떠올렸던 동해바다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찌푸른 하늘은 아랑곳없이 네델란드 전형적인 어촌,
볼렌담에 우뚝 서있던, 이곳에서만 볼수있는 전형적인 볼렌담의 집들.
유달시리 회색하늘에 두들어지게 나타나던 이곳 초록색의 집들,
옛 네델란드 덧창과 수없이 정박하고 있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작년 한국방문시 둘러보았던 강릉
, 삼척등지에서 만난 동해바다를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

 
찌푸린 하늘아래서도 유달시리 눈에 뜨이던 그림같은 집들

이곳에는 다른 네델란드 지역과는 달리 목조가옥이 많이있다.
비와 바람등으로 쉽게 손실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돌로 만든 가옥보다는 친근감이 들기도...
유달시리 뽀쪽한 지붕모양도 이곳 가옥들의 특징이라고 볼수있다.


유명한 어촌이였던 이곳에는 어촌의 흔적은 점차 사라지고 지금은
관광지로 동화속의 그림처럼 예쁜
, 전형적인 볼렌담의 집들,
전통옷으로 비릿내 나는 어촌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다.
네델란드에서도 무척 보수적인 사람들이 살고있는 이곳에는
타인으로서 생활하기에는 어렵다는 평도 있으나관광객으로서,
바다를 자주 구경할수있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그저 물을 보는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출수는 없었다
.

 
방파제에서 만난 여러나라 언어들, 2001년 카페의 화재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그것을 기념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기념타일들로 만들어진 기념비.  중국어,
그외에도 여러나라의 언어로 이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네델란드식 덧창.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 
 

 
이곳에서 네덜란드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수가 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볼렌담의 전통의상.





예전 사용하던 이런 다리들을 마을 곳곳에 보관하고 있다.
지금은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재라면 문화재라고 할수있는것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예전 모습에 깊은 관심을
둔다는것은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후세에게 이 마을이 어떤식으로
변형했는지를 알려주는데 좋은 역활을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도시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과 같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네델란드 특유의 집,
예전 어촌모습을 조금은 볼수있고 그속에서 고향의 향수같은것도 느껴지던
작고 아담한 마을이 이곳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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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만나는 한국식 김치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

 

 
지금은 가정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 냉장고, 이 냉장고가 네덜란드의
주부들에 의해 사용된지는 이차대전이 지난 대략
60년대쯤이라고 알려진다.
내가 살던 한국에서
처음 이 냉장고를 구입했던것도 70년대인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냉장고가 없던시절, 지금처럼 일년 내내 싱싱한 채소등을 구입할수없던 시절

유럽인들의  음식저장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겨울철 채소를 쉽게
구입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채소를 오랫동안 저장하는 색다른 방법
,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김치와 비슷한 방법으로 저장한,
우리나라의 김치같은 역활을 하는 음식이  있다.

네델란드어로 주어콜(zuurkool), 독일어로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라고 불리는

신양배추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김치단지 뚜껑을 열면 시큼한 김치냄새가 나듯이 이 양배추김치에도
아주 시큼한 냄새가 난다
.
그래서 이 양배추김치에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전 양배추를 절여두던 장독이 지금은 이곳에서 화분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답니다.

다량의 양배추를 잘게 채썰듯 썰어 장독과 같은곳에 차곡차곡 재우고
소금을 많이 뿌려
발효시킨 이 주어콜은 네덜란드인뿐만 아니라 유럽인의
겨울철 비타민 흡수에 도움을 주기도하고 독일국경지대 프랑스 알자스지방
,
독일 바이에른지역등에는 이 음식이 아주 유명하다.
물론 곁들어 먹는 훈제 소세지, 족발, 삼겸살과 머스터드도 빼놓을수 없지만

 

주어콜(zuurkool 독일어: Sauerkraut)

우리나라에서도 이 양배추가 건강에 좋은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도
더러 양배추를 이용한
  샐러드가 있다. 대체로 동유럽 음식점에서
자주 만나는 샐러드지만
요즘은 여름 바베큐에 이 샐러드도 많이 구경할수 있는것 같다. 

