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의 성공에 스웨덴 교육정책이 한몫했다.


1972년부터 82년까지 세계 팝계를 뒤흔든 스웨덴 남녀 혼성 4인조 그룹 

아바(ABBA)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팝에 관심 없는 사람도, 비록 

노래의 주인공은 모르지만버스나 길거리 어디선가 들려주던 아바의 

노래는 한두 개쯤 기억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그룹이 아바.


1974년 유로비전 송페스티벌에 전례를 깨고 나폴레옹 의상 등 당시 시청자 

눈에는 이상하게 비친 그들의 퍼포먼스와 노래 워털루는 전 세계에 알려졌고 

아바의 성공으로 음악계의 불모지 스웨덴은 하루아침에 히트하려면 스톡홀름

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팝계의 must go place가 되었다. 아바의 이런 

세계적인 성공은 그룹의 재능과 노력도 있었지만 그들의 성공 뒤에는 스웨덴 

교육의 영향도 컸다.



이미지 출처: google.com





스웨덴 보수주의자와 종교계는 그 당시 시대의 문화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화가 사회혼란을 초래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음악교육정책을 편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스웨덴 음악 교육정책은 팝의 불모지 스웨덴을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팝 음악 제작의 나라로 만들었다. 그 당시 시도한 스웨덴 

음악교육정책은 무료음악교육이다. 악기를 다루고 싶은 청소년에겐 공짜로 

악기를 빌려주고 음악수업마저 무료로 해주는 것이었다. 이 정책으로 청소년들은 

경제적 부담 없이 악기와 음악교육에 몰두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결국, 교육정책은 단기간 내 수확하는 정책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며 펼쳐야 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물론 아바의 성공요소에는 이 음악 교육정책만은 아니다. 북 유럽인의 장점 중  

하나인 영어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바가 유럽뿐만 아니라 영어권 국가에 꾸준히 인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노래로 70년 초 데뷔한 아바는 뮤지컬 맘마미아로 또다시 세계 

음악계를 사로잡고 유럽뿐만 아니라 영어권 국가들의 차트에 랭크된 최초의 

스웨덴 출신 그룹이 되었다.


아바의 성공과 팝의 불모지 같았던 스웨덴을 지금처럼 세계에서 자랑하는 제작사와 

팝 뮤지션이 소망하는 도시가 된 이유에는 아바의 창조성과 스웨덴의 음악 교육정책이 

함께 만든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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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노래 다른 느낌, Diamond & Rust


여성 포크송 가수로 밥 딜런과 6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 존 바에즈와 

록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노래를 비교한다는 것 조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민중 사이에 사랑받고 불려지는 전통적인 노래 포크송과 팝 

음악의 서브장르인 록 특유의 강한 비트를 가진 록 음악과의 비교가 어렵고 

어느 음악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70년대 우리나라 포크송 가수들이 번역해 많이 불렀던 포크송 가수 존 바에즈는 

포크송 가수로도 잘 알려졌지만, 반전운동가, 인권운동가로도 유명하다. 노래 

가사에 시민권, 자유 등을 표현하고 흑인 인권향상과 60년대 월남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반전평화운동가로 당시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월남 반전운동에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미지 출처: google.com


1959년 음악계에 데뷔한 존 바에즈의 노래 중 명곡이라고 불리는 Diamond 

and Rust 1975년 발표되었다. 이 노래는 한때 존 바에즈의 연인으로 알려진 

밥 딜런과 그녀의 이야기다.


주다스 프리스트


70년대 탄생한 영국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를 헤비메탈 장르의 설립자

라고도 부른다. 현재 헤비메탈 사운드와 이미지를 만든 주인공 주다스 프리스트는 

스스로 메탈 갓이라 선언하고 존 바에즈의 Diamond and Rust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Painkiller 1980년 발표한 앨범 British Steel에 수록된 Breaking the Law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가진 주다스 프리스트는 70년 중후반 메탈밴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밴드로 블랙 사바스 다음으로 최고의 헤비메탈 밴드로 알려진다.



