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날, 암스테르담의 모습

 

4 30일은 여왕의 날이다. 현 네덜란드 여왕

베아트릭스의 생일은 아니지만 할머니 때부터

이어오는 여왕의 날은 네덜란드에서 몇 안 되는

공휴일이다. 유럽에서 공휴일이 제일 적은 나라

네덜란드인은 이런 공휴일을 어떻게 즐길까?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올해 여왕은

우트레흐트를 방문하지만, 여왕의 날은 역시

암스테르담이 제일 재미있다. 오늘 같은 날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도 암스테르담이고 행사도

다양하니. 실상 암스테르담은 여왕을 싫어하는 도시다.

암스테르담 사람은 다른 도시에 비해 입헌군주제를 싫어하고 여왕에게도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도시다. 독일인 클라우스와의 결혼을 절대적 반대했던 도시고 거기다 결혼식

계란 폭탄사건까지 있었던 곳이 네덜란드 문화, 경영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다. 물론 후일

클라우스는 네덜란드 왕실 가족 중 국민에게 제일 사랑받는 사람으로 되었지만.

 

 

거의 한 달 반 만에 그친 비에다 여왕의 날이라 가는 곳마다 인파로 북적였다. 걷는 게 아니라

앞에 가는 사람의 등만 보고 모두 물결에 밀리듯 간다. 그러나 광장에 도착하면 평상시 얌전하게만

보이는 네덜란드인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난다. 모두 아주 신 나게 논다. 길에서 누가 쳐다보든 말든

음악이 흐르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어디 그것뿐인가? 평일에는 마시지 않는 술이지만 이런

축제가 있는 날은 여성들도 남자에게 질세라 술을 엄청나게 마신다. 한국여성 술 잘 마신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이곳 여성들 주량 보면 모두 깜짝 놀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색은 전부 오렌지 색. 관광객도 오렌지 색 모자를 쓰고 같이 즐긴다. 이런 날은 같이

놀아주는 게 예의다. 1분이 멀다 않고 다니는 트람(Tram/전차)도 버스도 자동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내에는 신호등마저 잠들어 있다.

 

 

여왕의 날 축제는 밤 12시쯤에 끝날 것이고 귀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기차는 밤새 다닐 것이며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치우느라 새벽까지 청소차가 다닐 것이다. 다음 날 아침까지.

 

네덜란드 여왕의 날은 유럽에서 아주 유명하다. 다른 왕실의 생일잔치와는 달리 국민 대부분 왕실의

상징인 오렌지 색을 입고 즐기는 것도 특이하지만, 국민이 대거 축제에 참여하고 즐기는 공휴일이라는

점에서 다른 유럽의 왕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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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의 명소
, 투친스키 영화관

영화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보는 영화겠지만
, 조금이라도 건축이나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관 건물과
실내장식에도 관심을 둘 것이다
. 이런 점에서
암스테르담 투친스키 영화관은 언급한 두 가지
점을 모두 충족시키는 영화관이다
.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영화관 중 하나로 알려진
암스테르담의 투친스키 영화관은 폴란드 출생
투친스키에 의해
1921년 개장되었다. 아르 누보 혹은
유겐트 스타일과 아트 데코양식으로 지워진 투친스키
영화관은
2차대전 나치의 폭격으로 파괴된  투친스키의 로테르담 그랜드 영화관,
암스테르담 록시 영화관과 함께 투친스키의 영화관들이다.

암스테르담 시 중심가에 있는 투친스키 영화관은 이차대전 당시 티볼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고 현재
6개 관에 약 1,500석을 가진 영화관으로 규모 면으로는 암스테르담 아레나
보다 적지만 유명한 영화 개봉은 대체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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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상징

경제, 문화의 도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네덜란드에는 12주가 있어요. 그중 노르트 홀란트주에
있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방문하는 암스테르담은
이 나라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고 네덜란드에선
제일 큰 도시입니다
.


렘브란트가 자리 잡고 있는 레익스 국립미술관
,
해바라기와 절망의 화가 반 고흐
미술작품이 걸려있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뿐만 아니라 일 년에 수백만 명이

방문하고 가는 이곳 거리에서 만나는 고대 건축물,
운하 등을 바라보면 비록 작은
나라지만 강대국으로서
알려진 이유도 발견할 수 있어요
. 그것은 어쩌면 이곳
사람들의
독창적인 국민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

 



암스테르담이라면 역시 운하, 운하라면 배를 연상시키죠.
한 번쯤은 저 배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구경하고 것도 관광객으로서는 아주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담 광장의 여왕궁전.
여왕의 집무실은 헤이그의 평화궁이고 담 광장에 있는 여왕의 궁전은 한 해에
한 번씩
대중을 위해 공개됩니다.






