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츠 에셔의 무한한 공간의 세계[Maurits Cornelis Escher]

몇달전 헤이그를 둘러보면서 판화가 에셔의 미술관을 구경하고 왔었다.
그의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것이 수학적으로 그림그리는
방법때문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작품에 나타난 사물들은 아주 질서정연하고
더구나 이것은 한 작품을 보는것이 아니라 어려운 수학문제나 물리문제를
푸는것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보면 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다.

작품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보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다른 사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층계가 위에서 아래로 되여있다던지
발코니의 기둥이 엉뚱한곳에 있음을 그의 그림속에서 발견할수가 있다.

Maurits C. Escher, Sky and Water, 1938, 에셔미술관, 헤이그, 네델란드

Maurits C. Escher, Waterfall, 1961, 에셔미술관, 헤이그, 네델란드

그의 작품을 보는동안 마음에 아픔을 느낀다거나 하는것보다는 나자신이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스며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달할수없는, 손에 잡히지않는  수없이 많은 별들의 세계로,
마치 우주탐험을 하는것과 같이...
우주의 공간을 산책하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불가능한 세계,
돌팔구를 향해 헤매지만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는 공간의 세계.
찾아도 찾아도 출구를 찾지못하고 마치 프로이드의 정신세계로 습입되여가는

느낌도 버릴수가 없었다.

수학문제를 풀듯이 하나씩 하나씩 그의 그림의 부분을 파헤치고 들어가보면
참으로 파라독스한 부분도 있는것 같다.
그의 작품 낮과 밤, 공기와 물등에서 나타나는 정반대의 사물, 낮을 상징하는
흰새가 밤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 밤을 상징하는 검은새들이 오히려
낮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기술법에 목판, 기하학의 사용, 석판등이 있고 주제로서는
풍경, 생, 자화상등이라고 알려져있다.

그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것이 1954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수학회라고
하며 1960년 케임브리지에서 결정학에 대한 연설이후로 더욱 많이알려졌다고 한다.
그는 또한 국제적인 명성과 아울러 네델란드 왕실으로부터 상도 받았다.

그에 대한 많은 저서들이 있지만 1979년 미국 물리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Douglas Hofstadter)가 발표한 영원한 황금노끈(An Eternal Golgen Braid)책이
아주 흥미로울것 같다.
이책으로 저자는 1980년 퓨리쳐상도 받았다고 하니...


인물소개:

네델란드 판화가로 알려지는 마우리츠 코르네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한국명으로 마우리스 코르넬리스 에스허르라고도 불린다.
1898년 6월 17일 레우와던(Leeuwarden)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73세
1972년 3월 27일 네델란드 매디어의 중심도시 힐버섬(Hilversum)에서 생을 마쳤다.
현재 에셔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여왕 에마의 겨울궁전인것을
에셔의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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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을 앓던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


2년전 막내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었다.
에미의 나라, 한국이라는것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키고
이제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피가 섞인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서
..
어릴때 더러는 갔던 엄마의 모국과 성인이 된 아들이 보는 한국은 옛날 여름방학때 할머니집에
모기들로 잠을 설치던
, 무척이나  더운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이있는 청계천다리를 같이 거닐면서  환성아닌 환성을 지르고 한강을 내려다 보고
밤야경이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 남산타워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허름한 한식점에서
먹었던 그 음식들을 너무도 좋아하던 막내와 제주도를 방문했었다
.
그때 문득 떠오르던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의 두모악.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두모악을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그의 포토에세이
그섬에 내가 있있네를 구입했었다.


[저자: 김영갑, 출판사: Human & Books]

사랑하는이의 손을 잡아볼수도, 가고싶은곳에 휘적거리며 갈수도 없이,
오직 눈빛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하는, 풀지도 풀어지지 않는 사슬에 얽매여 찍은
그의 사진들을 보았던 어느날 내 눈앞에 펼쳐진 신문에 또 하나의 독일 미술가의 죽음을 보았다
.
사진작가 김영갑씨와 같은 병을 앓고있던 유명한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
60년대 아주 유토피아적이고 좌파사상적인 그림을 그리던