 

양배추샐러드:

 

재료: 양배추, 올리브유, 식초, 소금,

파의 파란부분 약간, 사과, 건포도, 마요네즈, 설탕 약간

 

이 양배추 샐러드에는 꼭 올리브유를 사용해야만 제맛이 난답니다.


양배추에 올리브기름, 식초, 소금을 넣어 절여둡니다.

양배추와 파를 이용한 양배추 샐러드

양배추와 사과를 이용한 샐러드.

양배추와 마요네즈를 이용한 양배추 샐러드

양배추를 채설어 올리브유, 식초, 소금을 넣어 장시간 절여둔다.

양배추의 질에 따라 3 -4 시간 절이기도 하지만 이 샐러드는 오래 절여두면
더 맛이
있는것 같아요.
식성에 따라 커민 혹은 큐민(중국어로는 쯔란/위키페디아 참조)
넣기도 한답니다
.
절여둔 양배추의 물기를 없애고 잘게 쓴 파의 파란부분을 넣기도 하고

식초의 신맛을 없애기 위해 사과를 이용하거나 물에 불인 건포도를 넣어
나물무침 하듯이 요리하면 된답니다
.
때로는 위의 절인 양배추를 마요네즈로 무쳐  샐러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샐러드보다는 칼로리가 좀 있을것 같아요
.

 
원래 이 양배추 샐러드는 감자튀김이나  프랑스 바게트빵이 더 어울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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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있는 네덜란드에는 동성애자로서 사회에 활약하고 있는
유명인사들이 더러 있다
.

사회 여러분야에서 이런분들을 만날수 있지만 유명한 프로듀서,
영화감독, 가수등 연예인부분에 활약하고 있는 이분들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
게이나 레즈비언 생활을 선택하고 이런 삶을 누리는것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일이고 이분들이 선택한
  생활방식과 그들의

사회적활동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두고 있다고  볼수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지위나 인식이
어느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실상 카톨릭사상이 삶을 좌우한 시기
이곳에서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는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자식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된 부모들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타인에게 이런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이것이 무슨 고칠수없는 고질병
.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지독한 병인양 
당당하게 고개를 들을수 없던 그런 시절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당시
그들에게 생소하게만 들리던 이 호모나 레스비언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있고 사회적으로 그들의 위치도 인정받고 있다
. 
더러는 교육자의 자격으로 교단에 서는 동성애자들이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지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사건들에 눈살을 찌푸린다
.

 
Prinsengracht, 프린센그락터, 암스테르담

어려서부터 이성애만이 정상적인 가족생활이라고 교육 받고 성장하는
사람들로서는
동성애자의 생활은 비정상적이고 더러는 이런분들의 만남에
거부감을
느낄수도 있을것이며 이것을 도덕적인 타락이라고 극단적인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극단적인 단정을 내리전에 얼마나
많은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에 의해
  피해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한번쯤은 사회의 약자
, 소수집단의 생각, 삶도 생각해보는것이
좋을것 같다
.

이들의 외면적인 삶의 방식이 흔히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있는
한 가족 즉 남과녀로 이루어져 있진 않지만 이런 삶을 선택하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할것이고 이런일은 개인의 권리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

자신의 삶을 선택할수 있는 자유, 누구도 이런 자유를 박탈할수도 없고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나의 자유, 나의 삶의 방식이 옳고 타인으로부터 침해 받기 원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삶
, 생활방식,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단지 삶의 방식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차이점이 있을뿐 
범죄도 아니고 외향적인 생활태도로 이런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것은
인식부족이라고 생각하며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엮여간다고
차별대우를 하는것은 오히려 인권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마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게이프레이드가 있다.

올해도 암스테르담 시장의 축사로 막을 연 이 게이프레이드에는 경찰,
군인들도 참석했었다.
그들의 군복과 경찰제복을 입고..