암스테르담을 상징하는 깃발입니다.
세 개의 엑스(XXX)로 암스테르담을 상징하는 이 깃발의 엑스는 세인트 앤드루 십자가를
뜻하며 건널목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지요. 암스테르담의 깃발에 새겨진 세 개의 “X”
, 불 그리고 페스트를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집


안네 프랑크가 베르겐
-벨젠 나치 포로수용소로 가기 전 2년 동안 가족들과 생활했던 집.
암스테르담의 다른 유서 깊은 건축물과는 달리 이곳은 건물 자체는 초라하다면 초라하지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하고 숨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낀다고나 할까요.

네덜란드는 이차대전 중 많은 유대인을 나치 정권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했어요.

남쪽지방의 구릉을 제외하고는 편편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던 네덜란드는 산이 많은

프랑스, 벨기에 등과는 달리 유대인을 숨길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알려져 있어요.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꼭 한 번 찾아가는 곳이 이 홍등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네덜란드어로 왈렌(wallen)이라고 알려진 이곳은 네덜란드 성매매 정책의 일면을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마리화나를 거래하고 피울 수 있는 커피숍 그리고 이 홍등가의
경은 레익스 국립미술관만큼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광객으로서는 무척
이색적인
장소일 것 같아요.


담락거리(네덜란드 근대건축계의 선구자 베를라허가 설계한 베를라헤 증권거래소가 있어요.)

 

이외 암스테르담의 헤이네컨 맥주 박물관 그리고 섹스뮤지움 또한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들은 암스테르담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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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네덜란드 패션모델들

 

 

작은 나라지만 의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톱 모델을 가진 네덜란드.

이곳 모델들의 장점이라면  언어나 생활하는데 다른 나라 모델과는 달리 쉽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알려진 것 같다.

 

현재 제일 유명한 모델로서는  슈퍼모델, Doutzen Kroes(도젠 크로스/한국어,
두첸 크루스/네덜란드어)일 것이다.

네덜란드 프리슬란트주 태생인 도젠 크로스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미와 고전미를 갖추고

있는 모델로서 베르사체, 돌체 & 가바나, 구찌, 캘빈 클라인 향수모델로 활약했고 그녀의
출생지 프리슬란트주 언어 홍보대사와
2009년 이후 댄스포라이프(Dance4life)
단체에서
에이즈 예방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

그녀의 출생지 프리슬란트주에는 이곳만의 방언이 있다. 네덜란드 각 주의 사투리와는
조금 다르게 취급받는 이곳의 사투리는 보통 네덜란드인도 잘 알아들을 수 없고
이 방언은
독립적인 언어로 알려져 있다
.


사진출처: starlounge.celebs.nl

2009년 암스테르담, 마담 튀소 밀립인형박물관 

암스테르담 마담 튀소 밀랍인형박물관에 그녀의 밀랍 인형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발리에 의해 기증된 드레스를 입은 네덜란드 톱 모델 도젠 크로스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로잘리 반 브레멘(Rosalie van Breemen)


사진출처; skylrock.com 

현재 저날리스트, 방송에 활동하는 네델란드 위트레흐트 출신의 패션모델.

1986년 미스 월드 유니버시티에 당선되였고 유명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과 오래동안
생활한
, 이곳에서는  미세스 들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패션 모델.

 

다프네 데커스(Daphne Deckers)
 


사진출처: hin.be

 

아동문학작가, 칼럼니스트, 배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윔블던

우승자 리차드 크라이첵의 아내. 제임스 본드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얼굴을 내보인적이 있다
. 유명한 연예인답지 않게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학교를 달리는
사진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지성과 미를 한꺼번에 갖춘
미인이라고 생각된다
.

 

이프께 스토름(Yfke Sturm)

 


사진출처: starlounge.com

15세 어린나이에 엘리트 모델 룩 선발대회에서 당선된 후 파리, 밀란, 뉴욕등 많은
패션쇼에
참가하고 이곳 방송 프로그램 홀란드 넥스트 톱 모델 진행자로 활약했다
.

평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미란다 레인스버거(Miranda Rijnsburger)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내로 한때 무척 유명했던 패션 모델.

결혼으로 인하여 그녀의 커리어마저 포기했다고 알려져 있는 고전적인 미인.