독일미술가, 조각가로 알려진 그의 작품에는 정치적인 색채감을 많이 발견할수있다.
예술가의 사회적인 개입, 참여, 이런것에 대한 표현이 예술가의 근본적인 임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며 또한 이영역에서 그는 세계최고의 미술가라고 유럽에서는 알려져있다.
이 화가는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이나 이야기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지만 독자들에게는
금방 알아볼수있는, 흔히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그런 주제인것이다.
권력의 남용, 차별, 굶주림, 전쟁등..
이런 주제들은 그가 성장한 분단된 독일의 현실, 2차대전이후의 독일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그가 살고있던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곳에서나
발생하고 또한 현재진행중인 그런 문제인것이다.
하여 그의 작품들이 더욱 더 많은이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한것같다.
그의 사실적이고 소수집단의 엘리트를 위한 작품이 아닌 모든 대중, 서민이 참여하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원했던 화가이고 보면 이점에서 그는 그가 원하던
그림을 그린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Hoert auf zu malen, 1966, Van Abbemuseum, 아인트호벤, 네델란드)

화가는 이작품을 통해 당시 아카데미식 교육과 이시절 유행하기 시작한 팝아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말해주고 있다.
"Hoert auf zu malen - Stop with Painting"에서 표현하고자 하는것은
예술가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책임이나 의무감, 현실에 당면한 주제들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는것이 생산성에 기여하는 작품보다 더 중요한것임을
표현하고자 하는것이다.
70년대초 독일화단에서는 화가 임멘도르프와 몇몇 유명한 화가들이 새로운 독일미술의
길을 개척했다.
소위 신표현주의(Neo- Expressionism)라는...


(Kanonel, 2005, De Hallen, 독일)

(De Rake, Gemeentemuseum, Den Haag, 헤이그, 네델란드)

무척이나 거칠고 어그레시브한 그림들은 추상파나 내면적인 지적그림들에 지친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쟝느의 그림에 주목하게 되는것이다.
그들의 화폭에는 파시즘에 대한 분노, 질서정연한 사회체제에 대한 반항등을 많이
발견할수가 있는것같다.
그당시 미술계에 유행하던 개념주의와 미니멀 아트와는 전혀 다른...


(Cafe de Flore, Gesetzestafeln, Kunst im Turm, 독일)

1978년 이태리 좌파화가 Guttuso의 Cafe Greco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연속작품
"Cafe Deutschland- 카페 도이치란드"의 그림들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독일사회의
문화적, 정치적인물들로서 마치 그의 개인적 보고서처럼 그가 만난 일련의 예술가나
드당시 정치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코멘트라고 보아진다.
작품주제가 그렇듯이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 서독의 자본주의의 허구, 나찌정권에 대한 분노등...


(Van Abbemuseum/반 아베미술관)
미술관입구에 서있는 Honore de Balzac/발자크의 동상, 오귀스트 로댕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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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황금시대의 거장, 요하네스 퍼메어(1632-1675) 혹은 베르메르(한국어)를 보고


Mauritshuis, Den Haag, 헤이그 왕립미술관

우리는 왜 이분의 작품에 그리 감동하는지.
그의 그림에 비친 이 아련한 여인들의 모습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섬세하고 다정한, 그시절 서민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풍경과 마치 정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듯한 방의 정밀하고 온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색채때문인지...

삼백여년의 세월을 두고 멀리 떨어져있던 이 화가의 작품 두개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나란히 전시되고있다.
우유를 따르는 처녀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인 저울을 가진여인
(Woman holding a Balance/De Dame met Weegschaal)이라는 작품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이 두그림은 17세기 5년동안이나 암스테르담  루레우췌(Rooleeuw)라는 상인의 집에
5년동안
걸려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그의 작품 저울을 가진 여인을 두고 이 화가의 특징을 제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의 그림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이 대가의 그림들은 매우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것 같다.
실지로 그는 그의 생존시 그리 부유하지도 그의 동료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그린 이그림들속에는
종교적이거나
그당시 유행하던 왕실의 그림들이 아닌 보통 일상의 그림들이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친근함을 느낄수가 있다.


Johannes Vermeer, c. 1665, Het Meisje met de parel, Mauritshuis

요하네스 퍼메어 혹은 얀 반 데르 메어 반 델프트(Jan van der Meer van Delft)라고도 하는 그의 그림들은
규격이
그리 크지않으나 매우 사실적인것 같다. 램브란트나 프란스 할스의 그림들과 비교한다면
그들의 그림은 
남성적이고 웅장하고 무언가 짓누르는 감정을 준다면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매우
서정적이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수있는 이웃과 같은 사람들의 그림, 정다움,
소박하고 여성다운것을 나는 느낀다.

