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도르프에서 만난 일본문화원 [EKO Haus],
우리문화 세계화는 어디까지 왔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같은 색의 사람들과 살아가기를 원하고 그들과 같은 언어로
생활하기를 원하는것 같다
.
고향에 대한 향수라는것을 모르고 생을 영위한다는것
도대체 존재하지 않을것 같다
.
우리가 세계 여러곳에 한인타운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듯이 이곳 유럽에도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여 동네를 이루고 생활하는 곳이 있다
.
네덜란드 암스텔베인에
한인사회, 일본인사회를 이루고 거주하고 있듯이 독일,
특히 뒤셀도르프는
일본인들이 많이 생활하고 있다. 뒤셀도르프의 거리들을
둘러보느라면 마치 일본의
한 부분을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뒤셀도르프의 중앙역에서 이여지는 거리에는 거의 일본인 상점, 호텔,음식점들이
절비하다
. 물론 한인상점도 더러 있지만

이 뒤셀도르프근교에 일본문화원이 설치되여있다.

규모는 예전 벨기에 하설트(Hasselt)에서 본 일본정원과는 비교할수 없지만 절과
그들 특유의 물
, 목조건물, 돌로 장식된 정원, 서구인들이 경탄을 금하지 않는
일본 정원을 구경할수있다
.

 




















서구사회에서 생활하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이곳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은
항상 신비의 나라, 긴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일본등을 먼저 거론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도 길고 찬란한 반만년의 역사가 있지않나. 우리는 우리 특유의,
세계에서 제일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와 우리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지않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고유의 문화와 우리나라는 항상 중국,
일본문화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을까.
생각컨대 일본은 그들 문화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많은 홍보를 하는것 같다. 정부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민간단체들의 활동도 많이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예전 신공업국가로 제품만
서구시장에서 팔던 일본은 사라졌다고 볼수있다
. 그들이 생산하던 제품 판매만으로

더 이상 그들의 나라를 홍보하지 않는다. 은연중에 접하는 문화, 쉽게 접할수 있는
대도시에서 만나는
, 그들 고유의 문화를 서구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접할수 있는 기회를
주는것이다
. 이런 방법의 나라 홍보는 한개의 제품 판매보다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에 오랫동안 남겨진다는 것이다.
뒤셀도르프의 이 일본문화원을 구경하면서 언듯 생각난 우리나라 문화정책.
우리도 이제는 집안싸움으로 허송세월 하지말고 우리의 새로운 문화정책 한번
생각해 볼 시기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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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레마겐시 언덕에서 만난 한스 아르프[Hans 혹은 Jean Arp]미술관 



독일국도를 따라 레마겐(Remagen)시를 가는도중 한쪽으로는 라인강,
그 반대편 언덕위에 우뚝 서있는, 지중해연안에서 자주 만날수있는

노란색에 가까운 한스 아르프미술관을 볼수있다.

독일, 프랑스계 화가, 조각가 혹은 작가로 알려진 다다이즘의 대표적

멤버중의 한사람인 한스 아르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미술작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알고있을

네델란드에 최초로 다다이즘을 소개한 테오 반 두스부르그(Theo van Doesburg),

스위스 바젤에서 만나는 틴겔리(Jean Tinguly)등과 같이 한스 아르프의

이름은 미술계에서는 거론할 필요조차없는 유명한 예술가이지만 이분의
이름을
딴 미술관 또한 이색적이다.







도심지 한복판이나 거대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그런 미술관이 아닌
예전 간이역으로 사용하던곳을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
에 의해
재 건축된 이 미술관은 나의 미술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려준것 같다
.

미술관 뒷쪽으로는 아직도 철길이 있고 기차가 다니지만 국도에서 바라보는

미술관은 숲과 웅장한 나무로 둘러싸여 자연속에서 그림을 감상한다는
느낌을
줄뿐만 아니라 허물어져가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는
간이역을
미술관으로 설치했다는 그 자체가 다른 미술관과는 또 다른점을 보여준다.

 

흔히 미술관이라는것이 고정된 관객, 미술을 이해할줄 아는 사람들만이 방문하는것으로

생각되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 미술관은 미술관이 더 이상 옛 명화만 감상하는

소수의 사람들, 엘리트의 집합장소가 아닌 대중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소통의 장소, 작품을 바라보면서 소위 예술평론가에 의해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그런곳이 아닌 개인의 생각, 느낌에 따라 작품을 감상할수 있는 그런 느낌을 주던

미술관이였던것 같다.

 

예술, 문화는 우리들의 생과 그리 멀지않는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곡예사의 줄타기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도 일종의 예술이 아니던가.

미술관에 단지 작품만 전시되고 관람객이 없는 미술관은 미술관으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관광명소로 활용되는 미술관은

보는이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만들기는 하지만 소통이 되지않는 하나의 건물일뿐.

그런점에서 이 한스 아르프미술관은 기성의 모든 도덕적,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던 20세기 아방가드 거장의 작품과 일치하는것 같았다.



스위스 바젤에서 봤던 틴겔리 미술관/페품으로 작품을 만드는 틴겔리:

http://waarheid.tistory.com/admin/entry/edit/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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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레마겐에서 만난 철교

 

라인강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로렐라이언덕.

그러나 이 라인강변에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것만
존재하는것은 아니다
.

옛 서독수도 본에서부터 코블렌쯔를 흐르고 있는 유유한
라인강변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한번쯤
지나치는 레마겐이라는 도시
.

