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퇴치운동에 선구자역활하는 네델란드 왕자비[로렌티엔왕자비]

 

만일 내가 글을 읽고 쓸수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글을 읽고 쓸수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장의 신문을 읽는다거나 길거리 붙어져있는
간판을 보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
이것은 마치 배가 고프면 본능적으로 밥을 먹는것처럼 글을 읽고 쓸수있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아직도 우리들 주변에는 글을 읽거나 쓸줄 모르는 분들이
예상외로 많은것 같다
. 소위 우리가 말하는 21세기,
극도로 문화가 발달된 선진국가에서도 이 문맹자들이 있다고 말한다면
많은 분들은 놀랄것이다
.


사진출처: bereslim.nl
네델란드도 예외는 아니다.

다민족으로 이루어지는 네델란드사회에서는 이 문맹자의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약 1천오백만명의 문맹자들이 있다고한다.
이중에는 네델란드인들도 있지만 많은 이민자들에게 이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60,70년대 노동자의 신분으로 이민온 이들은 네델란드어를 배울 시간과
기회가 없었을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향에서도 문맹자였던것이 가장 큰 이유다
.

 

이런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서는 네델란드 왕실가의 로렌티엔왕자비

(H.R.H. Princess Laurentien).

여왕 베아트릭스의 막내아들(Prins Constantijn, 콘스탄테인왕자)의 부인으로

그녀는 이 문맹퇴치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2004년 문맹자퇴치운동의 하나로 설립된
“The Reading & Writing Foundation/Stichting Lezen & Schrijven”을 통하여
그녀는 문맹자들의 심각한
문제를 큰 사회적이슈로 부각시켰다.

세자매의 어머니로서 또는 그녀의 높은 지위로서 그녀가 활동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일,

책을 읽으므로 책의 중요성과 읽고 쓸수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하고 이 문맹퇴치운동에 그녀의 지위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그녀가 쉽게 접할수있는 국제적인 단체를 통해 아직도

후진국의 남녀평등문제로 여성이 쉽게 접할수없는 교육문제,
이로인하여 발생하는 여성들의 사회와의 단절된 생활등으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타파하고자한다.

 

사진출처: pearlofafrica.eu
문맹자들의 사회진출은 무척 어렵다
.

이런분들은 사회진출마저도 꺼리는 형편이다.

문맹이 무슨죄가 되는것처럼 항상 두려움속에서 생활하고 사회생활마저도

피하는것 같다. 이리하여 더욱 고립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런

문맹퇴치운동은 아주 환영받을만하다. 이들도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워킹 클라스 히로우(Working class hero)인것이다.

 

사진출처: vandermeerverspreding.nl
글을 읽고 쓸수있다는 문제는 지능의 문제만이 아닌것으로 이곳에서는 분석한다
.

주위환경, 즉 책을 잘 접하지않는 부모들의 태도

이런 어린이들에게 학교에서의 관심부족

이민자 2세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언어문제등이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라고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먼 친척을 공항에서 잠깐 만난적이있다.

건강하게 생긴 아이를 동반한 이 친척은 아이에게 굉장히 신경을 쏟는것 같았다.

아이가 무척 산만하고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수없어 친척에게 한마디 물어봤다.

조심스럽게

아이가 아주 건강하고 활동력이 대단하다고

나를 휠끔 쳐다보며 말하는 이 친척의 대답.

아이가 건강하고 활동력있는 아이가 아니라 ADHD
디스렉시아
(Dysiexia)가 있다고

그래서 단 일분도 이 아이에게 눈을 뗄수가 없다고

글을 쓸줄도 읽을줄도 모르는 이 아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차거운 눈길에
이민마저 생각하고 있다고

이말을 듣는순간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디스렉시아로 인하여 이 아이는 글을 읽을수도 쓸수도 없는
문맹자의 일원으로 사회에 내동댕이 쳐지는것이다
.

내주위, 우리들의 사회에 글을 읽을줄 모르는이, 글을 쓸줄 모르는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문맹은 전염병도 아니고 그들의 죄가 아니라는것.