아늑한 집안, 어딘가 머리를 대고 소근소근 들릴듯한 아야기마저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상상해보곤했다.


J. Vermeer, 1658, Het straatje, Rijksmuseum

살아생전 약45점의 작품을 남긴 화가의 출생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않고 1675년 델프트에서

생을 마쳤다고
우리들에게 알려져있는 화가.
17세기 바로코풍의 거장인 그를 두고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도 부르기도.. .

이말은 그의 그림기법이 후세인들에게 아주 수수께끼와 같고 그의 생에 대해 잘알려지지 않은것이
이유가 아닌가라고도 한다. 그당시 대가들의 그림의 테마였던 신화나 왕실의 그림이 아닌 일상을 표현하는
그의 작품속에 표현되는 주제, 그림속의 공간과 그가 사용하는 빛들을 두고 그를 빛의 대가라고 일부에서는
말하기도...

델프트의 풍경속에 나타나는 집의 모양, 실내장식, 책을 읽는 남자, 다산다난한 가정사를 표현하는
이그림들속에 수학적인,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림속에 나타나는 완벽한 빛의 사용과 색채는 마치 한장의 사진을 보는것과 같이 정밀하다는게
미술평론가들의 말.


J. Vermeer, 1660, De melkmeid, Rijksmuseum

J. Vermeer, De dame met de weegschaal, Nation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J. Vermeer, 1662, Brief lezende vrouw, Rijksmuseum

이 새개의 작품이 그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가고 있다고 하는 이 그림들은 가정적인 집안풍경,
빛이 주는 온화한 느낌을 우리는 얻을수 있을것같다.
그림이 그림으로서 벽에 결려지는 장식품으로서만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여인의 온화한 모습, 그 색채가 주는
안정감 이런것들로 나는 그의 그림에 눈을 돌릴수가 없는것이다.


헤이그 왕립미술관의 전경
호숫가를 끼고있는 이 미술관은 단지 미술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마치 한폭의 그림같았다.







유용하셨다면 댓글과 추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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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브란트의 작품 "야경"의 수수께끼가 풀어졌다고 한다.

Rembrandt, De Nachtwacht, 1642, Rijksmuseum, Amsterdam

역사가의 말에 의하면 램브란트의 대작 야경/De Nachtwacht/Night Watch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회지휘, 연령,
이들이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었는지도 발견했다고 전해지고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감상하는 한사람으로 이그림의
주제나 작품이 나에게 어떠한 감동을 주는가에 대한 깊은관심은 있지만 여기에 나타나있는 인물들의 사회적지위나
나이같은것에는 별로 마음에 두고있지 않은지라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발견이 때로는 작품이 주는 신비함, 작품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나라가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것을 때로는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발견을 통하여 그시대 예술가들의 생활,
작품들의 배경을 하나씩 음미해보는 재미도 더러는 있을것 같다.
작년인것 같다. 반 고흐의 그림을 X-Ray로 연구한 결과 그는 같은 화푝에 두번씩이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가난했던, 동생 테오의 재정적지원을 받던 그로서는 이런 물질을 아낄수밖에 없었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영혼이 담긴,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그의 그림들에 더욱 애착을 느끼는지도...


Rembrandt, Hendrickje badend in river, 1655, National Gallery, London

부흥하던 네델란드 식민지시대, 소위 황금시대라는, 17세기 네델란드의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 알려지는 램브란트는
주로 단체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즈이드 홀란드(Zuid-Holland)주 레이든(여기에 네델란드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과가 있고
한국에서 건너온 입양인들이 더러는 이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있어요)
방앗간아들로 태어났다는 화가.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램브란트 할멘스존 반 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램브란트.
마침 풍차가 레인(Rijn)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이름이 Harmen(할멘), 그로인하여 할멘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혀진 램브란트.


네델란드나 스칸디나비아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Johan-son(요한의아들), Peter-son
(페터의아들)등의 이름을 가진이를
많이 만날수있고 직업을 알려주는 Visser(어부), Molenaar,
Molemaker(방앗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자주 접할수 있어요.



1630 -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곳에서 유명하게 되고 미술학교도 세웠다고.
살아생전 약 700여점의 작품과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고 하니 무척이나 생산적이였던 예술가였던것 같다.