이미지 출처: google.com


Diamond and Rust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음악계에 널리 알리는데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존 바에즈의 원곡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리메이크 노래가 되었고 또한,  

리메이크 노래로서 가장 성공한 예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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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과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One More Cup of Coffee


인기를 얻었던 영화, 드라마, 노래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많다리메이크 노래가 원곡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을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리메이크된 노래가 최소한 원곡만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가능성은 있다.


음유시인, 저항음악가로 이름난 밥 딜런의 노래만큼 원곡보다 리메이크된 노래가 

성공한 예도 드물 것이다. 밥 딜런 7번째 스튜디오 앨범 디자이어(Desire)는 당시 

빌보드 차트에서 5주간 1위와 가장 잘 팔린 앨범 중 하나로 알려지며 롤링 스톤 

잡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에 선정된 앨범이다.



이미지 출처: google.com


앨범 디자이어의 수록곡 허리케인, 모잠비크 등과 함께 발표 된 One More Cup of 

Coffee는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2인조 록 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데뷔 앨범 

화이트 스트라입스에 리메이크되었다. 90년 후반 얼터너티브 록, 개라지 록 혹은 

블루스 록 장르의 노래로 성공한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2002년 영국 음악 잡지 “Q”에 

죽기 전에 봐야 하는 밴드 50에 선정되기도 한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 밴드다

네덜란드 예술 운동 더 스테일(De Stijl)의 중요 구성원인 신조형주의 건축가 게리트 

리트펠트의 슈뢰더 하우스 등 네덜란드 신조형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밴드는 

더 스테일이라는 앨범을 발매했고 밴드의 4번째 앨범 Elephant 수록곡 Seven Nation 

Army는 최고의 록 음악에 선정됨과 동시에 그래미상 최고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미지 출처: google.com


포크송 싱어송라이터의 대명사로 불리는 밥 딜런과 개라지 록 리바이벌 선두자가 

부르는 One More Cup of Coffee는 같은 노래지만 또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다. 한 편의 시를 읊듯 가사를 음미하며 듣는 밥 딜런의 노래인 만큼 가사전달도 

중요하지만 조금은 모던하고 얼터너티브 록 밴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One More Cup of Coffee는 레드 제플린 전 멤버 로버트 플랜트나 

밴드 칼렉시코가 부른 것보다 리메크에 성공했고 밥 딜런의 원곡만큼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리메이크 노래가 되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 One More Cup of Coffee


http://www.youtube.com/watch?v=DZfVbvSVUbw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5번에 영감을 받았다는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Seven Nation Army


http://www.youtube.com/watch?v=0J2QdDbel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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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성 나움 수도원[St. Naum monastery]


오흐리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성 나움 수도원으로 간다. 수도원은 택시나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나는 배를 타고 갔다. 가는 길에 만나는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을 보고자. 마케도니아인의 성지순례지로 알려진 성 나움 수도원은 

자연보호지역인 갈리치차 국립공원과 치미 드림(Crni Drim) 강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수도원과는 달리 대부분의 

마케도니아 수도원은 산속 깊은 곳에 있다. 다른 종교종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곳 수도원은 산속 깊은 곳에 있다고 나디아에게 들었던 것 같은데 

종교에도 이런 무서운 면이 있다. 하기야 종교가 단순한 믿음이기 전에 권력 

그 자체이기도 하니 이해가 가기도 한다마는 여전히 종교의 이런 면은 나를 

신앙으로부터 멀리하게 한다.


9세기 후반 치유자 혹은 기적을 가져다주는 의사라고 불렸던 성 나움이 이곳

에다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정말 

그가 불치병을 치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위 경관이나 수도원을 보면 

어지간한 병도 이곳에선 다 사라질 것도 같다.








수도원에 아예 거주하는 공작새교회의 탑에도 정원에도 공작새는 날개를 

펼치고 여행자를 반긴다.








나도 이곳에서 촛불을 밝혔다돌아가신 아버지와 한국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





마케도니아 전통악기를 파던 대학생이라던 청년들. 기념으로 피리 비슷한 

걸 하나 샀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 하나 이들이 들려준 음악을 생각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부르는 대로 돈을 줬다.



