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레마겐시 언덕에서 만난 한스 아르프[Hans 혹은 Jean Arp]미술관 



독일국도를 따라 레마겐(Remagen)시를 가는도중 한쪽으로는 라인강,
그 반대편 언덕위에 우뚝 서있는, 지중해연안에서 자주 만날수있는

노란색에 가까운 한스 아르프미술관을 볼수있다.

독일, 프랑스계 화가, 조각가 혹은 작가로 알려진 다다이즘의 대표적

멤버중의 한사람인 한스 아르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미술작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알고있을

네델란드에 최초로 다다이즘을 소개한 테오 반 두스부르그(Theo van Doesburg),

스위스 바젤에서 만나는 틴겔리(Jean Tinguly)등과 같이 한스 아르프의

이름은 미술계에서는 거론할 필요조차없는 유명한 예술가이지만 이분의
이름을
딴 미술관 또한 이색적이다.







도심지 한복판이나 거대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그런 미술관이 아닌
예전 간이역으로 사용하던곳을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
에 의해
재 건축된 이 미술관은 나의 미술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려준것 같다
.

미술관 뒷쪽으로는 아직도 철길이 있고 기차가 다니지만 국도에서 바라보는

미술관은 숲과 웅장한 나무로 둘러싸여 자연속에서 그림을 감상한다는
느낌을
줄뿐만 아니라 허물어져가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는
간이역을
미술관으로 설치했다는 그 자체가 다른 미술관과는 또 다른점을 보여준다.

 

흔히 미술관이라는것이 고정된 관객, 미술을 이해할줄 아는 사람들만이 방문하는것으로

생각되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 미술관은 미술관이 더 이상 옛 명화만 감상하는

소수의 사람들, 엘리트의 집합장소가 아닌 대중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소통의 장소, 작품을 바라보면서 소위 예술평론가에 의해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그런곳이 아닌 개인의 생각, 느낌에 따라 작품을 감상할수 있는 그런 느낌을 주던

미술관이였던것 같다.

 

예술, 문화는 우리들의 생과 그리 멀지않는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곡예사의 줄타기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도 일종의 예술이 아니던가.

미술관에 단지 작품만 전시되고 관람객이 없는 미술관은 미술관으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관광명소로 활용되는 미술관은

보는이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만들기는 하지만 소통이 되지않는 하나의 건물일뿐.

그런점에서 이 한스 아르프미술관은 기성의 모든 도덕적,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던 20세기 아방가드 거장의 작품과 일치하는것 같았다.



스위스 바젤에서 봤던 틴겔리 미술관/페품으로 작품을 만드는 틴겔리:

http://waarheid.tistory.com/admin/entry/edit/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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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광장에서 만난 스콜피언스[Scorpions]의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


 

네덜란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DJ들이나 예전 비너스를 외치던 쇼킹블루,

골든 이어링, 두번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우터 하멜등이 있다면

독일음악계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밴드들을 더러는 만날수있다.

그중에서도 즐겨듣는 이 스콜피언스의 노래들.

 



체크포인트 찰리


작년 베를린여행을 하면서 유달시리 분단의 흔적, 그들의 과거 발자취를
잘 보관해 두었던 독일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어느듯 번화한 쇼핑센터로
발전해가는 포츠담광장에서 문득 떠오르던
, 지금은 60을 넘어선
wind of change를 부르던 스콜피언스를 생각했다.
더구나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나 아직도 남과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나로서는 이들의 노래에 눈물을 흘릴수밖에

나는 아직도 DMZ를 방문하지 않았다.

거의 매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지만 이곳을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언젠가 한번은 내눈으로 봐야할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 방문에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
.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그시절, 뉴스를 통해 그 역사적인 사건을 시청하면서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이 철의 장벽이 무너지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생각, 사상,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들은 우리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들이다.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언어와는 너무 먼거리에 있다.

이런 언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제는 사상, 이데올로기에만 집착할 시기는 지나간것 같다.

 

아직도 젊음이처럼 가죽바지에 당당히 무대에서 그들이 부르는 변화의 바람,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의 외침이 아직도 내귀에 쟁쟁하게 들리는것 같다.

우리들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환성을 부르짓을 날이 올것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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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vision Song Contest 2009

올해로 54번째로 열리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유럽방송연맹(EBU)의 시청자들이 참가하는 무대에서 각 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한때는 유럽 최대의 음악축제였다.
지금까지 50번째로 참가하고 있는 네델란드는 34년전 우승이후로

아직까지 우승의 트로피를 받지못하고 있고 이번 이 콘테스트에 참가한 세명의 남자들로
구성된
이 네델란드 그룹(Toppers)은 결승전에 도전해보지도 못했다.
한때는 네델란드의 음악이 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굉장히 영향을 준적도 있지만...

사진출처: Eurovision.tv,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09 노르웨이 우승자, Alexander Rybak
예전 이스라엘의 나오미나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워털루를 부르던 그당시의 음악들
보다
근래에 개최되는 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너무 상업적이 되어버린 느낌이고
무대장치나 의상에
큰 비중을 두는것 같기도...

사진출처: songfestval.nl, 네델란드 참가자(Toppers)
요즘보는 이 송 콘테스트는 원래의 의미를 잊어버린것 같은
이상한 잔치가
되어버린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하여 서유럽에서는 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열기가 서서히 식기도 했다.
많은 동 유럽나라들의 참가들로 경쟁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음악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들었던 노래로서는 노르웨이, 터키, 아이슬란드의 노래가 상당히 좋았던것 같다.
전형적인 아이슬란드 리듬을 들려주던 아이슬란드의 노래와 노르웨이의 노래,
터키의 음악이
다른 국가들의 노래보다는 그 국가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던것 같다.
이처럼 많은 점수차이로 노르웨이가 일등상을 타게 된것은 참으로 보기힘든것이였는데
그의 퍼포먼스나 노르웨이 전형적인 시골풍경을 연상케해주던 그의 음악에 관중들이나
다른국가들의 시청자들고 하여금 많은 표를 얻은것 같다.

사진출처:EBU, Indrek Galetin, 독일후보와 이 후보의 응원으로 나온 디타 폰 테세(Dita von Teese)

사진출처: EBU, Indrek Galetin, 영국대표
결승전 국가로서는:

노르웨이, 터키, 그리스, 독일, 영국, 러시아, 몰타,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루매니아, 에스토니아, 체코공화국,
포르투칼, 핀란드, 덴마르크, 몰다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아이슬란드다.


** 산마리노는 이번 경연대회에 재정적인 문제로 참가하지않고
이외 이태리,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도 이 경연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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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