 

프레데리큐 반 데르 왈(Frederique van der Wal)

 



여성 패션 잡지 보그, 코스모폴리탄의 커버 모델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윌 스미스 주연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 멜 깁슨 주연의 더 밀리언 달러 호텔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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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명상법의 설립자 마하리쉬와 비틀스

 

 

사는 네덜란드에 일명 TM(Transcendental Meditation) 대가 마하리쉬

(Maharishi)가 거주하고 있었다.  몇 년 전 91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은 뒤

고향 인도로 돌아간…,

이 요가의 대가 마하리쉬와 비틀스는 아주 깊은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반전운동이 한창일 때 평화의 상징, 히피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던 비틀스의
멤버들은  그가 거주하던 이곳을 방문하고 그들의 생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

존 레넌을 제외하고는

마하리쉬는 1990년부터 이곳 네덜란드 남부지방, Vlodrop(프로드롭)이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마하리쉬 방송대학을 설립하고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제자들 또한 오백여
명에 달한다
.

그가 말하던 구호가 지구 상의 평화라고 말하는 것 같고, 이들은 그들만의 지폐도 있다.
60,70년대에 이르러 요가의 대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연예인들. 비틀스,
비치보이스, 미아 패로우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히 연예인들과의  관계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고 알려진 마하리쉬는 그의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인도까지 간 존 레넌을
제외한
, 조지 해리슨등 나머지 비틀스의 구성원들은 이곳을
몇 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출처: life.de

사진출처: hotelspecials.nl
반전운동가
, 평화를 부르짖던 존 레넌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되였지만 이곳 네덜란드에는
아직도 그와 그의 부인 오노 요코가 신혼여행 때 평화를 위해 시위한
,
그 당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침대시위 사진들과 그들이 투숙했던 암스테르담
힐튼호텔에 두 사람이
투숙했던 방마저도 간직하고 있다
.
존 레넌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둘러봐도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젊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줬던  예술가로서
기억하는 나로서는 무척 의미가
있는 곳이라 생각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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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합법화된 네덜란드, 그곳에서 보는 성매매에 대한 인식


네덜란드는 2000년 성매매법을 개정했다. 성매매 금지정책에서

이것을 합법화 시킴으로 더 이상 매춘이 부당하고, 부끄러운짓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되였다고 볼수있다.

성매매법이 합법화된 주요 목적은 짖발힌 인권회복, 인신매매방지,이곳에
종사하는 이들의사회적
  인정, 보다 낳은 환경에서 행해지는 성매매,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수 있는 길을 열여주는 기회를 주고자 함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
 


암스테르담의 섹스박물관

지하속에서만 이루어진 성매매가 합법화됨으로 같은 사회를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인식변화와 또한 이곳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짐으로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일원으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고도 할수있다
. 모든 법이 그렇듯이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수는
없을것이고
  장점만이 있는 법과 정책은 아니지만 금지정책보다는 차라리
합법화된 이 정책에 대부분의 네덜란드 국민들은 찬성하고 있다
.

이런 보다 낳은 사회를 위하여 만들어진 정책이지만 한편 이 정책의 어두운 면도 있다.

이런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중에는 동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것이다
. 보다 낳은 삶을 위하여 낯선 대륙에서 건너온 이들이 이런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것은 이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들이거나 등록된 업체보다는

지하에서 성행되는 비동록된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이나 남성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서조차 손길이 가지않는곳, 불리한 여건아래... 


암스테르담 여왕궁전    

 

인간 역사상 성매매라는것은 항상 있었던 것이고 또한 이 문제에 대한 토론, 

정책등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부당한 성매매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왜곡된 성의식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책임이 있었던것은 아닐까.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우리들의 남성우위사상에 그 이유가 있는것일까?

건전한 성문화 조성을 위한 우리들의 가정과 학교에서의 성교육에 그 책임이 있을까?

모든것은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진다. 성매매를 원하는 자들이 있음으로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듣기로는 유럽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
아프리카로 이런일로 여행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단 한통의 쵸크렛으로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듣었던것 같다. 

인권을 박탈한 비 인간적인  이런 사람들을 어떤식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해야할지...

 

나는 성매매에 두가지 종류의 성매매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 스스로 자신의 의사, 자유로 선택한 직업인으로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
그리고 부당한, 개인의 의사가 아닌 타인의 강요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

선자를 거론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개인이 선택한, 자유인으로서 선택한 직업인으로
나는 그분들을
  비난할 권리도 없고 그분들의 선택을 인정할것이다.

