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에서미니멀 아트까지
압타이베르크 미술관[Museum Abteiberg]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자 오스트리아의 한스 홀라인
(Hans Hollein)이 건축 설계를 맡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묀헨글라트바흐의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은 젊은 화가를
육성하고 또한 그들의 작품 수집
, 전시를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웃 도시 쾰른, 뒤셀도르프처럼 많이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이 미술관에 소장된작품들은 다른 유명한 미술관에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
20, 21
세기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표현주의에서부터
팝아트
, 미니멀 아트까지 전시하고 있다.키르히너, 칸딘스키,
앤디 워홀,요셉 보이스, 이브 클라인 등 대가의 작품을.
그러나 이 미술관의 특징은 소장된 작품이나 미술관의 외형만은
아닐 것이다
. 대부분 유럽 미술관이그렇듯이 압타이베르크 미술관
또한 도시의 한가운데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를 제공한다
.
단조로우나 자연스러운멋을 가진 조각공원, 여러 개의 돌길과
계단으로 미술관을
연결해주는 이곳은 이곳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좋은
장소를 마련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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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지식으로 보는게 아니고 느끼는것

 

 

유럽 여러곳을 여행하다보면 자주 만나는것이 미술관이고 그속에서
많은 작품들
,
특히 좋아하는 예술가들을 만난다.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미술은 어려운것이고 무언가를 알고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

예술은 지식으로 보는게 아니라 느끼는것이 아닐까?

내가 작품을 보고 그속에서 무언가 공감할수 있는것을 찾아낸다면 나는 이미
그 작품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 어떤분들은 여행중에 그 고장의 음식을
기억할것이고
또 다른 여행자들은 여행지의 풍경에 감동할것 같으나
나의 여행중에는 미술관이 기억에 제일 오랫동안 남아 있는것 같다
.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오노레 드 발자크
 

에인트호벤,반 아베 미술관(Eindhoven, Van Abbemuseum, 1936)

필립스경기장(PSV경기장)이 있는 에인트호벤에 있는  미술관이다.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유명한 발자크의 동상과 피카소, 칸딘스키등의
유명한 미술가의 작품을 볼수있다
. 유럽에서 이 오노레 드 발자크의
동상을 볼수있는곳이 파리의 로댕박물관과 안트웨르펜
(Antwerpen, 한국어: 안트베르펜)이라고 알고 있다.


램브란트의 작품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레익스 국립미술관

반 고흐미술관

반 고호 미술관을 방문하면 반 고호의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 미술관
자체도 유명하다
. 이 미술관은 본관과 익스헤비션 윙이라고 불리는 후관이 있다.
주로 본관에는 고호의 작품들과 그가 생전에 친하게 지내던 인상파주의 화가들이
영구 전시되어있고
  후관(Exhibition wing)에서는 주로 전시회를 한다.
이 후관은 1999년 개관된 일본인 건축가 Kisho Kurokawa에 의해 건축된 건물이다.


스위스 바젤에서 본 틴겔리 미술관입구,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건축한 미술관.

스위스 예술가
, 조각가, 미술가등으로 알려진 틴겔리 혹은 팅겔리라고 불리우는
그의 미술관을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이는것이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인
틴겔리의 미술관
.
잡동사니의 집합소같은 이 미술관에서 물질주의 시대, 수십, 수백만통의 깡통이나
플래스틱으로 오염된 지구상에 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의미를 던져주던곳이다
.

그가 말하는;

모든 사물은 움직이고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으로 인하여 사물은 스스로 소멸된다.

움직임이 침묵이나 고정되여 있는것 보다는 나은것이라는
그의 말을 증명해주던 미술관
.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1930 - 2002]의 작품

틴겔리 미술관에서 만난, 나나의 형태로 유명한,
틴겔리의 아내이기도 한 니키 드 생팔의 작품.
 

현대 미녀의 관념과는 전혀 다른, 완벽한 여성의 육체가 아닌 오히려
비대하고 여성의 미에 대한 사회의 관념과는 또 다른 비너스를 탄생시켜주고 있다
.
 


 


푼다찌온 베일리 - 바이엘러 미술관

바젤 외곽에 위치한 렌조 피아노(Renzo Piano)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

건축가 렌조 피아노;

1937년 게노아에서 출생하고 밀라노에서 수업한 이태리 건축가.
퐁피두센터를 설계하기도 하고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축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

 


Bonnenfanten museum(보네판텐미술관)

마스트리흐트 새 개발지역구 세라믹 혹은 케라믹으로 불리워지는
Avenue Ceramique과 마스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995년 이태리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에 의해 이 지역구에서
제일 먼저 건축된 건물
. 네델란드 고 건축물에서 자주 볼수있듯이
붉은 벽돌로 건축된 이 건물은
  직사각형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켓트형식의 돔 혹은 큐플라와 미술관내
35m의 나무계단이
일품이라고 알려진다
.
미술관의 이름은 마스트리흐트 시내에 있던 Bonnefantenklooster
(보네판텐클로스터/수녀원)의 이름에서 유리된것으로 전해진다.


미니멀 아트와 개념주의(Minimal Art and Concept Art)의 미술가

존 발데사리 - Important bridge between Pop Art and Nouveau Realisme- 의 작품

 

"나의 작품은 어떤 특정한 인물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모든사람을 위하여
또 모든사람이 나의 작품을 감상하는동안 즐거움을 느낄수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만들기를 원한다" 라고 미술가는 말하고 있다.