당당하게 사회구성원으로서 일할수있는 문맹자들에 대한 관심,
문맹자라는 이유로 사회에 버림받는 이들의 경제적인 문제,
그리하여 일어나는 빈곤문제점을 막아야하는것이 우리들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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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암스테르담 담광장에 서있던 자유의 상징, 여왕왕궁[Koninklijk Paleis op de Dam]





수리로 새롭게 단장한 암스테르담 당광장
(Dam, Dam Square)에 서있는

여왕의 왕궁이 관중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권위의 상징인 왕궁이

일반인들에게 왕궁의 문을 연다는것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왕실에 운영되는것으로,

왕실유지비에 대한 의혹심과 일년에도 헤아릴수조차 없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암스테르담의 경제, 문화 그리고 이 관광의 도시 이미지홍보에도

한몪하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든다.




한번 다녀가는 관광객이 뿌리는 금액들도 결코 무시하진 못하겠지만

네델란드를 다녀가는 관광객이 이나라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가는것을

분석해보는것도 중요한 관광사업의 업무라고 볼수있는것 같다.

왕궁앞에 벌여지는 각가지 행사들, 10m거리도 되지않는곳에서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들
, 왕궁앞에 세워져있던 많은 자저거들은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을 대표한다고도 볼수있을것 같다.

방문하는 관광객이 단 한번의 방문으로 끝이나는것이 아니라 재방문의 가치를

자유를 만끽하는 이런 거리풍경에서도 느낄수 있을것이다.
이런 방문객들의 태도가 결국 영구한 관광사업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으로 생각된다
.


 


암스테르담 담광장에 있는 이왕궁은 여왕의 집무소 역활을 한다.

헤이그에 있는 다른 두개의 왕궁처럼.

여왕집무소이외의 왕궁의 주요역활은 네델란드에서 일어나는 큰행사,

해외귀빈들을 모시는 장소로 주로 사용되고있다.

전쟁기념관 건너편에 서있는 왕궁은 야곱 반 캄펜

(Jacob van Campen, 한국어: 제이콥 반 캄펜) 1648 – 165년 건설한것으로

원래는 암스테르담 시청사였다.

겉으로 보는 여왕의 왕궁은 그리 화려하다고는 말할수없다. 회색이나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겉모양의 건축물은 왕실을 대표하는 왕궁의 화려함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허나 실내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주치는 거대한 대리석의 기둥들, 바닥.
천장을
장식하는 어마어마한 천장 프레스코, 수없이 많은 왕실소장품들,

옛 네델란드 가구들은 네델란드 황금시대를 연상케한다.

13,659개의 기둥과 석재로서는 독일의 벤다임지역에서 생산되는 사암을
이용했다는 이곳은 한때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의 많은 후보가운데 속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행정목적의 건물이기도 했다
.




 


네델란드여왕 베아트릭스가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것은 아니였다.

여왕과 이 암스테르담시와의 관계도 그리 좋았던것도 아니였고.

그녀가 독일귀족태생 클라우스 본 암스베르그공(Claus von Amsberg)과의

결혼사실이 발표되였을 당시에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그녀의 지위마저 흔들렸다.

그이유로서는 이차대전의 후유증, 클라우스공의 독일출생이라는점 그리고
이분의 젊은시절 나찌정권 청년단가입등으로

그러나 클라우스공의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가 생존시 왕실의 보수적인 이미지타파,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참여등으로 한때는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화려한 왕궁에서의 왕실로서가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를 중요시하고

서민들과의 거리감을 타파하고자 네델란드왕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직접 조각을 하는 베아트릭스여왕의 예술에 대한 관심도는 너무 잘알려진 사실.

 





바닥에 쓰여진 재료로서는 대리석이고 이바닥에 두개의 반구가 그려진 지도가있다.

서반구와 동반구.

이것은 당시 네델란드 식민지정책과 영토에 대한 지도이다.

네델란드역사를 잘 반영해주고 있는것 같다.


네델란드 왕궁들로서는:


Paleis op Dam{Royal Palace}, Amsterdam(암스테르담),

여왕의 집무실로 사용하고있다.