그의 재정상의 문제점에는 여러가지 설이많다. 그가 후년에 매우 가난했다는설과 그렇지않다는 반대설.
그러나 후세 그의 그림에 많은 감동을 받고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런 역사적인 분석인 돈과의 관계보다는
그의 그림이 더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야경

램브란트는 1642년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야경을 그렸다.
단체초상화, 그시절 암스테르담시를 보호하던.... 지금까지 알려져있던 이 그림에 나타나는
유명한 대령/Frans Banning Cocq이
이분이 아니라 변호사직위의 전혀 다른가문의 Banninck Cocq고
그림속의 루테넌트인 Willem van Ruytenburch마저도
다른사람이라고 역사가는 말하고있다.
이그림이 야경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가 작품속의 배경이 하도 어두워서 야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실지로 이그림은 어두운 밤이아닌 낮의 배경이였다고도 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속에 자주 만나는 명암, 이빛과 그림자의 강한대조를 만나는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이 명암은
그가 발견한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가장 잘 적용한 화가로 우리세대에 알려져있고 
그는 이것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것 같다.

램브란트는 해외로 여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있다. 그당시 유명했던 이태리 화가들의 작품마저도
보려고 하지않았다는...

네델란드에서도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는지라 굳이 해외로 여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우리들이 만나는 그의 작품속의 주제들이 성경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가족들이다.
부인과 그의 아들 티투스등.


Rembrandt, Het Joodse bruidje, 1664, Rijksmuseum, Amsterdam

램브란트만큼 유명한 반 고흐마저도 "내인생의 십년과 단 10일만의 시간을 바꿀지언정 램브란트의 유태인신부를
볼수만 있다면"
이라고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니 이 대가의 그림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미술학계에서 말하기를 램브란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의 제자들이 그린 작품들을 잘 구분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것은 램브란트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제자들이 학비대신 램브란트의 지시대로 그의그림을 복사하는일을
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이제자들의 그림에 그는 그의 사인을 넣고 작품을 팔았다고 하니 그런일로 미술학계에서는
램브란트의 그림과 제자들의 그림을 더욱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Rijksmuseum/레익스뮤지움, 네델란드 건축가 Cuijpers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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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레익스뮤지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레익스뮤지움, 암스테르담

2008년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델란드 국립미술관에 8601의 다이어몬드로 만들어진 영국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For the Love of God"가 전시되였다.
18세기 해골에다 백금을 덮어세우고 그 해골에다 어마어마한 수의 분홍색의 다이어몬드로 장식한...
레익스뮤지움이라면 미술을 아는 사람들이면 다 알고있는 유명한 램브란트의 그림이 걸려져있는 미술관.
이 미술관에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작품을 전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켰고
이 미술가에 대한 찬, 반론의 의견들로 이 전시회가 한때는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했다.
현대인조차 이해하지못하는 현대미술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밤에 본 그의 해골을 보는순간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기도했다.


데미안 허스트/For the Love of God

그의 말로는 이 작품을 75만유로에 처분했다고한다.
만일 그의말이 사실이라면 생존해있는 미술가로서 최고의 가격으로 경매한 최초의 예술가라고
미술학계에서는 말하고있다.
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서"에 사용된 다이어몬드에 허스트는 14만파운드를 지불했다고도 하니
어쩐지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켓팅의 천재쯤이 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페터 푸스/For the Laugh of God

그의 폴란드 동료 페터 푸스는  이 허스트의 작품과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었다,
허스트가 그의 작품을 "For the Love of God" 라고 부르는 반면 페터 푸스는
그의 모조품을 "For the Laugh of God" 라고 부른다.
그는 또한 허스트의 백금과 다이어몬드 대신 플라스틱과 유리를 사용하고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금송아지

이년전부터 프란시스 베이컨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 그가 외면하던
회고적인, 과거를 추상하는 작품을 만들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과 함께 떠올리는 빅 비지니스.
이 빅 비지니스의 상징인 그를 80년후반, 90년대 전반기에 형성된 Young British Artist의
대표자라고 불렸던것같다. 이 YBA의 중요테마가 아이로니, 타락 혹은 퇴페된 사회나
정치적인것이였다니 반전데모, 플라워파워, 자본주의에 대한 학생운동도 사라져버린
갈팡질팡하던 시대에 또 다른 형태의 미술을 만들어냄으로서 상업적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었나보다.
그들의 브랜드인 YBA가 눈깜짝할사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였으니...