피카소 미술관 실내, 이 미술관의 사진이 별로 없는것 같아요. 이 사진외에는...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시장. 
곳이 유명한 Mercat de la Boqueria 혹은 la Boqueria라고 부르는 시장.
우리나라 시장을 연상케 하던 무척이나 반가웠던 시장. 말린고추, 마늘등을
주렁주렁 역어서 달아놓은것을 보고 친정생각을 잠시동안 하기도 했던 시장이다
.



 

우트레흐트(위트레흐트)의 딕 브루나집/A Home for Miffy

미피 혹은 네인찌[Nijntje]라고 불리는 동화속의 토끼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어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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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립공원에 위치한 현대인의 휴식처, 크롤러 뮐러미술관[Kroeller-Mueller]

 

 

예전보다 살기 편하게 되였다고 말한다. 예전에 하던 그런 육체적 중노동마저

점점 사라져가고 일하기 편해졌다고들 한다. 기계들 때문이리라

이렇게 편해져 가는 세상 시간이 남아 돌아갈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바쁜 사람들뿐이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인다. 옆도 쳐다보지않고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가지고 있는 아젠다에

깨알같은 글로 빈칸을 만나기조차 어렵다.

오늘은 어디에, 내일은 또 어디로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게 만들까?

왜 우리는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숨쉴 여가조차 없이 달리고 있는지

 

이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분들을 위해 자전거도 공짜로 대여해주고 있답니다.
이 공원을 걸어서 구석구석 구경할수는 없는지라 이런 흰 자전거를 타고 자연을
즐긴답니다.





이런 도시인, 현대인의 딜레마를 해결해주는 미술관이 있다.
네덜란드
최대 국립공원 호게 벨루웨(Hoge Veluwe)에 자리잡고 있는
크롤러- 뮐러미술관. 장장 45km나 되는 거대한 국립공원에는

단지 산책이나 도심의 번거러움을 잃기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자연과 더불어 점차 잊혀져가는 예술의 일면을 감상하는 기회도 가질수있다.
시간의 결핍으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에게는 이 국립공원안에 있는
 
미술관이야말로 정신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굳이 미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미술관이라

부담도 없다. 특히 이 미술관 정원에 위치하고 있는 조각정원은 유럽에서는

조각정원으로서는 제일 유명한곳이다.  물론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도 있지만


 













네덜란드 갑부 안톤 크롤러 뮐러가 아내를 위해 지은 미술관

벨기에 건축가 Henry van de Velde에 의해 지어진




가는 날이 장날이라 네덜란드 특유의 바람과 비가 오는 바람에 이 공원을
다 둘러보지 못하고 왔다. 카메라 렌즈도 옷도 비에 흠뻑 젖어 공원안에
깔려져있던 황금빛의 단풍들조차 카메라에 담지못한채

 

   

제 블로그의 글과 사진은 불펌입니다.

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방명록이나 댓글로 미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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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츠 에셔의 무한한 공간의 세계[Maurits Cornelis Escher]

몇달전 헤이그를 둘러보면서 판화가 에셔의 미술관을 구경하고 왔었다.
그의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것이 수학적으로 그림그리는
방법때문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작품에 나타난 사물들은 아주 질서정연하고
더구나 이것은 한 작품을 보는것이 아니라 어려운 수학문제나 물리문제를
푸는것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거니와 보면 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다.

작품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보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다른 사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층계가 위에서 아래로 되여있다던지
발코니의 기둥이 엉뚱한곳에 있음을 그의 그림속에서 발견할수가 있다.

Maurits C. Escher, Sky and Water, 1938, 에셔미술관, 헤이그, 네델란드

Maurits C. Escher, Waterfall, 1961, 에셔미술관, 헤이그, 네델란드

그의 작품을 보는동안 마음에 아픔을 느낀다거나 하는것보다는 나자신이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스며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달할수없는, 손에 잡히지않는  수없이 많은 별들의 세계로,
마치 우주탐험을 하는것과 같이...
우주의 공간을 산책하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불가능한 세계,
돌팔구를 향해 헤매지만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는 공간의 세계.
찾아도 찾아도 출구를 찾지못하고 마치 프로이드의 정신세계로 습입되여가는

느낌도 버릴수가 없었다.

수학문제를 풀듯이 하나씩 하나씩 그의 그림의 부분을 파헤치고 들어가보면
참으로 파라독스한 부분도 있는것 같다.
그의 작품 낮과 밤, 공기와 물등에서 나타나는 정반대의 사물, 낮을 상징하는
흰새가 밤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 밤을 상징하는 검은새들이 오히려
낮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기술법에 목판, 기하학의 사용, 석판등이 있고 주제로서는
풍경, 생, 자화상등이라고 알려져있다.

그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것이 1954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수학회라고
하며 1960년 케임브리지에서 결정학에 대한 연설이후로 더욱 많이알려졌다고 한다.
그는 또한 국제적인 명성과 아울러 네델란드 왕실으로부터 상도 받았다.

그에 대한 많은 저서들이 있지만 1979년 미국 물리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
(Douglas Hofstadter)가 발표한 영원한 황금노끈(An Eternal Golgen Braid)책이
아주 흥미로울것 같다.
이책으로 저자는 1980년 퓨리쳐상도 받았다고 하니...


