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인들이 즐기는 여행지는...

 

 인간은 유목민의 기질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것 같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날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과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하여 여행으로부터 돌아옴과 동시에 또 다시 여행가방을 꾸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것 같다.  여행자가 여행을 하는 목적에 따라  여행지가

다르듯이 살아가는 생활환경이 여행의 목적지나 여행의 의미를 다르게

만드는것 같다.

 
2008년 룩셈부르크에서
 
2008, 룩셈부르크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바닷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우리나라의 황토흙으로 만든 집과도 같다고나 해야할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난 상어, 어떤 종류의 상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어떤 여행지를 선호하고 어떤 방법으로 여행들을 할까
?

대체로 네덜란드인들이 말하는 여행, 바캉스는 주로 여름에 행해진다.

이들이 말하는 바캉스의 뜻은 한마디로 휴식이다. 복잡한 도시를 피해

나만의, 우리들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게 이들이 말하는 여행이다.

여름에 행해지는 여행은  북구인들이 갈망하는 태양에 대한 한없는
욕구심을 채워주기도 하고 여름 방학이 긴 탓으로 자녀들
, 미성년자를
두고 있는
부모들이 가족들과 긴 여행을 할수있는 적절한 시기이다.

이곳 유럽의 여름방학은 대체로 5-6주간으로 나라마다 여름방학의

시기도 조금씩 다르고 각 주마다 방학이 다르다. 이유로는 유럽이라는

거대한 대륙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유럽전체의 많은 기능이 정지상태로까지

몰고 갈수있다는것에 대한 예방대책이 아닌가도 생각한다.

그러면 이들은 주로 어떤 여행지로 그들의 여행을 즐길까?


스와질란드 사파리공원의 짧은 동영상

네덜란드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는 프랑스 특히 보르도(Bordeaux) 부근이다.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다른 유럽인들보다 네덜란드인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우선 언어문제라고
볼수있다
. 대체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사람들이라면, 특히 50대이후의

네덜란드인들은 유창하지는 않지만 몇마디의 불어는 이해하고 말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허구헌날 만나는 햇빛을 이곳 북구 유럽,

네덜란드에서는 잘 만나지 못한다. 때로는 푹푹 찌는듯한 우리나라의 여름이
오히려 그립듯이 이곳 여름은 예상할수가 없다
. 방학동안 비로 휴가를
보내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 그리하여 그들이 열망하는 여행지는
햇빛을 볼수있는
, 여름다운
여름이 있는 나라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그들이 프랑스로 여행을 즐기는
이유중에는 물론 언어문제, 기후등이
있지만 자동차로 갈수있다는 점도
언급할수있다. 장시간 자동차에서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휴가를 가는 네덜란드인들은
대체로 자가용을 선호한다
.

두번째로 네덜란드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는 아마 스페인일것이다.
자가용으로 또는 비행기로 가는 이 여행의 이유는 프랑스를 방문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 단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취미중에는
선텐이 단연 압도적이다
. 우리가 흰 피부를 선호하고  햇볕에 그을리지
않기위해 양산이나 모자를 사용하는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볼수가 있다
.
적당한 선텐은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부암의 발생요인이 된다는
사실로 인해 열심히도 선텐크림을 바르기는 하지만 이곳
서구에서의 피부가 희다는 의미는 부의 상징이 아니라 빈곤을 의미한다
.
여행 다녀온 사람에게 제일 먼저 던지는 인삿말중에는
갈색피부가 아름답다라는 말이다.
아마 이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여름철 양산을 사용하는 여성분들을
본다면 무척 의아해 할것이다
. 이곳에서 양산은 우산인것이다.

햇빛을 방지하기위한게 아니라 비를 피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양산이라는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왜 굳이 양산을 사용하는지도
이곳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

세번째로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방문하는곳이 터키나 그리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스를 방문한 많은 분들의 이나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그리스가 스페인보다는
여러모로 좋다고들 한다
. 아직도 그리스 구석구석 옛 문화들을 자주 만날수 있고
스페인의 관광지역에서 자주 볼수있는 관광객만을 위한 지역개발에 대한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 이들은 문화유산으로 산재한
아테네를 찾아가는 일보다는 크레타섬이나 그리스의 작은 섬들을 많이 방문한다
.
도시 아테네에서 볼수없는 전형적인 그리스의 모습을 보기원하는 여행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섬들이다
.