마케도니아 길거리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피타빵. 빵에다 햄버거처럼 

고기와 채소를 넣어 판다. 가격은 80유로 센트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 원으로 

천 원정도빵이 커서 저 빵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맛있고 가격이 착한 

빵이라 마케도니아에 간다면 한 번쯤 이 빵에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케도니아에서 자주 보는 양 떼들. 산에서 내려와 호수가에서 물을 먹고 또 

산으로 간다. 양 떼 주인장의 모습을 찍고 싶어 부르며 따라갔는데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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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흐리드, 발칸의 예루살렘


암스테르담에서 새벽에 출발해 오흐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독일 항공을 지나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공항까지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공항에는 미리 

연락해둔 숙소 주인장 에밀이 나와 있었다. 공항에 도착한 나를 본 택시 기사

들이 어디를 가느냐며 나와 흥정을 원한다. 나를 태우고 오흐리드 시내로 갈 

사람이 있다며 손을 내저으니 실망한 눈치다. 마케도니아는 예전 우리나라

처럼 택시비가 매우 싸고(네덜란드에 비교하면) 이곳에서 택시이용은 다른 

나라의 대중교통과 비슷하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주인장 에밀 부인 마야와 인사를 나누며 오흐리드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의 첫 마디가 오흐리드에는 365개의 정교회와 교회가 있었다고 

들었다. 너희는 하루에 한 번 그것도 날마다 다른 교회를 방문하며 일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겠네!”라고 말하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으면서 오흐리드를 공부

하고 왔느냐고 한다. 공부는 무슨. 그냥 오흐리드 정보를 찾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기에 말해 본 것뿐인데.


오흐리드가 발칸의 예루살렘이라는 것은 여행자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이곳엔 정교회와 수도원이 많다. 그리고 교회마다 새겨진 사연들도 

다양하다마케도니아는 정교회 신자가 약 65%이며 그다음이 모슬렘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거주하며 마케도니아인들은 신앙심도 아주 깊다. 마케도니아 

역사를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건축되었는지 알 수 

있지만 어쩌면 마케도니아인의 신앙심 또한, 많은 수의 교회와 관계있는 것은 

아닌지.


오흐리드 시 자체가 유적지다. 가는 곳마다 오래된 역사와 연결된 건축물이 

눈에 띈다언덕에 올라 호수와 멀리는 알바니아를 바라보며 발칸의 예루살렘

이라는 아름다운 오흐리드의 모습에 빠져본다.




성 소피아 교회(St. Sophia church)

마케도니아의 대표적인 종교 건축물이며 11세기 바실리카 식 교회가 있던 

자리에 지금의 교회를 건축했다고 알려진다.









성 요한 카네오 교회(St. John Kaneo church)

13세기 건축물로 오흐리드 언덕 위에 서 있는 교회는 알바니아 건축 영향을 

많이 받은 건물이다이 교회에서 바라보는 오흐리드의 전경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자가 꼭 구경해야 하는 모습이다.








기원전 200년에 세워진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연극장소.












12시쯤인가 상가를 걷다 보니 모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니 사람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올리고 간다. 그리고 이곳을 지키는 아저씨가 물 호스로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그런 풍경. 만일 내가 대낮 

네덜란드에서 물 호스로 땅의 열기를 식힌다면 사람들은 날 물 낭비하는 사람

으로 손가락질하겠지. 그러나 이 광경은 우리와 너무나 닮은 모습에 물 낭비라는 

생각보다는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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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나움(St. Naum) 스프링스, 생태관광 명소


오흐리드 호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쯤 가면 성 나움(혹은 스베티 나움)

이라는 수도원이 있다. 작은 섬인 이곳엔 유명한 성 나움 수도원과 

스프링스라는 호수가 있다. 오흐리드 호도 그렇지만 스프링스 호에서는 

낚시, 수영 그리고 모터보트는 금지다. 그래서 오흐리드에는 생선요리가 

비싸 다들 오흐리드에서 가까운 알바니아로 생선요리를 먹으러 간다.