인물소개:

네델란드 판화가로 알려지는 마우리츠 코르네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한국명으로 마우리스 코르넬리스 에스허르라고도 불린다.
1898년 6월 17일 레우와던(Leeuwarden)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73세
1972년 3월 27일 네델란드 매디어의 중심도시 힐버섬(Hilversum)에서 생을 마쳤다.
현재 에셔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여왕 에마의 겨울궁전인것을
에셔의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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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을 앓던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


2년전 막내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었다.
에미의 나라, 한국이라는것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키고
이제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피가 섞인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서
..
어릴때 더러는 갔던 엄마의 모국과 성인이 된 아들이 보는 한국은 옛날 여름방학때 할머니집에
모기들로 잠을 설치던
, 무척이나  더운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이있는 청계천다리를 같이 거닐면서  환성아닌 환성을 지르고 한강을 내려다 보고
밤야경이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 남산타워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허름한 한식점에서
먹었던 그 음식들을 너무도 좋아하던 막내와 제주도를 방문했었다
.
그때 문득 떠오르던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의 두모악.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두모악을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그의 포토에세이
그섬에 내가 있있네를 구입했었다.


[저자: 김영갑, 출판사: Human & Books]

사랑하는이의 손을 잡아볼수도, 가고싶은곳에 휘적거리며 갈수도 없이,
오직 눈빛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하는, 풀지도 풀어지지 않는 사슬에 얽매여 찍은
그의 사진들을 보았던 어느날 내 눈앞에 펼쳐진 신문에 또 하나의 독일 미술가의 죽음을 보았다
.
사진작가 김영갑씨와 같은 병을 앓고있던 유명한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
60년대 아주 유토피아적이고 좌파사상적인 그림을 그리던

독일미술가, 조각가로 알려진 그의 작품에는 정치적인 색채감을 많이 발견할수있다.
예술가의 사회적인 개입, 참여, 이런것에 대한 표현이 예술가의 근본적인 임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며 또한 이영역에서 그는 세계최고의 미술가라고 유럽에서는 알려져있다.
이 화가는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이나 이야기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지만 독자들에게는
금방 알아볼수있는, 흔히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그런 주제인것이다.
권력의 남용, 차별, 굶주림, 전쟁등..
이런 주제들은 그가 성장한 분단된 독일의 현실, 2차대전이후의 독일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그가 살고있던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곳에서나
발생하고 또한 현재진행중인 그런 문제인것이다.
하여 그의 작품들이 더욱 더 많은이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한것같다.
그의 사실적이고 소수집단의 엘리트를 위한 작품이 아닌 모든 대중, 서민이 참여하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원했던 화가이고 보면 이점에서 그는 그가 원하던
그림을 그린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Hoert auf zu malen, 1966, Van Abbemuseum, 아인트호벤, 네델란드)

화가는 이작품을 통해 당시 아카데미식 교육과 이시절 유행하기 시작한 팝아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말해주고 있다.
"Hoert auf zu malen - Stop with Painting"에서 표현하고자 하는것은
예술가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책임이나 의무감, 현실에 당면한 주제들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는것이 생산성에 기여하는 작품보다 더 중요한것임을
표현하고자 하는것이다.
70년대초 독일화단에서는 화가 임멘도르프와 몇몇 유명한 화가들이 새로운 독일미술의
길을 개척했다.
소위 신표현주의(Neo- Expressionism)라는...


(Kanonel, 2005, De Hallen, 독일)

(De Rake, Gemeentemuseum, Den Haag, 헤이그, 네델란드)

무척이나 거칠고 어그레시브한 그림들은 추상파나 내면적인 지적그림들에 지친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쟝느의 그림에 주목하게 되는것이다.
그들의 화폭에는 파시즘에 대한 분노, 질서정연한 사회체제에 대한 반항등을 많이
발견할수가 있는것같다.
그당시 미술계에 유행하던 개념주의와 미니멀 아트와는 전혀 다른...


(Cafe de Flore, Gesetzestafeln, Kunst im Turm, 독일)

1978년 이태리 좌파화가 Guttuso의 Cafe Greco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연속작품
"Cafe Deutschland- 카페 도이치란드"의 그림들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독일사회의
문화적, 정치적인물들로서 마치 그의 개인적 보고서처럼 그가 만난 일련의 예술가나
드당시 정치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코멘트라고 보아진다.
작품주제가 그렇듯이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 서독의 자본주의의 허구, 나찌정권에 대한 분노등...


(Van Abbemuseum/반 아베미술관)
미술관입구에 서있는 Honore de Balzac/발자크의 동상, 오귀스트 로댕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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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황금시대의 거장, 요하네스 퍼메어(1632-1675) 혹은 베르메르(한국어)를 보고


Mauritshuis, Den Haag, 헤이그 왕립미술관

우리는 왜 이분의 작품에 그리 감동하는지.
그의 그림에 비친 이 아련한 여인들의 모습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섬세하고 다정한, 그시절 서민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풍경과 마치 정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듯한 방의 정밀하고 온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색채때문인지...