데미안 허스트/Anatomy of an Angel

그가 인터부하는것을 텔레비젼을 통하여 보면서 느꼈던것은 에술가라기보다는 팝스타같은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다는것이다.
U2의 보노와 비교하던 한 비평가의 글때문이였는지는 알수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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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상징주의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1907 - 1954]

내가 좋아하는 미술가중에 프리다 칼로를 빼을수는 없을것같다.
이 여류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권의 자서전을 읽는것처럼 그림속에 화가의 생을 만나볼수가 있다.
화가의 남편이였던 리베라와의 결혼생활, 트로트키와의 인연, 고통사고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을 그녀의 독특한
상징적인 수법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육체적인 결함을 정신적으로 표현하는 화가,
그속에 적나라한 아픔을 그녀의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느낄수가 있을것이다.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린 그녀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독특한 화가의 브랜드마크라고 볼수있는 진한 눈섶과
수염 또한 빼놓을수 없을것같다.

80년대이후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화가의 그림속에는
눈이 부실듯한 강렬한 색채와 멕시코 전통문화
같은것을 발견할수있고 그녀를 두고 패미니스트,
공산주의 지지자라고도 표현도 하더라만은
내가 그림속에 만난 그녀는 육체적인 결함과 고툥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한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사상을 펼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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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릴때부터 혁명가 Emiliano Zapata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알려지는 그녀는 후에 소련으로부터 추방된 트로츠키와의 우정으로도 잘알려져있다.
두번의 교통사고로 평생동안 육체적인 고통과 투쟁해야 하는 화가는 이로인한 열등의식, 자아비판같은점도
그녀의 작품속에서 찾아볼수 있었다.


Frida and Diego Rivera, 1931

화가가 평생동안 사랑하고 그로인하여 고통받았던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
21살의 연상이였던 디에고는 그녀가 만날당시 이미 벽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결혼생활에 충실하지않았던 디에고, 그로부터 받은 상처를 유머와 아이로니로 작품을 만들고
위로받았던 화가의 그림속에는 어둡고 우울한 색채감보다는 강렬하고 생에 오히려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그런 색채를 만날수있을것이다.


(My Grand parents, and I/Family Tree, 1936, Oil and tempera on metal, The Museum of Modern Art, NY, USA)

(Me and My parrots, 1941, Oil on canvas, Banco de Mexico Diego Rivera & Frida Kahlo Museums Trust AV, Mexico)

왜 우리는 그녀의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가?
트로츠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의 아픔과 외로움을 볼수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의 미술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의 소설 "리베라와 프리다", 2002년에 상영된 그녀의 일생을
기록한 영화등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작품들은 한점의 작품으로서만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자신의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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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다찌온 베일리 - 바이엘러 미술관



단풍이 언제 빨갛게 물들엇는지, 낙엽이 떨어져가는줄도 제대로 의식하지않고 지내던 2008년 11월
스위스 바젤에서 몇일을 지내는동안  몇군데의 미술관을 다녀왔다.

- 바젤 -

예술가의 도시보다는 화학과 대학의 도시로 더 잘 알려져 있지않을까 싶은 그곳은 예술을 좋아하고
또한 이것을 사랑하는 이로서는 한번쯤 방문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곳이라고 생각된다.
도시 구석구석 자리잡고있던 연극관, 오페라하우스 무려 41개의 미술관이 있다는 바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현대건축과 고대건축이 교차하고 마치 로마인들의 숨소리마저
들릴듯한 라인강을 끼고있는 바젤은 건축학도들 또한 한번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나싶다.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있던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 또한 이분의 작품이 내가 자주가는
네델란드 마스트릭트 새 개발지구 세라믹에서도 있어 그의 작품을 여기에서 만나보는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외에도 그의 작품 탕기리미술관(Tinguely Museum), 피터-메리언-하우스(Peter-Merian-Haus)를
설계한 추상파 예술가 도날드 유드(Donald Judd)등 많은 건축물을 감상할수 있었다는것은
건축에는 문외한 나로서는 참으로 좋은 지식이 되였기도 하고 또한 이곳 바젤에서 네델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그의 생의 마지막을 지낸곳이라 참으로 묘한 인연같은것을 느끼기도했다.

시내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면 렌조 피아노(Renzo Piano)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이 있다.
이곳이 바로 베일러 부부가 일생동안 수집한 예술품의 일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베일러 재단 미술관
소위 푼다찌온 베일러(Fondation Beyeler)라는 곳이다. 이 건축가라면 얼핏 생각나는것이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와 암스테르담에 있는 NEMO이다.