오흐리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수도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한데 수도원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은 풍경이 내게 보인다. 마치 여름 

폭포 밑 물 흐르는 곳에 평상을 펴고 마실 것과 전을 파는 그런 풍경 말이다

이곳에서 전이나 막걸리를 팔 리는 없고 아무튼 수도원은 뒤로하고 그곳을 

먼저 간다. 내가 본 풍경은 평상은 물론 아니었고 호수 위의 음식점들이었다

아마도 그때 내가 우리나라 여름 계곡에서 자주 본 평상이 그리웠든지 아니면 

몹시 배가 고팠는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마케도니아인들은 자국의 자연, 음식, 생산품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스프링스 호에서 만난 알렉스라는 청년도 마케도니아 정치, 정치인에 대한 

불만은 컸지만, 스프링스 호에 대해서는 엄청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30

분간 작은 보트를 타고 호수를 둘러보는 동안 그가 말하는 마케도니아의 

자연과 스프링스 호에 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머무를 것이다

그와 보낸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스프링스 호는 내게 자연으로 돌아

가는 기회를 줬고 자연은 위대하다는 말만 건성으로 토해내는 우리가 부끄

러울 지경이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이런 큰 선물을 주는 대신 우리가 자연에 

되돌려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마케도니아 다른 청년들처럼 

전공과는 상관없이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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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여행기, 갈리치차 국립공원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오늘은 가이드와 함께 갈리치차 국립공원(Galicica National Park)을 간다

이곳은 해발 2,254m의 높은 산으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희귀한 동, 식물

들이 생존하는 곳으로 마케도니아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국립공원

이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고 또한 등산보다는 걷는 일에 익숙하다

따라서 내게 산을 오른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흐리드는 아직 관광 면으로 유럽 다른 여행지보다 덜 발달되었다. 그리

하여 순수함도 지니고 있지만 적당한 관광코스나 가이드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수십 명이 같이 움직이는 여행도 싫지만 그렇다고 혼자 가이드와 

명소를 방문한다는 것도 사실 조금 부담스럽다. 경제적인 면에서. 오흐리드 

길을 산책하다 보니 갈리치자 국립공원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삼 사명 

정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내가 가고자 했던 날은 아무도 그 공원을 가지 

않는가보다. 하여 나는 혼자서 가이드 나디아와 함께 국립공원을 가야 

했다등산 경험도 별로 없고 등산화도 집에 두고 왔다고 했더니 나디아가 

웃으면서 말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내 템포에 맞춰 등산할 것이고 등산화는 

자기가 준비하겠다고.





다음 날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뒤 나디아가 헐레벌떡하며 온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네덜란드 여행자는 시간관념이 철저한 줄 알고 미리 나왔는데 

내 숙소를 빨리 찾지 못해 조금 늦었단다. 그럴 수도 있지. 내 숙소가 호텔도 

아니고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호스텔 비슷한 곳이었으니.


나디아는 대학을 졸업했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해 등산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에서 만난 청년들 대부분이 나디아처럼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산이 좋아 등산 가이드를 한다는 

나디아 그러나 철두철미한 직업의식을 가진 그녀는 헐떡이며 산을 오르는 

나를 한 번도 싫은 표정을 짓거나 서두르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종일 내 동반자가 되어줬다.


헤어질 때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이솝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아느냐고. 웃으면서 내게 묻는다. 오늘 토끼가 되고 싶었냐 아니면 거북이가 

되고 싶었느냐고. 인생에서는 거북이가 되고 싶지만, 오늘은 어쩌면 토끼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곤 나디아에게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이솝우화의 게으른 토끼가 아닌 아주 성실한 토끼였다고.




갈라치차 산밑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네덜란드에선 보기 드문 앤틱 자동차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보다 더 멋지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웃는다. 이 

아저씨도 등산 가이드인데 오늘은 기사 일한다고 한다.




당나귀도 아무것이나 먹지 않는구나. 세 번 시도한 끝에 겨우 당나귀의 시선을 

끌게 한 잡초. 정원에 이런 잡초가 나면 우린 죽으라고 뽑는데 이게 당나귀의 

귀한 음식이었네.

