Paleis Noordeinde, Den Haag(헤이그), 여왕의 집무실

Paleis Huis ten Bosch, Den Haag(헤이그),

하우스 텐 보스라는 왕궁.

많은분들은 일본 나가사키, 사세보(Sacebo)시의 테마파크 하우스 텐 보스를

알고 있을것이다. 이곳은 네델란드 왕궁의 이름을 빌린, 네델란드의 한부분을

복사해서 만들어놓은곳이다.

De Eiken, Wassenaar(와세나르)

Huis Het Loo, apeldoorn(아펠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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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여왕의 날을 돌아보면서...


실상 이 포스트를 쓰면서 이글을 올려야 하나 올리지 말아야 하고 한참이나 망설였다.

4 30일은 네델란드의 큰 축제가 있는, 수십만명의  네델란드인이 움직이는 공휴일,

여왕의 날을 즐기는 날이다.

유럽의 다른나라들이 5 1일이나 2일을 노동절로 5월을 맞이하지만 네델란드에서는

이 여왕의 날이 모두가 즐기는 국민행사의 날로 되여있다.

 

현 네델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의 생일은 1월이지만 여왕의 할머니 윌헤미나(Wilhelmina)때부터
치루던 여왕의 행사를 베아트릭스의 어머니였던 율리아나
(Juliana)여왕의 생일을  
국가공휴일로 정하고 왕실이 궁전에만 거주하는 왕실로서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국민들속에
, 국민들과 함께 하는 왕실로 변화시켰던 대 축제이다.

 

70년대, 80년대 무척이나 논쟁의 대상이 되였던 네델란드 왕실에 실상 나는 그리

찬성하는편은 아니지만 유럽의 다른 왕실과는 또 다른면을 보여주는 네델란드왕실은

좀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것은 거창한 화관을 쓰고 번쩍이는 금으로 만든 의자에만 
앉아있는 여왕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예술방면
, 인권문제에도 많은 활동을 하는

여왕이기에

가끔씩 왕실에 사용되는 비용에 적잖은 의견충돌들이 있다.
이 비용들이  우리들의 세금으로 충당되는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지불하는 세금이 어떤식으로 사용되여지고 있는가를

우리들은 알아야 할 의무가 있기때문이다. 그리하여 왕실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더러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왕실에 찬성하는 편이다.


 
기차를 탈려고 기차표를 끓는 순간부터 이건 뭐가 잘못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하지 못할만큼 인파로 꽉찬 역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차안은 발도 뒤딜곳조차 없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아이트호벤역을 내려서도 내발로 걸어가는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밀려서 시내로 밀려들어갔다.

그러나 내눈에 보이는것은 사람들 그리고 또 사람들 아니 그저 머리만 보였다.

역앞광장에 있던 무대에 흘러나오는 노래소리, 이곳 저곳  내동댕이쳐진 맥주병,

잡다한 쓰레기들. 그러나 그런것들은 잠시동안 나의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것일뿐

 

같이 갔던 친구가 귓전으로 속삭이듯이 소식을 전해준다.

여왕이 방문했던곳에, 행사가 한창중인곳에 큰사고가 났다고

희생자가 17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속에는 죽은이가 현재까지 5명이나 되며 12명이 중상태로 병원에 있다.

소식에 의하면 왕실에 불만을 품은이의 행동으로 이런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매년 치루는 행사, 그동안 수없이 본 여왕의 얼굴에 오늘같이 슬픈얼굴을 보는것은

좀 드물었던것 같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차라리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에

더 공감한다.

축제가 있어야 할곳에 이런 대형사고가 생겼다니...
더우기 굉장히 개방적이고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노력하는 더치사회
,
개인의 자유를 무척이나 귀하게 여기는 네델란드에서
이런일이 일어났다는것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텅빈 시청앞광장을 보면서 한사람의,  한순간의 잘못으로 나와 네델란드가 울고있었다.


*** 이 사건으로 인하여 모든 행사는 중지되고 네델란드국민은 슬픔에 잠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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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