이 베일러 재단 미술관에 빈센트 반 고흐, 모네, 세잔느, 피카소, 몬드리안, 칸딘스키등  많은
세기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젤외곽에 있던 이 미술관을 찾던날은 일요일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이곳에서 전시된 작품들이 물과 빛의 도시 - 베니스 -를 주제로 한 대가들의 작품들.

베니스 - Venedig -
카나레토, 터너 그리고 모네까지라는 - Von Canaletto und Turner bis Monet -


(E. Manet, Le Grand Canal a Venise,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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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베니스를 갔다온지가 십몇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 관광객들로 무척이나 붐비던
산 마르코 광장앞의 비둘기, 약간 술취한듯한 아저씨가 운전하던 곤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물과 빛의 도시가 거처없이 방황하며 절망과 자책, 그리고 굶주림과 관객들의 배신감으로
머리를 싸맨 예술가들의 영감의 기원이 되었다는것을 그들의 작품을 보는동안 얼마나 절실히
내 피부속으로 스며들던지...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한국에서 바이엘러 혹은 베일러라고 부르는 이 미술관은 1997년 바젤 외곽지역 라이헨(Riehen)에 건축되였다.
이 미술관을 건축한 건축가가 유명한 렌조 피아노.
실상 베일러부부가 미술품을 소장하게 된 동기는 그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미술품을 판매하고자
했기때문이라고 한다.
근 50년동안 그들이 수집한 작품들은 일생동안 만났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1989년 처음으로 이 부부가 수집한 작품들을 Reina Sofia Museum, 마드리드에 전시회를 한것이
베일러재단이 성립된 계기가 된것이다.
이부부는 바젤시내 화랑을 경영하는 동시에 많은 현대미술가의 작품들, 네델란드의 거장 반 고흐, 고갱,
드가, 모네, 마네, 세잔느, 피카소, 클레,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베이콘등 세기의 거장들의
작품들이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

1937년 게노아에서 출생하고 밀라노에서 수업한 이태리 건축가.
1971년 그의 동료 리챠드 로저스와 건축사무실을 설립하고 퐁피두센터를 설계하기도 했다.
그의 건축사무실 Renzo Piano Building Workshop이 있고 건축물뿐만 아니라 실내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_ 라인강가의 예술의 도시 바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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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뤼겔의 그림과 네델란드속담

어느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이나 사회를 비웃어주고 현실을 반영해주는 그림들이 있다.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서도 그 당시의 풍습이던지 유머스럽지만 사회현실을
잘 반영해주고 있듯이...
피터 브뤼겔의 그림 "네델란드속담/De Nederlandse spreekwoorden"에서도 그 당시의 사회나
풍습등을 그림으로 표현한것이 있다.


(Pieter Bruegel, The Elder, 1559, Gemaeldegalerie, Berlin, Germany)

화가(대)피터 브뤼겔은 1520년경 네델란드 브레다(Breda) 혹은 벨기에 플란드르지방 Brogel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1559년쯤 그의 이름이 Breughel에서 Bruegel로 바뀌졌다고 알려지고 있는 이 대화가는
그의 안트웨르펜시절을 지나 브뤼셀에서 많이 활동하고 유명해진 관계로 지금은 벨기에 대가로 후세들에게
알려져 내려오고 있다.
1500년경 네델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에 의해 격언집에 실려있다는 속담들이 그때 그시절 서민들의
유일한 사회비평의 도구가 되였을지도 모를일이다.