나디아와 나의 브런치. 12시가 조금 안 되었으니 브런치였지. 난 그저 물과 

바나나 그리고 뮤즐리바 몇 개 들고 왔는데 나디아는 마케도니아의 맛있는 

토마토네덜란드 소시지 빵과 비슷한 빵, 페타 치즈, 커피 그리고 알코올 

농도가 엄청 짙은 마케도니아 전통 술 라키야(Rakija)까지 준비해왔다. 한 잔 

마시면 난 뻗어 못 일어난다고 말하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술도 한 잔 못 

마시느냐고아니 지금 시계가 몇 신데 벌써 술타령이냐고 했더니 마케도니아인은 

아침 식사 때 라키야를 마신다고 한다. 하기야 예전 네덜란드 할아버지들도 

그랬지. 그래서 사람 사는 곳은 같다고 하지.


나디아 말로는 이곳엔 세 종류의 뱀이 있단다. 하지만 물려도 목숨이 위태로울 

그런 뱀은 이곳에 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뱀 보면 걸음을 날 살리라고 도망칠 

텐데 이곳은 도망갈 곳도 없어. 전진 아니면 후퇴밖에 없어. 하지만 등산하는 

동안 단 한 마리의 뱀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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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베이비 곤, 선택과 판단의 갈림길에 선 관객


감독: 벤 애플렉

출연: 케이시 애플렉(패트릭 켄지), 미쉘 모나한(앤지 겐나로),

모건 프리먼(잭 도일)


가라 아이야 가라(Gone Baby Gone)는 미국 소설가 데니스 러헤인의 

원작을 2007년 벤 애플렉이 감독으로 최초로 메가폰을 잡은 네오 

느와르 형식의 작품이다.


영화는 한 권의 철학 서적과 같을 때도 있고 때로는 일상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을 드려다 보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접했을 때 그 책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상상하며 설렘을 갖는 것과 같이 영화도 

내게 그런 설렘을 가져다준다. 그 설렘이 실망으로 변하고 또 때로는 철학 

서적 이상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을 주는 것 역시 영화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관객에게 선택과 판단 사이를 방황하게 하는 영화다

어느 날 방탕한 삶을 살던 미혼모의 아이가 사라진다. 아이의 실종은 단연 

매스컴을 타고 주목받게 되고 사립탐정 케이시 애플렉(패트릭 켄지), 미쉘 

모나한(앤지 겐나로)은 실종사건을 추적하게 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입양과 비록 불우한 환경이지만 아이는 자신의 부모와 함께 

생활함 둘 중 과연 어떤 선택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아님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된다. 이것은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입양을 무조건 찬성할 수 없고 그렇다고 친부모라는 명목 아래 아동을 학대

하고 무관심 속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방관하는 태도도 옳지 않음을 말한다.





영화가 선보일 당시 영국부부의 어린 딸인 마를렌 맥켄 실종사건으로 유럽은 

굉장히 놀라고 떠들썩했다. 따라서 그 당시 이 영화를 접한 유럽 관람객은 

서구사회의 아동학대와 어린이 실종사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영화는 밴 에플렉의 첫 번째 작품인 만큼 빠른 전개나 스릴은 없다. 하나 사회

비판에 관한 글로 이름난 원작자의 데니스 루헤인이 말하고자 한 아동학대 

문제점과 아이의 미래를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을 방황하게 하며 서구사회의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린 것을 생각하면 

영화는 원작자의 의도와 감독으로서 목적은 충분히 성공한 영화다


* 이미지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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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세계유산, 오흐리드[Ohrid]


오흐리드 지역과 오흐리드 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오흐리드 호가 있는 오흐리드 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거주지 

중 하나라고도 한다. 하나 가장 오래된 인간의 거주지 중 하나인 이 

도시는 아직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는듯 하다. 순수한 마케도니아인의 

표정, 그들의 친절함은 오래된 곳이라기보다는 신세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간혹 사람들은 오흐리드를 발칸반도의 진주라고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흐리드 시의 오흐리드 호를 보면 과연 이곳이 발칸반도의 진주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물밑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호수의 맑음은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연상케 하고 거기다 생활의 모든 편리함을 잊은 듯 

아직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생활을 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보면 갑자기 고향 생각도 난다. 불편했지만 간혹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생각에.


노을 진 오흐리드 호수의 풍경은 향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고 여행자의 

설렘, 호기심 그리고 외로움이 함께 어우러져 한동안 호숫가를 서성이게 한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를 설레게 한다.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라고 하는군.