그러나 이날의 주인공은 암스테르담 시장도 아니고 군복을 입은 군인도 아니며

공공질서를 지휘하는 경찰들도 아닌 세계각처에서 참석한 동성애자가 주인공이였다.

또한 이런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같이 즐기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따뜻한 정, 동성애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대우,
사상과 생활태도에 편견의 치우침 없이 받아들이는 표용력
즉 이런것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 자유를 지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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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팬케이크 요리법

 

네델란드에서 생활하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이곳 여성들은 요리를
잘 할줄 모르거나
부엌에서 시간소비 하는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프랑스, 이태리, 그리스등 남쪽지방에서 흔히 볼수있는 생선요리나
여러가지 종류의 야채마저도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요리해버리는것 같다
.
이런 네델란드인들의 음식문화에서도 팬케이크만은 아주 유명하다.
만들기도 쉬울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이 팬케이크를 먹을수 있는
레스토랑을 쉽게 발견할수있다
.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어린아이들,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때 쉽게 만들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었다가 차거운 팬캐익도 즐겨 먹기도 한다
.
 

팬케익의 재료:

 

밀가루, 계란, 우유, 사과, 치즈, 베이컨, 햄등


사용한 치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역 벰스터(Beemster)지역에서 생산되는
벰스터치즈. 치즈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없읍니다.



이곳에서는 밀가루 대신에 팬케익만드는 가루를 마트에서 구입할수
있지만 그냥 밀가루를 사용해도 상관없읍니다.
대체로 요리할때 눈짐작으로 하기땜에 우유의 분량을 어느정도라고
정확히 말할수는 없지만 500g의 가루에 거의 1L의 우유가 필요한것
같아요. 계란은 한꺼번에 밀가루반죽에 넣어도 좋고 아니면
계란흰자를 거품을 내두웠다가 밀가루반죽이 다 된다음에 계란 흰자위를
넣고 주걱으로 저어주면 팬케익이 더 맛이 있어요.

기름을 팬에 약간 두르고 베이컨을 노릇하게 구운다음 밀가루 반죽을
넣어 어느정도 구워진다음 치즈를 위에 뿌려요.



팬케익을 먹을때 이곳에서는 흑설탕, 잼, 사과와 배로 만든 시럽을 많이
이용하고 가루설탕을 뿌려서 먹기도 한답니다.


대체로 이곳 네델란드인들은 이 팬케익을 먹을때 푸른완두콩스프를
즐겨먹는답니다. 족발을 넣고 훈제소세지까지 넣어 먹는 이 완두콩스프는
겨울철 네델란드인들에게는 뺴놓을수 없는 음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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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나무로 만난 인연

  

이년전 오랫동안 망설였던 정원을 새로 만들었다. 정원설계사를 통해

정원을 꾸미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가격이 엄청난지라 이곳 저곳 취미로

정원설계 하시는 분을 수소문 하던중 시누이의 도움으로 어느 정원사를

소개받았다.

2년전 한국방문중 만난 우리나라의 나무와 꽃들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이분과 몇차례 만나고 무슨 나무를 심을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

기후가 우리나라와는 다르고  내가 좋아한다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를

전부 구할수는 없지만 더러는 예전 우리나라에서 보던, 추억이 담긴 나무들이나

꽃들을 심고자 상의하던중 이분도 한국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실상 네델란드에서 여행자 입장으로 한국을 방문하는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어디를 구경하고 왔는지, 무슨 음식이 가장 맛있었던지를 묻는 나에게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이분의 딸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분에게는 한국에서 입양된 딸이 있고 지금은 성인이 된 딸아이의 고향,
우리나라를 5주동안 방문했다고

물론 딸의 부모를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도 안고

 

현재 네델란드에는 약 1000여명의 한국 입양인이 살고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네델란드뿐만 아니라 독일,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그리고 룩셈부르크등