다만 타인의 강요에 의하여 이런업체에 종사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귀를
기울려야 할것이다
. 나의 자유가 박탈당했을때 나는 어떤식으로 대응하는가...

몇일째 사그러지지 않고 있는 어느 연예인의 성매매에 관한 뉴스를 접했다.

자세한 상황은 아직 잘 모르고 어느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제쳐두고서라도

만일 강요된 성매매였다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야 마땅할 일이지만 왜 이런일들이

비일비재한지 그 이유도 한번 생각해볼 때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사건으로 한 연예인의 자살사건이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채 사라지지
않은 이 시점에서 또 다시 이런일이 일어난다는것은 성매매에 대한 인식부족
,
사회적 지위남용으로만 그  책임을 돌리기에는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자주 발생하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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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지식으로 보는게 아니고 느끼는것

 

 

유럽 여러곳을 여행하다보면 자주 만나는것이 미술관이고 그속에서
많은 작품들
,
특히 좋아하는 예술가들을 만난다.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미술은 어려운것이고 무언가를 알고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

예술은 지식으로 보는게 아니라 느끼는것이 아닐까?

내가 작품을 보고 그속에서 무언가 공감할수 있는것을 찾아낸다면 나는 이미
그 작품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 어떤분들은 여행중에 그 고장의 음식을
기억할것이고
또 다른 여행자들은 여행지의 풍경에 감동할것 같으나
나의 여행중에는 미술관이 기억에 제일 오랫동안 남아 있는것 같다
.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오노레 드 발자크
 

에인트호벤,반 아베 미술관(Eindhoven, Van Abbemuseum, 1936)

필립스경기장(PSV경기장)이 있는 에인트호벤에 있는  미술관이다.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유명한 발자크의 동상과 피카소, 칸딘스키등의
유명한 미술가의 작품을 볼수있다
. 유럽에서 이 오노레 드 발자크의
동상을 볼수있는곳이 파리의 로댕박물관과 안트웨르펜
(Antwerpen, 한국어: 안트베르펜)이라고 알고 있다.


램브란트의 작품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레익스 국립미술관

반 고흐미술관

반 고호 미술관을 방문하면 반 고호의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 미술관
자체도 유명하다
. 이 미술관은 본관과 익스헤비션 윙이라고 불리는 후관이 있다.
주로 본관에는 고호의 작품들과 그가 생전에 친하게 지내던 인상파주의 화가들이
영구 전시되어있고
  후관(Exhibition wing)에서는 주로 전시회를 한다.
이 후관은 1999년 개관된 일본인 건축가 Kisho Kurokawa에 의해 건축된 건물이다.


스위스 바젤에서 본 틴겔리 미술관입구,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건축한 미술관.

스위스 예술가
, 조각가, 미술가등으로 알려진 틴겔리 혹은 팅겔리라고 불리우는
그의 미술관을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이는것이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인
틴겔리의 미술관
.
잡동사니의 집합소같은 이 미술관에서 물질주의 시대, 수십, 수백만통의 깡통이나
플래스틱으로 오염된 지구상에 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의미를 던져주던곳이다
.

그가 말하는;

모든 사물은 움직이고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으로 인하여 사물은 스스로 소멸된다.

움직임이 침묵이나 고정되여 있는것 보다는 나은것이라는
그의 말을 증명해주던 미술관
.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1930 - 2002]의 작품

틴겔리 미술관에서 만난, 나나의 형태로 유명한,
틴겔리의 아내이기도 한 니키 드 생팔의 작품.
 

현대 미녀의 관념과는 전혀 다른, 완벽한 여성의 육체가 아닌 오히려
비대하고 여성의 미에 대한 사회의 관념과는 또 다른 비너스를 탄생시켜주고 있다
.
 


 


푼다찌온 베일리 - 바이엘러 미술관

바젤 외곽에 위치한 렌조 피아노(Renzo Piano)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

건축가 렌조 피아노;

1937년 게노아에서 출생하고 밀라노에서 수업한 이태리 건축가.
퐁피두센터를 설계하기도 하고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축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

 


Bonnenfanten museum(보네판텐미술관)

마스트리흐트 새 개발지역구 세라믹 혹은 케라믹으로 불리워지는
Avenue Ceramique과 마스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1995년 이태리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에 의해 이 지역구에서
제일 먼저 건축된 건물
. 네델란드 고 건축물에서 자주 볼수있듯이
붉은 벽돌로 건축된 이 건물은
  직사각형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켓트형식의 돔 혹은 큐플라와 미술관내
35m의 나무계단이
일품이라고 알려진다
.
미술관의 이름은 마스트리흐트 시내에 있던 Bonnefantenklooster
(보네판텐클로스터/수녀원)의 이름에서 유리된것으로 전해진다.