그 누군가가 동전을 던졌는지 이름들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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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 에투알 개선문


3 4일 파리여행으로 파리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 어떤 건축은 

그냥 지나치고 또 어떤 광장에선 집에서 가져간 책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존 레논이 부른 노래 중 바퀴를 쳐다보고 있어/

Watching the Wheels”라는 노래가 있어.

 

사람들은 내가 하는 짓을 보고 미쳤다고 해.

그들은 날 파멸에서 구하려고 온갖 경고를 해.

내가 괜찮다고 하면 날 이상하게 쳐다봐.

사람들은 내가 몽상으로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지.”


공원이나 광장에서 지나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

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만족해. 여행까지 와서 무슨 짓이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때로는 그런 여행이 좋아.








센 강을 지나 한참을 걷다 보니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인다. 성당이라면 

네덜란드에도 건축물로서 정말 아름답고 역사 깊은 대성당이 많아 굳이 

파리까지 와서 대성당을 찾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내 발길이 어느덧 

그쪽으로 향했다. 파리라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생각나고 오래된 영화지만 라 스트라다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기한 

앤서니 퀸 그리고 50, 60년대 섹스 심볼이라 불리던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노트르담의 꼽추도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이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걸어

왔나 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당으로서의 경건함과 거대한 건축물로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대성당 주위나 성당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분위기를 더욱 밝게 만든다. 성당을 보고 마냥 경건

함만 느낀다기보다는 성당의 신앙적인 요소와 자유스러움이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고나 할까. 그래서 노트르담의 대성당은 종교가 주는 무게감보다는 

자유, 화합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기도 했다.


샹젤리제 서쪽 샤를 드골광장을 지나 파리의 얼굴 개선문으로 향한다

이런 개선문은 바르셀로나에도 마드리드에도 그리고 베를린에서도 볼 

수 있다승리가 있으면 패배가 있는 법. 나폴레옹의 승전과 프랑스 

역사의 영광을 말하는 기념물은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어쩌면 

인간이 행하는 일 중 가장 무의미한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그래도 저녁 늦게 바라본 개선문은 역시 파리는 

파리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너도나도 개선문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하는데 실상 이곳에서 사진찍기가 

그리 쉽지 않았어. 좌우로 자동차가 지나가고 우리는 그 중간에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찍으면서도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지.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느냐는 생각들을 했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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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의 자유로움이 부러워.


모든 여행자가 그렇겠지만, 여행의 진 맛은 그 고장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나 여행지를 찾아가는 

것이리라하지만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것. 파리의 

관광명소가 센 강 좌우에 있기에 여행 이틀째 되는 날은 

이 센 강을 종일 걸었다.


파리와 센 강 그리고 이곳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은 파리와 

센 강의 대표적인 모습일 것이다. 느긋하게 그리고 여행자를 

봤는지 안 봤는지 센 강가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동당 거리며 사는 사람들과는 판이한 그들의 모습에 여행자는 

반갑고 부럽다. 마음에 문을 열고 조금만 더 먼 곳을 본다면 

우리 생활도 분명히 저들처럼 느긋하고 자유로울 텐데.


파리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간 여행지와는 달리 젊은이와 대화가 

어려웠다.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프랑스인들의 영어지만 여전히 

프랑스인에겐 영어는 어려운 언어인 것 같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보디랭귀지도 있지만, 대화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들도 나도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 그런 

섭섭함도 잠시일 뿐. 광장에서 만난 젊은이나 센 강 변에서 만난 

파리지앵이 내게 보여준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은 이 모든 섭섭

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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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영화 변천사 5 

영화사에 영원히 기록될 공포영화의 등장


사람들은 여름 무더위를 가시게 하는 한 방법으로 공포영화를 선택

한다고들 한다. 오싹함과 무서운 장면이 주는 전율이 무더위를 한 

방에 날린다고나 할까. 실상 나는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 몇 편 안 본 공포영화지만 공포영화라는 장르에만 묶어두기에는 

아까운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들은 주로 60년대 선보인 영화지만 

지금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영화다.