유럽의 많은 나라에 우리나라 입양인들이 살고있다.
더러는 사회적 성공을 한 사람들도 있고 벌써 성인이 되여 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많은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중에는 이분의 딸처럼 성장하면서
생에 대해 방황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생김새가 이곳 사람들과
전혀 다른 나라에 와서 생활한다는것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을수도 있을것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여 성장기에 많은 고통을 받는 이도 있다
.
더구나 자신의 생부모를 찾을 방법이 전혀없는 입양인들이 받는 정신적 고통은
무척 큰것 같다
. 이분의 딸도 생부모를 찾을만한 서류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아마 미혼모나 절실한 상황에 부딪힌 부모로 인하여 이곳으로 오게 된것 같다고 한다.
이분의 딸이 우리나라에서의 받은 인상은 대체로 긍정적인것 같았다.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입장에서 보는 우리나라는 마치 몇년지기 친구를 만난처럼
정이 들었다고도 한다
.
가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극소수 사람들의 눈길을 제외한다면….

 

해외입양에 대한 찬, 반론의 논의는 입양인들 사이에도 치열한것 같다.

내나라에서 비록 물질적, 정신적 타격을 받을지언정 같은 피가 섞인 이들과
생활하는것이 아이에게 이롭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
,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느니
차라리 비록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다른 생의 기회를 주는게 아이에게 이롭다라고 주장하는 분들
.
어느 주장이 옳은지는 쉽게 판단할수 없지만 입양인의 문제에 앞서
이런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현재 우리나라의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수없지만 내가 생활하던
80년대 이전, 우리나라의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던것으로 알고있다
.
이것이 철저한 유교사상에 의해  생긴 전통, 문화에서 유래된것인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힘의 과시인지는 정확히 알수없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태어난 아이를 정당하게 교육시킬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수 없는 사회제도, 사람들의 인식등이 꼭 지켜야 할 전통,
문화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유, 인권, 민주주의에 방해되는 전통이나 문화는
과감히 변신시키는 것도 좋을것이라 생각된다
.

 

그분의 말씀이 한국에서 배양나무를 많이 봤다고 한다.

백일동안 꽃이 핀다는 백일홍.

작년 불영사에서 만났던 그 백일홍처럼 멋진 꽃을 피우지는 못하는

우리집 배양나무지만 이 나무로 만난 나와 생김새가 똑같은 또 다른 한국인.

그 아저씨의 딸도 무궁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리랑의 노래를 들어면 눈물을 흘리는 한국인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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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지 정확하게 기억할수 없지만 미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것 같다.

20세 초반에 만난 고흐, 고갱, 세잔느 그리고 나이가 좀 들면서 피카소로
(특히 그의 게로니카에), 이십대 후반을 지나면서 뭉크에 푹 빠져살았다.

 

여름방학때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와 끊임없는 사회, 문학에 대해 토론도 하고

(물론 소주와 포장마차 떡볶이, 어묵도 빼놓을수는 없을것같다).

무슨 귀중한 보물인양 다 낧아빠진 전 혜린씨의 책을 벼개머리위에 놓고

보고 또 보고하던 시절

 

네델란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당시 네델란드 미술가라고는 램브란트(Rembrandt),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베르메르(Vermeer),
몬드리안(Mondrian)정도 알고 있었을뿐



출판사: Waanders uitgevers, 저자: Willemijn Stokvis
 

20십년이 지난것 같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크로아티아를방문한적이 있다.
그때 만난 젊은 부부를 통해 또 다른 네델란드 현대미술에
접할 기회를 가질수가 있었다
.
몇번의 전화통화로 안부를 묻곤 하던차 마스트릭트에 사는 그 부부집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때 이 젊은 부부의 집에 걸려있던 그림.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색채.  젊을때 뭉크의 절규를 보고 한동안 넋을
 잃어버렸던것과 같은 충격을 이 그림을 보고 받았던것 같다
.

 


과일접시와 커피잔으로 사용하고 있는 코브라 멤버 코르네유의 작품



내가 처음으로 본 코브라(Cobraa)멤버의 한사람인 코르네유(Corneille)의 그림.