삼백여년의 세월을 두고 멀리 떨어져있던 이 화가의 작품 두개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나란히 전시되고있다.
우유를 따르는 처녀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인 저울을 가진여인
(Woman holding a Balance/De Dame met Weegschaal)이라는 작품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이 두그림은 17세기 5년동안이나 암스테르담  루레우췌(Rooleeuw)라는 상인의 집에
5년동안
걸려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그의 작품 저울을 가진 여인을 두고 이 화가의 특징을 제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의 그림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이 대가의 그림들은 매우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것 같다.
실지로 그는 그의 생존시 그리 부유하지도 그의 동료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그린 이그림들속에는
종교적이거나
그당시 유행하던 왕실의 그림들이 아닌 보통 일상의 그림들이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친근함을 느낄수가 있다.


Johannes Vermeer, c. 1665, Het Meisje met de parel, Mauritshuis

요하네스 퍼메어 혹은 얀 반 데르 메어 반 델프트(Jan van der Meer van Delft)라고도 하는 그의 그림들은
규격이
그리 크지않으나 매우 사실적인것 같다. 램브란트나 프란스 할스의 그림들과 비교한다면
그들의 그림은 
남성적이고 웅장하고 무언가 짓누르는 감정을 준다면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매우
서정적이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수있는 이웃과 같은 사람들의 그림, 정다움,
소박하고 여성다운것을 나는 느낀다.

아늑한 집안, 어딘가 머리를 대고 소근소근 들릴듯한 아야기마저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상상해보곤했다.


J. Vermeer, 1658, Het straatje, Rijksmuseum

살아생전 약45점의 작품을 남긴 화가의 출생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않고 1675년 델프트에서

생을 마쳤다고
우리들에게 알려져있는 화가.
17세기 바로코풍의 거장인 그를 두고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도 부르기도.. .

이말은 그의 그림기법이 후세인들에게 아주 수수께끼와 같고 그의 생에 대해 잘알려지지 않은것이
이유가 아닌가라고도 한다. 그당시 대가들의 그림의 테마였던 신화나 왕실의 그림이 아닌 일상을 표현하는
그의 작품속에 표현되는 주제, 그림속의 공간과 그가 사용하는 빛들을 두고 그를 빛의 대가라고 일부에서는
말하기도...

델프트의 풍경속에 나타나는 집의 모양, 실내장식, 책을 읽는 남자, 다산다난한 가정사를 표현하는
이그림들속에 수학적인,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림속에 나타나는 완벽한 빛의 사용과 색채는 마치 한장의 사진을 보는것과 같이 정밀하다는게
미술평론가들의 말.


J. Vermeer, 1660, De melkmeid, Rijksmuseum

J. Vermeer, De dame met de weegschaal, Nation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J. Vermeer, 1662, Brief lezende vrouw, Rijksmuseum

이 새개의 작품이 그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가고 있다고 하는 이 그림들은 가정적인 집안풍경,
빛이 주는 온화한 느낌을 우리는 얻을수 있을것같다.
그림이 그림으로서 벽에 결려지는 장식품으로서만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여인의 온화한 모습, 그 색채가 주는
안정감 이런것들로 나는 그의 그림에 눈을 돌릴수가 없는것이다.


헤이그 왕립미술관의 전경
호숫가를 끼고있는 이 미술관은 단지 미술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마치 한폭의 그림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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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브란트의 작품 "야경"의 수수께끼가 풀어졌다고 한다.

Rembrandt, De Nachtwacht, 1642, Rijksmuseum, Amsterdam

역사가의 말에 의하면 램브란트의 대작 야경/De Nachtwacht/Night Watch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회지휘, 연령,
이들이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었는지도 발견했다고 전해지고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감상하는 한사람으로 이그림의
주제나 작품이 나에게 어떠한 감동을 주는가에 대한 깊은관심은 있지만 여기에 나타나있는 인물들의 사회적지위나
나이같은것에는 별로 마음에 두고있지 않은지라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발견이 때로는 작품이 주는 신비함, 작품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나라가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것을 때로는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발견을 통하여 그시대 예술가들의 생활,
작품들의 배경을 하나씩 음미해보는 재미도 더러는 있을것 같다.
작년인것 같다. 반 고흐의 그림을 X-Ray로 연구한 결과 그는 같은 화푝에 두번씩이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가난했던, 동생 테오의 재정적지원을 받던 그로서는 이런 물질을 아낄수밖에 없었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영혼이 담긴,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그의 그림들에 더욱 애착을 느끼는지도...


Rembrandt, Hendrickje badend in river, 1655, National Gallery, London

부흥하던 네델란드 식민지시대, 소위 황금시대라는, 17세기 네델란드의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 알려지는 램브란트는
주로 단체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즈이드 홀란드(Zuid-Holland)주 레이든(여기에 네델란드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과가 있고
한국에서 건너온 입양인들이 더러는 이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있어요)
방앗간아들로 태어났다는 화가.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램브란트 할멘스존 반 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램브란트.
마침 풍차가 레인(Rijn)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이름이 Harmen(할멘), 그로인하여 할멘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혀진 램브란트.


네델란드나 스칸디나비아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Johan-son(요한의아들), Peter-son
(페터의아들)등의 이름을 가진이를
많이 만날수있고 직업을 알려주는 Visser(어부), Molenaar,
Molemaker(방앗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자주 접할수 있어요.



1630 -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곳에서 유명하게 되고 미술학교도 세웠다고.
살아생전 약 700여점의 작품과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고 하니 무척이나 생산적이였던 예술가였던것 같다.