미니멀 아트와 개념주의(Minimal Art and Concept Art)의 미술가

존 발데사리 - Important bridge between Pop Art and Nouveau Realisme- 의 작품

 

"나의 작품은 어떤 특정한 인물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모든사람을 위하여
또 모든사람이 나의 작품을 감상하는동안 즐거움을 느낄수있는 작품,
그런 작품을 만들기를 원한다" 라고 미술가는 말하고 있다.


피카소 미술관 실내, 이 미술관의 사진이 별로 없는것 같아요. 이 사진외에는...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시장. 
곳이 유명한 Mercat de la Boqueria 혹은 la Boqueria라고 부르는 시장.
우리나라 시장을 연상케 하던 무척이나 반가웠던 시장. 말린고추, 마늘등을
주렁주렁 역어서 달아놓은것을 보고 친정생각을 잠시동안 하기도 했던 시장이다
.



 

우트레흐트(위트레흐트)의 딕 브루나집/A Home for Miffy

미피 혹은 네인찌[Nijntje]라고 불리는 동화속의 토끼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어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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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네덜란드 옴부즈맨[ombudsman]

 

서구사회의 이혼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닌, 죄가 아닌 일로, 두명의 성인이
부부로서 더 이상 행복한 가정을 지속할수 없을때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단지 부모의 이혼으로 정신적으로 아동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우울증으로
인해 아동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로 네덜란드에는 이 아동들을
위한 옴부즈맨이라는 아동상담원 구실을 하는곳이 있다
. 부모에게나 친척,
혹은 친구들에게조차  고민을 말할수 없는 아동들은 이곳에서 그들의 고민을
말할수 있고 상의
, 충고도 받을수 있다.

편지, 메일 혹은 전화로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의 정신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누구나 잘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생활을 하다보면 더러는 이혼이라는 최악의 경지까지 몰고 오는수가 더러는
있는것 같다
. 외도나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제외하고는 이혼하는
부부의 입장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받는 피해는 성인들의
상상할수 없을만큼 크다고 여긴다
.


암스테르담, 쿠겐호프

몇일전 잘 아는 분의 초대로 그분의 남편 생일파티에 참석을 했다
.
초대장을 보니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을 대접한다기에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분의
집을 방문했었다
. 실상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을 대접한다기에 집에서 미리 저녁을
먹었는데 푸짐한 음식이 나오는지라
  저녁 먹은것에 대해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어느나라건 사람들이 많이 보이면 당연히 하는 소리들이 남에 대한 이야기.

좋은 이야기던 나쁜 이야기던...

그날도 예외는 아니였던것 같다. 아마 사는곳에 어느 부부가 이혼을 한것 같았다.

왜 사람들은 남의 개인생활에 그리도 흥미를 가지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 부부의 아내가 이혼을 청했다고 한다.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 쿠켄호프

이혼하는 부부에게는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혼 이유가 있을것이다.
박수는 절때 한손으로만 칠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부부와 가정에서
그들이 직접 겪는 생활은 다르다고 생각된다
. 입방아를 찍어대는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리가 이혼한 부부의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였다
.
모두가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라

이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이 부부의 큰 아이가 요즘 아주
우울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

이곳 네덜란드에는 대부분의 학교마다 아동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상담을 원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위해 상담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지만

이런 학교내의 상담원을 찾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것 같다
.
혹시나 다른 아동들에게 자신의 문제가 탄로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이 아이도 자신의 고민을 이런곳에서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것 같다.

 

때로는 성인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살이를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것은
당연한 일
.
이런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네덜란드의 옴부즈맨을 많은 아동들이
이용하고 있는것 같다
. 이 아이도 이런 상담원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해보는것이
어떨까 라고 주위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것 같았다 

성인들의 문제는 성인들이 해결할수 있지만 성장기의 아이들의 고민을 성인들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이 있지는 않는지
.

 아동들이 부모들의 이혼으로 받는 고민, 아이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이런 상담원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 혼자서 풀지못하는 고민을 들어주는 성인들의 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동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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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살고있는 네덜란드에는 동성애자로서 사회에 활약하고 있는
유명인사들이 더러 있다
.