유럽,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휴가, 여행은 그들의 생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일년동안 일과 복잡한 인생사를 이런 여행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이들은 굳이 사람들로 북적되는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자신들만의 공간마련,
조용히 가족들과 추억에 남을만한 여행지를 많이 추구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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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프린센그락트 263(Prinsengracht 263).


이곳이 안네 프랑크가 나치정권을 피해 2년동안 몸을 숨긴곳이다.

안네가 13살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기록된 그녀의 이야기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아직도 이 소녀의 이야기를 지구

어디선가 읽고있다.









그녀의 일기장에 이렇게 감동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우리는 아직도
그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나.


출판사: Contact, Amsterdam, Het Achterhuis, 안네의일기
안네의 일기를 읽는 이들은 그녀의 일기속에서 높은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려고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숨소리를 죽이고 그녀에에 주어진 작은 공간속에서 친구를

그리워하고 공포속의 생활을 표현하는 이 일기장속에는

인류역사 최초로 만들어진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기위해 만들어진

가스실, 유태인학살, 파시즘을 만난다. 그녀의 일기장을 읽고 또는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이런 엄청난 사건들에 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우리들이 살고있는 지구 어디선가 진행중인 파시즘에 치를 뜨는것이다.

 




실상 안네 프랑크의 집 혹은 박물관의 건물자체는 별로 볼것이 없다.
네델란드를 상징하는 램브란트, 반 고흐의 그림과 같이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도 전시되여 있지않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가파른 계단, 숨이 막힐듯한 공간, 그곳에 전시되여 있는

사진들과 책상등으로 안네가 살았던 그 시절의 상황을 상상해볼뿐이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외면의 초라함에는 아랑곳없다.

초라하다면 초라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하여 일년에도 수천만명이 방문하는

이유가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지구상에 다시는 이런 슬픈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인것같다.


이곳은 그저 이름난, 즐기는 관광장소만은 아니다.

이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 오늘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곳이다.

안네 프랑크(Annelies Marie/Anne Frank, 아넬리스 마리 프랑크)

1929 6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

1945년 베르겐-벨젠(Bergen-Bersen)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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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담광장에 서있던 자유의 상징, 여왕왕궁[Koninklijk Paleis op de Dam]





수리로 새롭게 단장한 암스테르담 당광장
(Dam, Dam Square)에 서있는

여왕의 왕궁이 관중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권위의 상징인 왕궁이

일반인들에게 왕궁의 문을 연다는것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왕실에 운영되는것으로,

왕실유지비에 대한 의혹심과 일년에도 헤아릴수조차 없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암스테르담의 경제, 문화 그리고 이 관광의 도시 이미지홍보에도

한몪하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든다.




한번 다녀가는 관광객이 뿌리는 금액들도 결코 무시하진 못하겠지만

네델란드를 다녀가는 관광객이 이나라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가는것을

분석해보는것도 중요한 관광사업의 업무라고 볼수있는것 같다.

왕궁앞에 벌여지는 각가지 행사들, 10m거리도 되지않는곳에서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들
, 왕궁앞에 세워져있던 많은 자저거들은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을 대표한다고도 볼수있을것 같다.

방문하는 관광객이 단 한번의 방문으로 끝이나는것이 아니라 재방문의 가치를

자유를 만끽하는 이런 거리풍경에서도 느낄수 있을것이다.
이런 방문객들의 태도가 결국 영구한 관광사업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으로 생각된다
.


 


암스테르담 담광장에 있는 이왕궁은 여왕의 집무소 역활을 한다.

헤이그에 있는 다른 두개의 왕궁처럼.

여왕집무소이외의 왕궁의 주요역활은 네델란드에서 일어나는 큰행사,

해외귀빈들을 모시는 장소로 주로 사용되고있다.

전쟁기념관 건너편에 서있는 왕궁은 야곱 반 캄펜

(Jacob van Campen, 한국어: 제이콥 반 캄펜) 1648 – 165년 건설한것으로

원래는 암스테르담 시청사였다.

겉으로 보는 여왕의 왕궁은 그리 화려하다고는 말할수없다. 회색이나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겉모양의 건축물은 왕실을 대표하는 왕궁의 화려함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허나 실내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주치는 거대한 대리석의 기둥들, 바닥.
천장을
장식하는 어마어마한 천장 프레스코, 수없이 많은 왕실소장품들,

옛 네델란드 가구들은 네델란드 황금시대를 연상케한다.