그의 재정상의 문제점에는 여러가지 설이많다. 그가 후년에 매우 가난했다는설과 그렇지않다는 반대설.
그러나 후세 그의 그림에 많은 감동을 받고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런 역사적인 분석인 돈과의 관계보다는
그의 그림이 더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야경

램브란트는 1642년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야경을 그렸다.
단체초상화, 그시절 암스테르담시를 보호하던.... 지금까지 알려져있던 이 그림에 나타나는
유명한 대령/Frans Banning Cocq이
이분이 아니라 변호사직위의 전혀 다른가문의 Banninck Cocq고
그림속의 루테넌트인 Willem van Ruytenburch마저도
다른사람이라고 역사가는 말하고있다.
이그림이 야경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가 작품속의 배경이 하도 어두워서 야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실지로 이그림은 어두운 밤이아닌 낮의 배경이였다고도 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속에 자주 만나는 명암, 이빛과 그림자의 강한대조를 만나는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이 명암은
그가 발견한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가장 잘 적용한 화가로 우리세대에 알려져있고 
그는 이것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것 같다.

램브란트는 해외로 여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있다. 그당시 유명했던 이태리 화가들의 작품마저도
보려고 하지않았다는...

네델란드에서도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는지라 굳이 해외로 여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우리들이 만나는 그의 작품속의 주제들이 성경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가족들이다.
부인과 그의 아들 티투스등.


Rembrandt, Het Joodse bruidje, 1664, Rijksmuseum, Amsterdam

램브란트만큼 유명한 반 고흐마저도 "내인생의 십년과 단 10일만의 시간을 바꿀지언정 램브란트의 유태인신부를
볼수만 있다면"
이라고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니 이 대가의 그림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미술학계에서 말하기를 램브란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의 제자들이 그린 작품들을 잘 구분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것은 램브란트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제자들이 학비대신 램브란트의 지시대로 그의그림을 복사하는일을
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이제자들의 그림에 그는 그의 사인을 넣고 작품을 팔았다고 하니 그런일로 미술학계에서는
램브란트의 그림과 제자들의 그림을 더욱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Rijksmuseum/레익스뮤지움, 네델란드 건축가 Cuijpers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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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레익스뮤지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레익스뮤지움, 암스테르담

2008년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델란드 국립미술관에 8601의 다이어몬드로 만들어진 영국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For the Love of God"가 전시되였다.
18세기 해골에다 백금을 덮어세우고 그 해골에다 어마어마한 수의 분홍색의 다이어몬드로 장식한...
레익스뮤지움이라면 미술을 아는 사람들이면 다 알고있는 유명한 램브란트의 그림이 걸려져있는 미술관.
이 미술관에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작품을 전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켰고
이 미술가에 대한 찬, 반론의 의견들로 이 전시회가 한때는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했다.
현대인조차 이해하지못하는 현대미술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밤에 본 그의 해골을 보는순간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기도했다.


데미안 허스트/For the Love of God

그의 말로는 이 작품을 75만유로에 처분했다고한다.
만일 그의말이 사실이라면 생존해있는 미술가로서 최고의 가격으로 경매한 최초의 예술가라고
미술학계에서는 말하고있다.
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서"에 사용된 다이어몬드에 허스트는 14만파운드를 지불했다고도 하니
어쩐지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켓팅의 천재쯤이 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페터 푸스/For the Laugh of God

그의 폴란드 동료 페터 푸스는  이 허스트의 작품과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었다,
허스트가 그의 작품을 "For the Love of God" 라고 부르는 반면 페터 푸스는
그의 모조품을 "For the Laugh of God" 라고 부른다.
그는 또한 허스트의 백금과 다이어몬드 대신 플라스틱과 유리를 사용하고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금송아지

이년전부터 프란시스 베이컨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 그가 외면하던
회고적인, 과거를 추상하는 작품을 만들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과 함께 떠올리는 빅 비지니스.
이 빅 비지니스의 상징인 그를 80년후반, 90년대 전반기에 형성된 Young British Artist의
대표자라고 불렸던것같다. 이 YBA의 중요테마가 아이로니, 타락 혹은 퇴페된 사회나
정치적인것이였다니 반전데모, 플라워파워, 자본주의에 대한 학생운동도 사라져버린
갈팡질팡하던 시대에 또 다른 형태의 미술을 만들어냄으로서 상업적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었나보다.
그들의 브랜드인 YBA가 눈깜짝할사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였으니...


데미안 허스트/Anatomy of an Angel

그가 인터부하는것을 텔레비젼을 통하여 보면서 느꼈던것은 에술가라기보다는 팝스타같은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다는것이다.
U2의 보노와 비교하던 한 비평가의 글때문이였는지는 알수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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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다찌온 베일리 - 바이엘러 미술관



단풍이 언제 빨갛게 물들엇는지, 낙엽이 떨어져가는줄도 제대로 의식하지않고 지내던 2008년 11월
스위스 바젤에서 몇일을 지내는동안  몇군데의 미술관을 다녀왔다.