이 도시에는 아직도 이차대전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
파괴된 레마겐의 철교가 있다
.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아마 전쟁영화를 즐기시는  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전쟁영화
레마겐의 철교
(The Bridge at Remagen 혹은 독일어 Bruecke von Remagen)
들어본적도 있을것 같다
. 이차대전이후의 세대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 그러나 이런 전쟁을 겪어본 분들에게는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 전쟁의 비참함을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있을것 같다
. 아직도 유럽에서는 이 이차대전을 잊지않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전에 전쟁의 무상함을 깨우쳐주려고 노력하고
있는것 같다
.
특히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에서는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는것 같다.
언론이나 방송에서


박물관 반대쪽에 서있는 요새


 



레마겐에서 만나는 철교는 시대의 흐름으로 녹이 쓴 철교가 되여버렸지만
반세기의 흐름에도 전쟁의 발자취를 찾아볼수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연합군과 독일인이 이 전쟁으로 희생되였는지를 느낄수 있다.
이 철교는 바라만 보는 철교가 아니고 전쟁의 무상함을 우리들에게 말하는
철교인것이다
.

어쩌면 보기 흉한 녹이 쓴 철교가 아직도 보존되여지고 있다는 사실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가닥 희망이라는것을 부여하는지도


 
라인강변의 산책로에 있는 레스토랑

이곳사람들의 음악연주를 들으면서 테라스에서 와인을 즐기던 여유로운 분들의 모습

와인페스티발의 와인여왕의 모습. 와인잔을 들고 있는분이 와인여왕이랍니다.

유럽의 여러곳을 여행하다보면 아직도 이런 전쟁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지를
많이 볼수있다
. 전쟁은 끝이 났지만 이런 유물들을 보관하고 이런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무의미함을 말해주고 있다
.
전쟁에는 승리자도, 패자도 없다.
전쟁의 무상함만 남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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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막을 내리는 베를린, 미래의 막을 여는 베를린


브란텐부르크 개선문(Brandenburger Tor)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자유를 되찾고 베를린은 잿더미의 도시로 남겨지지만 페허로 된 도시
그 한가운데 우뚝 서있던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이 개선문이 그가 겪은 역사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도 유명하죠.
한때는 당당한 개선문으로 또 한때는 베를린 장벽의 상징으로...
길 한쪽으로는 민주주의가 반대편쪽으로는 다른사상의 나라가 공존하던.
그 가슴아픈 시절을 굳굳이 지켜보고만 있는, 1945년이후로 분단된 나라의 분단된 도시 베를린의
상징이였던 개선문은 지금은 통일된 독일의 상징으로 베를린을 지켜보고있다.

1789 - 1791년 건축가 Carl Gotthard Langhans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모델로 이 개선문을 건축하고
그래서 그런지 이 개선문을 두고 Athene aan de Spree(스프레강가의 아테네)라고 부르기도 한다.
1807년 나폴레옹에 의해 4마리의 말이 이끄는 승리의 2륜마차가 파리로 납치되나 1814년
다시 베를린으로 되돌아오고 이로 인하여 이 콰드리가가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서의 승리로 알려져있다.

Pariser Platz/파리져광장과 Platz des 18 Maerz/3월 18일의 광장

Unter den Linden(운터르 덴 린덴)거리를 지나 개선문으로 향하면 바로 개선문앞에 이 광장이 있었다.
관광객들의 집합소인것 같았던 광장. 유태인 출신의 인상파 미술가 Max Liebermann의 집과
대사관건물들이 즐비해 있고 프로이센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중항쟁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광장이 3월 18일의 광장.



페터 페테르의 기념비(Peter Fechter monument)와 동,서독으로 갈라져있던 길

 18세의 어린나이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기위해 장벽을 기어 올라갔다한다.
탈출에 성공하지못한 그는 동독의 병사로부터 총을 맞아 이곳에서 숨지게 된다.
동독인과 서독인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로 인하여 생겨난 기념비.
자유의 상징인 개선문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독일 국회의사당을 옆에 두고있는 이 기념비에
발길이 끓이지 않고 있었다.



브란텐브르크 개선문을 지나면 푸른숲의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라는 지역구가 보인다.
이름이 동물원이라는 구역. 이곳에 2차대전이 끝나기직전 소비에트연방국의
붉은군대에 의해 세워진 전쟁기념관이 있다.
옛날 히틀러정권시대에 샬로텐부르거 쇼세(Charlottenburger Chaussee)라고 이름지워졌는데
지금은 6월 17일 거리라고 부른다.
이 거리에 서있는 기념관에는 전쟁으로 사망한 2500명의 소련병사들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1994년 당시 소비에트언뱡국이 본토로 갈때까지 소련군인들이 근무했다는 곳이다.
현재 이름인 6월 17일은 동독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항의와 자유로운 선거에 대해 항쟁했던 날이며
이 데모를 동독은 소련군대의 힘을 빌려 진압하였다. 이거리는 그때 죽은자들을 추모하고자 지은 거리이름.

동과서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소비에트연합국의 군인도 없어진지 오래되였지만 현재 베를린은
과거의 유물을 잘 간직하고 있다. 추한 과거조차도 굳이 없애버리지않고 잘 보관해두고 있던 독일은
이런 과거를 막을 내리고 새로운 미래의 막을 여는 베를린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  2008년 베를린 여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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