영화계에 공포영화가 등장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1960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사이코라는 영화를 선보였다. 공포영화의 대표작

이라는 이 영화의 등장 이후 60년 대는 공포영화의 수작이 많이 

만들어졌다또한, 장르는 비록 공포영화지만 사이코와 더불어 당시 

미국사회상을 그린 공포영화의 대표작인 저주받은 도시와 마녀

사냥을 통해 반공이라는 명목 아래 예술계와 언론계에 몸담고 있던 

수십 명의 작가감독, 연예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친 매카시즘을 

비판한 심판이라는 영화가 있었음을 볼 때 등골이 오싹해짐은 물론

이고 좀비만 돌아다니는 그저 그런 공포영화가 아닌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공포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규모와 

스펙터클만 연출하는 지금의 영화와는 질적으로 그때의 영화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의 영화리뷰도 주로 옛 영화들이다.


추천하고 싶은 공포영화



울프 릴라 감독의 저주받은 도시(Village of the damned).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나 새처럼 60년대 공포영화의 대표작.



늑대의 시간(Hour of the Wolf/Vargtimmen)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작품으로 지금 세대에겐 무척이나 생소한 

막스 본 시도우 주연의 영화.



독수리의 밤(Night of the Eagle) 혹은 미국시장을 위해 영화제목을 

바꾸어야만 했던 마녀를 태워라, 태워(Burn, Witch, Burn)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미아 패로우의 로즈마리의 베이비(악마의 씨)



마녀사냥을 통해 매카시즘을 비판한 심판(Witchfinder General)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서평에 베스트 셀러에 관한 글이 있었던 것 

같다나 또한, 흥행이나 베스트 셀러에 별 관심 없고 통계자료나 인기 

있는 글 혹은 작품에 그다지 관심 가지지 않는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인기가 있다고 모든 작품이 다 질적으로 훌륭한 작품이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니다사람들이 아직도 고전을 읽는 이유가 있듯이 

클래식 영화를 봐야 하고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라 생각한다. 영화가 

시간만 채우는 오락이 아니고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 이미지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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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알렉상드로 3세 다리,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여행을 하다 보면 예쁜 집도 만나고 영원히 주저앉고 싶은 곳도 더러는 

만난다. 집과 풍경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도저히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다리도 세상에 참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야경과 건축 면에서 뛰어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다리, 루체른의 수탑

(카펠 다리), 바덴 갯벌에서 만난 아주 긴 목조다리와 특별히 밤에 멋졌던 

부산 광안대교도 그랬고 바람이 하도 불어 날아갈 듯했지만 다리의 

아름다움에 바람과 싸우며 다리 끝까지 걸었던 제주도 세연교도 아주 

인상 깊었던 다리다.


파리 센강에는 엄청난 수요의 다리가 있다. 다리의 수량도 많지만 예쁜 

다리도 참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파리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로 

3세 다리(알렉산드로)는 보는 이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보통 금색으로 

눈을 현혹하는 물체엔 별로 관심이 없건만 이 다리를 보는 순간 알렉상드로 

3세 다리에 반했다.


프랑스 역사적인 기념물로 인정받는다는 알렉상드로 3세 다리는 19세기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또한, 이 다리가 있어 센강이 더욱 빛난다.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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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추억과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곳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어차피 우리가 가는 여행지는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간 곳이고 그렇다고 무조건 그 많은 사람이 스쳐 간 곳을 

내가 꼭 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A가 본 에펠탑과 B가 

보고 느낀 에펠탑은 분명히 다를 것이고 사물을 어떤 식으로 보고 느끼

느냐에 따라 여행자의 여행지에 대한 감상도 다를 것이다. 가끔은 여행

지에 대한 글을 읽고 그곳을 찾지만 실망하는 곳도 있고 수많은 관광객에 

끼어 똑같은 사물을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감을 가지는 것이 여행

이지만 새로운 사물을 만난다는 것만으로 여행은 충분히 가슴을 뛰게 한다.


지금까지 유럽 여행은 주로 비행기 혹은 자동차였다. 네덜란드 여행을 

제외하고는. 하나 이번 파리여행은 기차로 했다. 네덜란드 주변국 프랑스

독일벨기에 그리고 네덜란드 대도시를 연결하는 국제고속철도로(Thalys). 