- 바젤 -

예술가의 도시보다는 화학과 대학의 도시로 더 잘 알려져 있지않을까 싶은 그곳은 예술을 좋아하고
또한 이것을 사랑하는 이로서는 한번쯤 방문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곳이라고 생각된다.
도시 구석구석 자리잡고있던 연극관, 오페라하우스 무려 41개의 미술관이 있다는 바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현대건축과 고대건축이 교차하고 마치 로마인들의 숨소리마저
들릴듯한 라인강을 끼고있는 바젤은 건축학도들 또한 한번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나싶다.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있던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 또한 이분의 작품이 내가 자주가는
네델란드 마스트릭트 새 개발지구 세라믹에서도 있어 그의 작품을 여기에서 만나보는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외에도 그의 작품 탕기리미술관(Tinguely Museum), 피터-메리언-하우스(Peter-Merian-Haus)를
설계한 추상파 예술가 도날드 유드(Donald Judd)등 많은 건축물을 감상할수 있었다는것은
건축에는 문외한 나로서는 참으로 좋은 지식이 되였기도 하고 또한 이곳 바젤에서 네델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가 그의 생의 마지막을 지낸곳이라 참으로 묘한 인연같은것을 느끼기도했다.

시내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면 렌조 피아노(Renzo Piano)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이 있다.
이곳이 바로 베일러 부부가 일생동안 수집한 예술품의 일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베일러 재단 미술관
소위 푼다찌온 베일러(Fondation Beyeler)라는 곳이다. 이 건축가라면 얼핏 생각나는것이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와 암스테르담에 있는 NEMO이다.

이 베일러 재단 미술관에 빈센트 반 고흐, 모네, 세잔느, 피카소, 몬드리안, 칸딘스키등  많은
세기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젤외곽에 있던 이 미술관을 찾던날은 일요일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이곳에서 전시된 작품들이 물과 빛의 도시 - 베니스 -를 주제로 한 대가들의 작품들.

베니스 - Venedig -
카나레토, 터너 그리고 모네까지라는 - Von Canaletto und Turner bis Monet -


(E. Manet, Le Grand Canal a Venise, 1874)

더보기



이 베니스를 갔다온지가 십몇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 관광객들로 무척이나 붐비던
산 마르코 광장앞의 비둘기, 약간 술취한듯한 아저씨가 운전하던 곤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물과 빛의 도시가 거처없이 방황하며 절망과 자책, 그리고 굶주림과 관객들의 배신감으로
머리를 싸맨 예술가들의 영감의 기원이 되었다는것을 그들의 작품을 보는동안 얼마나 절실히
내 피부속으로 스며들던지...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한국에서 바이엘러 혹은 베일러라고 부르는 이 미술관은 1997년 바젤 외곽지역 라이헨(Riehen)에 건축되였다.
이 미술관을 건축한 건축가가 유명한 렌조 피아노.
실상 베일러부부가 미술품을 소장하게 된 동기는 그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미술품을 판매하고자
했기때문이라고 한다.
근 50년동안 그들이 수집한 작품들은 일생동안 만났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1989년 처음으로 이 부부가 수집한 작품들을 Reina Sofia Museum, 마드리드에 전시회를 한것이
베일러재단이 성립된 계기가 된것이다.
이부부는 바젤시내 화랑을 경영하는 동시에 많은 현대미술가의 작품들, 네델란드의 거장 반 고흐, 고갱,
드가, 모네, 마네, 세잔느, 피카소, 클레,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베이콘등 세기의 거장들의
작품들이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

1937년 게노아에서 출생하고 밀라노에서 수업한 이태리 건축가.
1971년 그의 동료 리챠드 로저스와 건축사무실을 설립하고 퐁피두센터를 설계하기도 했다.
그의 건축사무실 Renzo Piano Building Workshop이 있고 건축물뿐만 아니라 실내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_ 라인강가의 예술의 도시 바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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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발데사리 - Important bridge between Pop Art and Nouveau Realisme

미니멀 아트와 개념주의(Minimal Art and Concept Art)



네델란드 남쪽 림부르그(Limburg)주에 마스강과 옛 로마인들의 유적이 산재한
마스트릭트(Maastricht)라는
도시가 있다.
한쪽으로는 벨기에, 또 다른쪽으로는 독일에서도 유명한 공과대학이 있는 아켄(Achen)이 인접해있고
유럽연합(EU)의 발생지이기도 한 고적의 도시.
이곳 보네판텐뮤지움(Bonnefantenmuseum)에서 2008년 현대미술에 대한 비엔나르 국제상을
77세의
존 발데사리에게 수여했다.
이 국제상이 그에게 주여진 가장 큰이유가 발데사리는 교수로서, 예술가로서 젋은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준다는것.
이런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그림을 그린 동기가 실상은 굶주림을 피하기위한
단순한 생존의 방법이였다고 노장의 미술가는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수있었던 작품들은 2003년 이후의 작품으로
Forth State(Prima Facie), Yellow(Blockage), Part Two(Noses & Ears)등.



작품들은 그가 그렸거나 색칠한 화판과 글들을 연결해 놓았다던지 오래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이용한것들.
그중에서도 강렬한 색채의 사람들의 신체부분을 사용한 사진이 굉장히 인상깊었고 좀 유머스러웠다.
미술가는 사람의 얼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마나 눈섶부분에....



초기에 그의 작품(풍경화)과 그가 가지고 있던 일상의 그림들은 1968년쯤 화장터로 보냈다고 말하는 화가.
이 불탄 그의 작품의 재위에 누운 형태를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기도 하고 이거은 전형적인
반 예술가의 본보기로서 잘알려져있다.
그의 작품을 불태운 이유로는 자신의 에고이즘을 버리고 새로 출발하고자...
미술관, 갤러리도 뒤로하고 그저 그를 지켜보는 일반대중을 위햐여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화가.