13,659개의 기둥과 석재로서는 독일의 벤다임지역에서 생산되는 사암을
이용했다는 이곳은 한때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의 많은 후보가운데 속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행정목적의 건물이기도 했다
.




 


네델란드여왕 베아트릭스가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것은 아니였다.

여왕과 이 암스테르담시와의 관계도 그리 좋았던것도 아니였고.

그녀가 독일귀족태생 클라우스 본 암스베르그공(Claus von Amsberg)과의

결혼사실이 발표되였을 당시에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그녀의 지위마저 흔들렸다.

그이유로서는 이차대전의 후유증, 클라우스공의 독일출생이라는점 그리고
이분의 젊은시절 나찌정권 청년단가입등으로

그러나 클라우스공의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가 생존시 왕실의 보수적인 이미지타파,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참여등으로 한때는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화려한 왕궁에서의 왕실로서가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를 중요시하고

서민들과의 거리감을 타파하고자 네델란드왕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직접 조각을 하는 베아트릭스여왕의 예술에 대한 관심도는 너무 잘알려진 사실.

 





바닥에 쓰여진 재료로서는 대리석이고 이바닥에 두개의 반구가 그려진 지도가있다.

서반구와 동반구.

이것은 당시 네델란드 식민지정책과 영토에 대한 지도이다.

네델란드역사를 잘 반영해주고 있는것 같다.


네델란드 왕궁들로서는:


Paleis op Dam{Royal Palace}, Amsterdam(암스테르담),

여왕의 집무실로 사용하고있다.

Paleis Noordeinde, Den Haag(헤이그), 여왕의 집무실

Paleis Huis ten Bosch, Den Haag(헤이그),

하우스 텐 보스라는 왕궁.

많은분들은 일본 나가사키, 사세보(Sacebo)시의 테마파크 하우스 텐 보스를

알고 있을것이다. 이곳은 네델란드 왕궁의 이름을 빌린, 네델란드의 한부분을

복사해서 만들어놓은곳이다.

De Eiken, Wassenaar(와세나르)

Huis Het Loo, apeldoorn(아펠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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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전시회 구경





몇주전에 요트전시회 초대장을 받았다.
바다는 좋아하나 배를 타는것을 두려워하는지라 요트에 별 관심도 없고
지식은 없지만 받았던 초대장을 버릴수는 없었던지라 발길을 요트전시회장으로
옮겼다. 나에게 주는 요트의 의미는 단순한 부의 상징 혹은 80년대
젊음과 스피드의 상징이였던 돈존슨(Don Johnson)의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
의 기억으로 엮어져 있을뿐이다.



집한채를 구입할만한 비싼요트의 침실이였지만 그렇게 럭서리하지 않았던것 같다.

이 버튼을 누르면 아마 나를 넓은 바다로 데려다 줄것도 같은 신기한 단추모양의 버튼들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 요트라는 단어가 네델란드의 약트(jacht)에서
유래되였다는것을 아는이는 얼마나 있을까.
이 약트라는 단어는 사냥을 의미한다.
최초로 사용된것이 네델란드 공작 마우리츠(Prins Maurits).
그시절 바다를 휩쓸던 네델란드가 전쟁목적으로 만들었던 배를 약트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요트(Yacht)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있다.







최초로 요트가 만들어진게 17세기로 알려지고 있다. 왕실가의 선물용으로...
네델란드여왕이 소유하고 있는 요트로서는 그린드래곤(De Groene Drack/The Green dragon)
으로 1957년에 만들어졌다.






유명한 요트로서는:

브리타니아(Britannia), Her Majesty's Yacht Britannia 라고 불리우는 영국왕실의 요트.
현재는 사용되지않고있다.
게르마니아(Germania), 독일의 유명한 철강업체 크루프(Krupp)회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철강업체 크루프사는 한때 전쟁범죄라는 좋지못한 이미지를
가지고도 있었다. 2차대전당시 강제노동, 나찌정권의 협력등으로...
일브르크(Illbruck), 독일의 요트. 2001 - 2002년 볼보오션레이스에 우승했다.
알링기(Alinghi), 스위스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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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