네덜란드 출발역은 암스테르담인데 암스테르담은 내가 사는 곳보다 북쪽에 

있어 나는 네덜란드보다 남쪽에 있고 파리와 가까운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차를 탄다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했지. 브뤼셀 미디역에서 파리

까지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이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다그런데 어쩌지 파리는 비가 온다. 3월부터 진절머리나게 

본 비인데 또 비가 온다. 헌데 어쩐지 파리의 비는 꽤 낭만적이다.


몽마르트르를 흔히 예술가의 집합소라고 했다. 하나 낭만적인 몽마르트르는 

예전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던 시대와는 달라졌다. 낭만과 이곳에 대한 

향수는 남아있지만 많은 예술가가 떠난 이곳은 추억만 남아 있는 장소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여전히 예전의 몽마르트르를 기억하고 이곳을 

찾는다







물랭 루즈 대신 몽마르트르 골목 길에서 만난 레스토랑의 풍차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의 물랭 루즈보다 길거리에서 만난 레스토랑의 풍차가 더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고흐의 그림들을 발코니에 걸어두고 있다.









나를 파리로 데려다 줄 탈리스(Thalys)



Musée de la Vie Romantique(로맨틱 미술관)


파리에는 다른 국제도시처럼 미술관이 많다. 루브르 같은 세계 몇 안 되는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도 있지만, 몽마르트르의 작지만 아담한 미술관도 

여행자의 눈길을 끌게 한다. 이 미술관엔 자유분방하고 유럽 여성문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프랑스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Musée de Montmartre(몽마르트르 미술관)

몽마르트르의 역사를 알수 있는 미술관.


이 두 미술관 외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달리의 공간

(Espace Dali)과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이 몽마르트르에 있다.





예전 몽마르트르 언덕에 포도밭이 무성했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포도밭을 거의 볼 수 없지만 2,000년 전 로마인이 파리에 

처음으로 포도밭을 소개한 뒤 한동안 이곳에선 포도밭과 와인생산지로 유명

했다. 하나 지금은 포도밭은 다 사라지고 내가 숙소를 정하고 나흘 동안 

지냈던 Lamarck-Caulaincourt 한군데만 포도밭이 남아있다.



무슨 연주를 하려고 그러는지 열심히 분장하고 있던 어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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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영화변천사 4, 개방된 성문화에 대한 영화등장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뫼비우스에 대한 영상물 등급위원회의 판정과 

일부 장면을 삭제하고 재심을 요청한 감독의 뉴스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한국의 정서로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제법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이보다 더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이지만 영화에서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다. 영상을 보며 

관객 스스로 대사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쓸데없이 대사가 많은 

영화보다는 간략한 대사, 군더더기 없는 대사가 있는 그런 영화를 좋아

한다.


북미, 유럽의 6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기존의 모든 개념과 생활방식

기성세대와는 다른 성문화에 대한 추구, 여성해방운동도 다 이 시기에 

일어났다. 기존의 가치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일은 영화계에서도 

일어난다. 영화에는 지금까지 영화에 등장했던 성에 대한 주제와는 다르게 

좀 더 노골적이고 자유롭게 표현된다.



60년대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Blow-Up)



대표적인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





초현실주의자며 반 부르주아인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영화로 까뜨린느 

드뇌브와 장 소렐이 출연한다. 지적이며 부유한 내과의사를 남편으로 둔 

여인이 비정상적이며 성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젊은 남자와 만나 애정을 

나누는 영화는 지금까지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서 감춰져 있던 성에 대한 

여성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또한, 반 부르주아 감독이라 불리는 

만큼 영화를 통해 부르주아 생활의 허실, 선과 악을 보여주며 진실한 

사랑과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도 성적 만족을 느끼는 심리상태를 그린 

영화로 그 시대 새로운 영화의 면모를 보여줬다.


일본곤충기(Nippon Konchuki/The Insect Woman)





서구 영화계가 세브린느와 졸업 그리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이라는 

영화를 선보일 시기 일본 영화계도 가만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1963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곤충기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본 전후 시대상과 

주인공 도메의 생을 그린 영화로 그 시대 일본 최고 걸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주연이었던 하루카와 마스미에게 여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줬다.

 

* 이미지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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