사회 여러분야에서 이런분들을 만날수 있지만 유명한 프로듀서,
영화감독, 가수등 연예인부분에 활약하고 있는 이분들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
게이나 레즈비언 생활을 선택하고 이런 삶을 누리는것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일이고 이분들이 선택한
  생활방식과 그들의

사회적활동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두고 있다고  볼수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지위나 인식이
어느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실상 카톨릭사상이 삶을 좌우한 시기
이곳에서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는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자식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된 부모들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타인에게 이런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이것이 무슨 고칠수없는 고질병
.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지독한 병인양 
당당하게 고개를 들을수 없던 그런 시절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당시
그들에게 생소하게만 들리던 이 호모나 레스비언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있고 사회적으로 그들의 위치도 인정받고 있다
. 
더러는 교육자의 자격으로 교단에 서는 동성애자들이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지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사건들에 눈살을 찌푸린다
.

 
Prinsengracht, 프린센그락터, 암스테르담

어려서부터 이성애만이 정상적인 가족생활이라고 교육 받고 성장하는
사람들로서는
동성애자의 생활은 비정상적이고 더러는 이런분들의 만남에
거부감을
느낄수도 있을것이며 이것을 도덕적인 타락이라고 극단적인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극단적인 단정을 내리전에 얼마나
많은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에 의해
  피해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한번쯤은 사회의 약자
, 소수집단의 생각, 삶도 생각해보는것이
좋을것 같다
.

이들의 외면적인 삶의 방식이 흔히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있는
한 가족 즉 남과녀로 이루어져 있진 않지만 이런 삶을 선택하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할것이고 이런일은 개인의 권리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

자신의 삶을 선택할수 있는 자유, 누구도 이런 자유를 박탈할수도 없고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나의 자유, 나의 삶의 방식이 옳고 타인으로부터 침해 받기 원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삶
, 생활방식,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단지 삶의 방식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차이점이 있을뿐 
범죄도 아니고 외향적인 생활태도로 이런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것은
인식부족이라고 생각하며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엮여간다고
차별대우를 하는것은 오히려 인권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마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게이프레이드가 있다.

올해도 암스테르담 시장의 축사로 막을 연 이 게이프레이드에는 경찰,
군인들도 참석했었다.
그들의 군복과 경찰제복을 입고..

그러나 이날의 주인공은 암스테르담 시장도 아니고 군복을 입은 군인도 아니며

공공질서를 지휘하는 경찰들도 아닌 세계각처에서 참석한 동성애자가 주인공이였다.

또한 이런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같이 즐기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따뜻한 정, 동성애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대우,
사상과 생활태도에 편견의 치우침 없이 받아들이는 표용력
즉 이런것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 자유를 지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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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암스테르담, 프린센그락트 263(Prinsengracht 263).


이곳이 안네 프랑크가 나치정권을 피해 2년동안 몸을 숨긴곳이다.

안네가 13살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기록된 그녀의 이야기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아직도 이 소녀의 이야기를 지구

어디선가 읽고있다.









그녀의 일기장에 이렇게 감동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우리는 아직도
그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나.


출판사: Contact, Amsterdam, Het Achterhuis, 안네의일기
안네의 일기를 읽는 이들은 그녀의 일기속에서 높은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려고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숨소리를 죽이고 그녀에에 주어진 작은 공간속에서 친구를

그리워하고 공포속의 생활을 표현하는 이 일기장속에는

인류역사 최초로 만들어진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기위해 만들어진

가스실, 유태인학살, 파시즘을 만난다. 그녀의 일기장을 읽고 또는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이런 엄청난 사건들에 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우리들이 살고있는 지구 어디선가 진행중인 파시즘에 치를 뜨는것이다.

 




실상 안네 프랑크의 집 혹은 박물관의 건물자체는 별로 볼것이 없다.
네델란드를 상징하는 램브란트, 반 고흐의 그림과 같이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도 전시되여 있지않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가파른 계단, 숨이 막힐듯한 공간, 그곳에 전시되여 있는

사진들과 책상등으로 안네가 살았던 그 시절의 상황을 상상해볼뿐이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외면의 초라함에는 아랑곳없다.

초라하다면 초라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하여 일년에도 수천만명이 방문하는

이유가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지구상에 다시는 이런 슬픈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인것같다.


이곳은 그저 이름난, 즐기는 관광장소만은 아니다.

이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 오늘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곳이다.

안네 프랑크(Annelies Marie/Anne Frank, 아넬리스 마리 프랑크)

1929 6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

1945년 베르겐-벨젠(Bergen-Bersen)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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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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