"네델란드속담"의 그림에는 거의 70에서 150개의 속담을 발견할수가 있다.
그림속에 표현되어 있는 네델란드 혹은 벨기에 플란드르속담들을 대체로 두 분류로 나누고 있는데
첫째는 거꾸로 가는 세상이나 무능한 인생사에 대한것
두번째로서는 허위나 위선을 상징하는 속담에 대한 그림이다.
작품속에 나타나는 거꾸로 보는 지구본이 첫번째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전형적인 그림이며
푸른색의 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  - 이것은 부정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  두번째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위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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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n pilaren bijter(26번)
위선자를 두고 하는말이다.
Met het hoofd tegen de muur lopen(36)
불가능한 일을 끝까지 하고자 하는일
벽돌로 된 벽을 어떻케 사람의 머리로 구멍을 뚫을것인가.
그림 50번이 악마에게 고해성사한다 혹은 믿지못할 사람에게 자기의 비밀을 말한다는 것인데
어떻케 악마에게 비밀을 말할수있는가.
우리나라 속담 "한치 물속은 알아도 열치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속담과 비교할수 있을것같다.
그림 63번: 부정한 여자를 두고 하는말이다. 고대시절에는 부정한 여자들이 이 푸른망토를 입었다는것.
그림 12번: 거꾸로 된 지구본
그의 그림속의 지구본이 거꾸로 표시되어있다.
거꾸로 가는 세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1번: 부자의 상징
떡을 지붕위에까지 올려놓을만큼 부자라는 말이다.
그림 88: 거물을 반대방향으로 두고 고기를 잡고 있으니 고기가 잡힐리는 만무.
그림 97: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따라가는이 이것은 줏대없는 사람이나 위선자를 두고하는말이다.
그림 91: 돈이 많아서 물에다 돈을 갔다 넣는다는 말인데 이것은 쓸데없이 낭비하는이나
우리속담에 돈을 물쓰듯이 쓴다와 비교할수있을것이다.

이그림에 표현되는 속담들이 차츰 사라져 가고있다.
시대의 현실반영과 비평도구가 점차 기계나 모던한 기술들에 의해 뒷자리고 물러앉게 되고있다는것이다.

그당시의 풍습이나 사회반영을 표현하고 있는 그의 대표적인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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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발데사리 - Important bridge between Pop Art and Nouveau Realisme

미니멀 아트와 개념주의(Minimal Art and Concept Art)



네델란드 남쪽 림부르그(Limburg)주에 마스강과 옛 로마인들의 유적이 산재한
마스트릭트(Maastricht)라는
도시가 있다.
한쪽으로는 벨기에, 또 다른쪽으로는 독일에서도 유명한 공과대학이 있는 아켄(Achen)이 인접해있고
유럽연합(EU)의 발생지이기도 한 고적의 도시.
이곳 보네판텐뮤지움(Bonnefantenmuseum)에서 2008년 현대미술에 대한 비엔나르 국제상을
77세의
존 발데사리에게 수여했다.
이 국제상이 그에게 주여진 가장 큰이유가 발데사리는 교수로서, 예술가로서 젋은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준다는것.
이런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그림을 그린 동기가 실상은 굶주림을 피하기위한
단순한 생존의 방법이였다고 노장의 미술가는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수있었던 작품들은 2003년 이후의 작품으로
Forth State(Prima Facie), Yellow(Blockage), Part Two(Noses & Ears)등.



작품들은 그가 그렸거나 색칠한 화판과 글들을 연결해 놓았다던지 오래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이용한것들.
그중에서도 강렬한 색채의 사람들의 신체부분을 사용한 사진이 굉장히 인상깊었고 좀 유머스러웠다.
미술가는 사람의 얼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마나 눈섶부분에....



초기에 그의 작품(풍경화)과 그가 가지고 있던 일상의 그림들은 1968년쯤 화장터로 보냈다고 말하는 화가.
이 불탄 그의 작품의 재위에 누운 형태를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기도 하고 이거은 전형적인
반 예술가의 본보기로서 잘알려져있다.
그의 작품을 불태운 이유로는 자신의 에고이즘을 버리고 새로 출발하고자...
미술관, 갤러리도 뒤로하고 그저 그를 지켜보는 일반대중을 위햐여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화가.



"나의 작품은 어떤 특정한 인물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모든사람을 위하여
또 모든사람이 나의 작품을 감상하는동안 즐거움을 느낄수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만들기를 원한다" 라고 미술가는 말하고 있다.

77세의 노장의 예술가는 아직도 그의 예술분야에 시험중이라고
생을 살아가는동안 많은것을 배운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질문에 전부 대답을
줄수가 없노라고 겸손히 말하고 있었다.

60년대와 70년대 초기 예술가들이 무한한 가능성를 제시하는 미디어를 통해 많은 비데오영화를 만들고
발데사리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의 비데오작품 "모자접기"가 좋은 본보기가 될것이다.
반시간정도 진행되는 이 작품에는 작가는 모자를 접고, 모형을 만들고 마치 어린이가 장난감을 다루듯이 끓임없이
이 하나의 모자와 씨름하고 있다. 예술가와 비데오카메라와의 상호관계를 엿볼수있는 작품.