"나의 작품은 어떤 특정한 인물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모든사람을 위하여
또 모든사람이 나의 작품을 감상하는동안 즐거움을 느낄수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만들기를 원한다" 라고 미술가는 말하고 있다.

77세의 노장의 예술가는 아직도 그의 예술분야에 시험중이라고
생을 살아가는동안 많은것을 배운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질문에 전부 대답을
줄수가 없노라고 겸손히 말하고 있었다.

60년대와 70년대 초기 예술가들이 무한한 가능성를 제시하는 미디어를 통해 많은 비데오영화를 만들고
발데사리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의 비데오작품 "모자접기"가 좋은 본보기가 될것이다.
반시간정도 진행되는 이 작품에는 작가는 모자를 접고, 모형을 만들고 마치 어린이가 장난감을 다루듯이 끓임없이
이 하나의 모자와 씨름하고 있다. 예술가와 비데오카메라와의 상호관계를 엿볼수있는 작품.

그가 찍은 작품에서 미술가는 그의 객관적 또는 주관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순간 순간 조절할수있으니...
그리하여 이작품을 플래스틱의 창조라고도 말하는, 이차원의 구도를 지닌 작품이라고 하지않던가.

1980년 이후 사진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그는 그의 작품에 문체와 대중미디어의 그림들로 복합시키고 있다.
특히 헐리우드의 필림등을...
이것은 작품을 통하여 글자-문체의 의미, 문체자체가 어떻게 그의 작품속에 영향을 주는가를 말하고자
하는것이라고 한다.

발데사리는 1972년과 1982년 독일 헤센주 카셀(Kassel)의 도큐멘타(Documenta)에 참석했다.


Bonnenfanten museum(보네판텐미술관)

미술관은 건축학도들에게 잘 알려져있는 마스트릭트 새 개발지역구 세라믹 혹은 케라믹으로 불리워지는
Avenue Ceramique과 마스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995년 이태리 건축가 Aldo Rossi(1931 - 1997)에 의해 이 지역구에서 제일 먼저 건축된 건물.
네델란드 고 건축물에서 자주 볼수있듯이 붉은 벽돌로 건축된 이 건물은 ㅅ개의 직사각형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켓트형식의 돔 혹은 큐플라와 미술관내 35m의 나무계단이 일품이라고 알려진다.
미술관의 이름은 마스트릭트 시내에 있던 Bonnefantenklooster(보네판텐클로스터/수녀원)의
이름에서 유리된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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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몬드리안

몬드리안은 1944년 72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화실에 완성 되지않은 빅토리 부기 위기(Victory Boogie Woogie)를 남겨둔채.


(Victory Boogie Woogie, oil paint, 1942 - 1944, Gemeente Museum Den Haag/헤이그 시립미술관, Den Haag, NL)

이 그림은 시각의 축제같은것을 연상하게 한다. 푸른색, 노란색, 빨간, 흰색등이 서로 춤을 추듯이...
흰색이 갑자기 회색으로 바꿔지며 청색이 진한 청색으로 바꾸어지면서 거의 검정색으로 변한다던지.
세로와 가로로 이어져가는 사각모양의 색깔들,  마치 퀴즈나 푸즐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Broadway Boogie Woogie, oil paint, 127 x 127 cm, 1942 - 1942. Museum of Modern Art, NY)

이 그림의 제목은 몬드리안이 직접 붙힌게 아니라고 한다.  작가자신은 이 그림이 이차대전의 승리를
연상시키는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빅토리 부기 우기라고 붙혀진것 같다.
그리고 이 그림은 또한 그의 1942 - 1943년의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Broadway Boogie Woogie)의
연속그림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뉴욕에서 유행하던 재즈,  짧은 음률식의 가로,  세로의 줄등
즉 이 그림이 자유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승리등을 표현한다고 전해진다.
이 그림이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유명하게 된것은 이 화가의 화가로서의 절정시대의 그림이기도 하거니와
화가의 인생을 마감하는 두가지의 세계와의 만남, 추상적인 그림인 동시에 보는이로 하여금 아무런
제시를
하지않은것이 또한 특징이라고도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현재 우리들의 세계를 볼수있을것이다. 
세계의 인종들을 상징하거나 여러종류의 사람을 상징하는 느낌도 이 그림을 통해 찾아낼수있다.

동양인, 서양인, 아프리카대륙의 사람들을
......

Piet Mondriaan(1872 - 1944
)

Pieter Cornelis Mondriaan(피터 코네리스 몬드리안)은 1872년 3월 7일 네델란드 암메스포트(Amersfoort)에서
태어나 학교를 마친뒤 암스테르담에 있는 Rijksacademie(레익스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이 시절에 그는 주로 풍경화와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을 많이 그린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 암스테르담에서 생활하면서 상징주의 화가와 점묘주의 화가들의 영향으로 이에 대한 작품등을
만들었으며 그즈음 프랑스 입체파의 영향으로 파리로 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시대에 파리는 화가들의 "The place to be"가 이유였던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그의 작품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비평을 받았다고 알려지고있다.
몬드리안은 칸딘스키를 Cercle et Carre라는 예술가의 모임에 만난 이후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1938년 독일 나찌정권을 피해 런던으로 가게되고 1940년 뉴욕으로 떠나
그가 생을 마칠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몬드리안을 De Stijl(Neo-Plasticism/신조형주의)의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도 한다.

현재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디자인의 아버지.