중산층으로 생활하는 이로서는 그런 엄청난 거액의 돈으로 이 화가의 작품을

구입한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없는 일이지만 이 그림으로 인하여 나는

코브라 그룹(Cobra group)도 알게 되였고 또 이 코브라그룹으로 인하여

네델란드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카렐 아펠에 대해 알수가 있었다.

 

Karel Appel:

 

Christiaan Karel Appel(크리스티안 카렐 아플/네델란드어)은 암스테르담
출생으로
200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생을 마쳤다.

활동기간은 1946년에서 2006년이며 화가 그리고 조각가로서 네델란드
현대미술사에서 몬드리안
(Mondrian)과 함께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스타일은 아주 추상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화가 자신은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예술가나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용실을 경영하던 아버지를

도우며 유년기를 보낸 그는 화가의 꿈을 잊을수없어 암스테르담의
레익스아카데미
(Rijksacademie)에 입학했다.

물론 이로 인하여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전해지지만

이 대학시절 아펠은 코르네이유를 만나고 그후 콘스탄트
(이분들은 코브라 창립멤버들이다) 1948
Experimentele Geoep Holland를 창립한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인간, 동물 그리고 해.

강렬한 색채를 주로 사용하고 2차대전이후의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의 대가로

잘 알려져있다. 또한 아펠은 피카소나 마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Dutch Abstract Expressionist라고 그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Cobra는 코펜하겐(Copenhagen), 브뤼셀(Brussels), 암스테르담(Amsterdam)

세 도시의 이름입니다.

네델란드에서 그의 그림을 감상할수있는 미술관;

 

Stedelijk Museum, Amsterdam(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Gemeentemuseum Den Haag(헤이그 시립미술관)

Cobra Museum, Amstelveen(암스텔베인 코브라미술관)

Stedelijk Museum Schiedam, Schiedam(스키담 시립미술관)


 

 

 

이글은 한번 발행된 글이나 발행중 수정하는 바람에 글이 사라져버린 이유로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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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프린센그락트 263(Prinsengracht 263).


이곳이 안네 프랑크가 나치정권을 피해 2년동안 몸을 숨긴곳이다.

안네가 13살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기록된 그녀의 이야기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아직도 이 소녀의 이야기를 지구

어디선가 읽고있다.









그녀의 일기장에 이렇게 감동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우리는 아직도
그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나.


출판사: Contact, Amsterdam, Het Achterhuis, 안네의일기
안네의 일기를 읽는 이들은 그녀의 일기속에서 높은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려고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숨소리를 죽이고 그녀에에 주어진 작은 공간속에서 친구를

그리워하고 공포속의 생활을 표현하는 이 일기장속에는

인류역사 최초로 만들어진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기위해 만들어진

가스실, 유태인학살, 파시즘을 만난다. 그녀의 일기장을 읽고 또는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이런 엄청난 사건들에 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우리들이 살고있는 지구 어디선가 진행중인 파시즘에 치를 뜨는것이다.

 




실상 안네 프랑크의 집 혹은 박물관의 건물자체는 별로 볼것이 없다.
네델란드를 상징하는 램브란트, 반 고흐의 그림과 같이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도 전시되여 있지않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가파른 계단, 숨이 막힐듯한 공간, 그곳에 전시되여 있는

사진들과 책상등으로 안네가 살았던 그 시절의 상황을 상상해볼뿐이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외면의 초라함에는 아랑곳없다.

초라하다면 초라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하여 일년에도 수천만명이 방문하는

이유가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지구상에 다시는 이런 슬픈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인것같다.


이곳은 그저 이름난, 즐기는 관광장소만은 아니다.

이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 오늘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곳이다.

안네 프랑크(Annelies Marie/Anne Frank, 아넬리스 마리 프랑크)

1929 6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

1945년 베르겐-벨젠(Bergen-Bersen)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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