그가 찍은 작품에서 미술가는 그의 객관적 또는 주관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순간 순간 조절할수있으니...
그리하여 이작품을 플래스틱의 창조라고도 말하는, 이차원의 구도를 지닌 작품이라고 하지않던가.

1980년 이후 사진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그는 그의 작품에 문체와 대중미디어의 그림들로 복합시키고 있다.
특히 헐리우드의 필림등을...
이것은 작품을 통하여 글자-문체의 의미, 문체자체가 어떻게 그의 작품속에 영향을 주는가를 말하고자
하는것이라고 한다.

발데사리는 1972년과 1982년 독일 헤센주 카셀(Kassel)의 도큐멘타(Documenta)에 참석했다.


Bonnenfanten museum(보네판텐미술관)

미술관은 건축학도들에게 잘 알려져있는 마스트릭트 새 개발지역구 세라믹 혹은 케라믹으로 불리워지는
Avenue Ceramique과 마스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995년 이태리 건축가 Aldo Rossi(1931 - 1997)에 의해 이 지역구에서 제일 먼저 건축된 건물.
네델란드 고 건축물에서 자주 볼수있듯이 붉은 벽돌로 건축된 이 건물은 ㅅ개의 직사각형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켓트형식의 돔 혹은 큐플라와 미술관내 35m의 나무계단이 일품이라고 알려진다.
미술관의 이름은 마스트릭트 시내에 있던 Bonnefantenklooster(보네판텐클로스터/수녀원)의
이름에서 유리된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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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헤이그시립미술관 루시안 프로이드의 전시회를 보고

헤이그시립미술관에서 루시언 프로이드의 전시회를 보고왔다.
이화가의 작품을 전시회를 통해 보는것이 아주 어렵다는것을 신문에 본것같아 서둘러 다녀온 전시회.
기차를 타고 헤이그까지 도착하니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꽤 심하게 불었다.
그저 그런 바람이 아니라 바닷바람, 소금냄새가 풍기는 그런 냄새.
피카소작품들과 같이 전시를 하고있었으나 이 피카소의 작품들은 바르세로나 피카소미술관을
다녀온지라 대가의 작품은 뒤로하고 칼 아플의 풍경화 몇점을 보고는 이분을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꽤나 많은 독일차들이 있었던게 이분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하여 이곳까지 온것이다.


(헤이그시립미술관)

루시안 프로이드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또한 니체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연인이였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 Salome)와도 교분이 있던 지그문드 프로이드의 손자다.
1922년 베를린에서 출생하여 30년대에 독일 나찌정권을 피해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국적이 영국으로 되여있다.


(Sleeping girl, 1979 - 8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Head from girl, 1975 - 7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1954년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벤 니컬슨(Ben Nicholson)과 함께 베니스의 비엔나레에
영국대표로 참가한 이후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50년대 후기 루시안 프로이드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돼지털로 만든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또한 이것이 그의 그림에 큰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지며 이후 그의 모델들도 점점 뚱뚱해지고
그와 함께 이시절 빛과 그림자 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 자주 접할수있는 테마는 주변의 인물들. 
친구,  이웃,  가족 혹은 그의 연인. 
이 미술가는 그의 모델에 지독하다고 할만큼 요구가 많다고 알려진다.
주변환경이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는게 화가의 생각이므로 그가 모델의
어느 부분을 화폭에 담지않더라도 모델은 꼼짝도 하지않고
그가 시키는데로 서 있거나 앉아 있어야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Lage Interior, 1981 - 83,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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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가의 책임은 이것을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한다.
마치 개가 냄새를 맞고 본능적으로 먹이를 먹어치우듯이".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들의 초상화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대인의 두려움, 고독, 분노와 질투로 뒤얷힌 현대인의 초상화, 우리들의 초상화.



헤이그시립미술관(Gemeentemuseum Den Haag)

19세기 건축스타일로 유명한 네델란드 건축가 H.P. Berlage
(Hendrik Petrus Berlage/
헨드릭 페트루스 베르라게) 의해 건축된 미술관으로서
1935
공식적으로 관객들에게 문을 열었다.
베르라게는 미술관을 그림을 감상하는 미술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일종의 휴식처같은 역활을 하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의자라던지 불필요한 데코레이션을 없애고
그림을 감상하고 휴식하는 현대인의 정서의 휴식처로.
건물이 그의 중요한 최후의작품이다
  미술관은 많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세계에서 제일 많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빅토리 우기 부기(Victory Boogie Woogie) 이곳에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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