(Evolutie/진화, 약 1911, oil paint, Haags Gemeentemuseum/헤이그 시립미술관, Den Haag)

De Stijl(신조형주의)

신조형주의라고 불리는 이 예술가의 모임은 1917년 네델란드 예술가들이(건축가와 화가들) 이곳 레이든(Leiden/이곳에 네델란드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과가 있다)에서 창립되었다. 중요한 멤버로서는
테오 반 두스부그(Theo van Doesburg), 몬드리안, 바트 반 데르 렉(Bart van der Leck) 그리고 유명한 건축가
게리트 리트펠드(Gerrit Rietveld)등을 말할수 있다.

이 조형주의의 특징은 1차색을 사용하며 때때로 검정, 흰색, 회색등을 복합하기도 하고 직선을 주로 이용한다.


[Gerrit Rietveld, Rood-blauwe stoel, 빨강-청색의 의자, 1917 - 1918,
collection Torsten Broeham, Duesseldorf, Germany
)

신조형주의의 아이디어와 주체는 단순함과 추상적인것을 추구하며 빨강, 노랑 그리고 청색을
주로 이용하며  이 신조형주의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1923 - 1924년에 지어진
리트펠드-슈로더집(Rietveld-Scholderhuis)이라고 알려진다.


헤이그에 있는 시립박물관에는 무려 158점의 몬드리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빅토리 부기 우기도 볼수가 있다.  네델란드 국립공원이 있는 호게 벨루웨(Nationaal Park de Hoge Veluwe)에
있는 Kroeller-Mueller Museum(크롤러 뮬러미술관)에서는 주로 1914년에서 1918년 시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의 출생지에는 몬드리안을 추모하고자 몬드리안의 집이 있으며 암스테르담에도 그의 이름을 가진
학교와 거리가 있다.



 몬드리안의 빅토리 부기 우기는 1997년 유로화 직전 82 million(네델란드 굴던)(현 유로 37 million)으로
미국으로부터 네델란드 국립예술협회에서 구입했다. 이 미술품 구입 당시 찬, 반론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거액의 돈을 들여 미완성의
작품을 구입한다는것에 대단히 불만이 많았던 반대론자들의 이야기였다.
실지로 이그림은 네델란드 중앙은행이 유로화 직전 구입하여 네델란드 국립예술협회에 기증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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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의 중앙역을 내리자마자 들리는 각종언어들 역시 국제도시답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붉은 벽돌의 중앙역, 1881 - 1889년에 지은 로몬드 태생의 피에르 커이프스의
작품(Pierre Cuypers). 이 건축가가 처음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죠.
그가 지은 건축물, 재건축등은 아주 유명하며 고향에서의 그의 지위는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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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을 빠져나오면 마주보이는 운하,  이운하에 관광객들을 위한 배들이 많이있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한다면 이런 배를 타고 운하를 한바퀴 돌아보는것도 일품일듯.
이날은 배들을 타는 관광객들이 별로 없는것 같았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차거운 바람때문이였는지...
물의 도시 네델란드에는 이런류의 운하로 되어있는 도시가 많다.
꽤나 낭만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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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에서 전철 2번이나 5번을 타로 Van Baerlestraat(반 베르레스거리)에서 하차하면
바로 건너편에 있는 16세기 르네상스식의 건축물이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Het Stedelijk museum)이다.
소장품으로는 네델란드 현대미술그룹(CoBra-코브라/주요 멤버 칼 아플, 코네이에),
유명한 말레비치의 작품들 그리고 몬드리안의 작품을 감상할수있다.  현재 공사중인 이 미술관은
그림들을 국립미술관, 반 고흐미술관,  반 아베미술관등 여러곳으로 분산시켜 놓고 있으며
이 시립미술관은 2010년에나 다시 문을 열게 될것이라고 뉴스에서 전해지고 있다.

시립미술관,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미술관이 있는 미술관광장(Museum Plein)에서
많은 서민들의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 어린이들의 자전거타는 모습,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태양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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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콘서트홀(Het Concertgebouw/콘세트 게바우)
반 고흐미술관 뒷편 미술관광장 건너편에 서있는 세계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콘서트홀로
유명하며 세계 3대 콘서트홀(Symphonyhall Boston, Musikvereinsaal Vienna)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건축가 아돌프 반 겐트(Adolf Leoard van Gendt)가 독일 라이프직의 직물회관(Neue Gewandhaus)에
영감을 받고 건축된 네오클라식의 건축물. 1888년에 개관되었다고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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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미술관에서 국립미술관 가는길,
미술관광장에 미술관들이 한꺼번에 자리잡고 있어서 관광객들에게는 아주 편할것같다.
최소한 세개의 미술관을 방문할수있으니...
예전에는 이런 장사꾼들이 없었는데 이것을 보는 나로서는 아주 정다웠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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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네델란드 국립미술관 소위 Het Rijksmuseum(레익스뮤지움)이라고 불리우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건축한 피에르 커이프스의 작품이며 건축연도는 1876 - 1885년.
너무나 유명한 램브란트의 야경, 요하네스 버메어(Johannes Vermeer)의 우유소녀,
얀 스테인(Jan Steen)의 성 니콜라스의 축제, 프란스 할스(Frans Hals)등
수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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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위에 놓여진 한송이의 해바라기나 태양이 강렬하게 비추는 어느 여름날 이런 해바라기를
만나신다면 한번쯤은 고흐의 해바라기를 생각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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