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왕실의 위안부에 대한 태도


4 30일 네덜란드 국경일인 여왕의 날 

네덜란드 왕위 계승식이 있다.  이번 

여왕의 날 여왕 베아트릭스는 1980년 

여왕으로 등극한 뒤 33년 만에 아들 윌렘 

알렉산더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퇴위한다.


네덜란드 왕실은 일본왕실과 친분이 깊은 

사이다. 이런 친분은 왕실과 왕실과의 친분

이기도 하지만 네덜란드 왕실과 북구 유럽

왕실에선 통례인 첫 자녀가 왕위를 이어받는 왕위 계승 서열 문제와는 

달리 일본왕실의 왕위 계승을 두고 아들을 낳지 못해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심이 더 많이 작용한다

수차례에 걸쳐 마사코 황태자비는 네덜란드 왕실을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방문하여 휴양을 취하기도 했다.


작년 통영 여행 중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현수막을 봤다. 한국에서 생활

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현수막일지는 모르겠으나 위안부 문제라면 

네덜란드와도 관련이 있어 유심히 봤다.




네덜란드에도 한국처럼 약 400여 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있다. 그동안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적절한 배상문제 등을 

여러 차례 요청한 바 있다. 또한, 2009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일본방문 시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도 받았다.


네덜란드 왕실은 정부의 그 어떤 정책에도 영향을 가할 수 없다. 하나 베아트릭스 

여왕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확히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는 여왕이라고 알려진다

정부가 여왕의 충고를 받아들일 만큼 여왕은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확고한 의사를 

말한다.


네덜란드는 인권문제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이 문제는 왕실도 마찬가지. 하나 

네덜란드 왕실은 위안부문제에 대해 아직 일본왕실에 강력하게 사과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네덜란드 여왕답지 않고 일본정부에 강력히 사과 요청하는 

네덜란드 정부 입장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미얀마 정부의 

인권문제는 논하면서 위안부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여왕으로서 별로 칭찬받지 

못할 태도다. 따라서 올해 새로 왕으로 등극할 윌렘 알렉산더는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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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이차대전이 종결된 지 이미 반세기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유럽의 문학
, 영화 속에는 이차대전에 대한 주제로
많은 작품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 이차대전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 속에만
거론되지 않지요. 이곳의 기성세대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자주 언급하는 것 중에는 이차대전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 결코, 그들의 인생에 잊어버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유럽은 이차대전으로 곤혹을 치른 나라죠. 전쟁의 잔혹한
모습을 봤지요
. 오로지 살기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동물세계와는 달리 오직 죽이고자 죽이는 인간의 잔혹한
모습을 봤지요
.
그리하여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해 많은 기념비가 설치되고 행사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

 네덜란드는 이차대전 적이었던 독일과 나란히 이 행사를
치룹니다
. 독일은 그들의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고 네덜란드는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는 독일을 이웃 나라로 받아들이지요
.

 

통계에 의하면 네덜란드에는 약 400여 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거주 네덜란드인이지요.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다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숫자와는 비교할 수는 없는 소수 위안부 할머니들이지만 이분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이지요
. 그때 일로 평생 임신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 밤마다 시달리는 악몽으로
아직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할머니들
,
이제 할머니가 되어 간신히 그들의 지나간
이야기를 이곳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
그러나 초등학생도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를 알고 있지만 일본의 과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아요
.
아시아 경제대국, 천황이 있는 나라 그러나 그들이 정작 알아야 할 일본의 과거에 대해선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는듯합니다
. 이것은 아마 일본이 직접적으로 유럽을 침략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관련 글:
http://waarheid.tistory.com/51



 

제 세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인에 대한 나쁜 감정은 있지 않지만 독일과는 달리 자신들이 행한 잔혹한 행위에 사과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처럼 이곳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말입니다
. 책으로 때로는 방송으로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번 듣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지난날 일본이 이 할머니들에게 행한 행위에 대한 사과의 말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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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검색기계라는, 많은분들이 사용하시는 구글.

참 용하다, 신기하다라는 생각은 종종하고 있었다.

실지로 나는 위키페디아보다는 구글쪽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위키페디아에서도 여러 언어로 정보를 비교해 볼수있지만 구글에 익은지라

이 검색기계를 자주 사용해요.

 

[사진출처: dag.nl]

평일에는 시간이 별로 없는지라 주말을 이용하여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이웃블로그님 집을 방문한다던지
평소 잘 볼수없는 시사문제에 관한 블로그들을
찾아 헤매고 있던 토요일 밤

참 기분좋은 일이 생겼다.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 뜻이 깊은 날이였기도 했고.

4월에 네델란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글을 한자 올렸읍니다.

 

링크: http://waarheid.tistory.com/51

야포니카[camellia Japonica]라는 동백꽃을 보고 생각하는 위안부 할머니들

이라는

 

내가 쓰는 글은 좀 주관적이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쓰는 글이라 블로그의 법칙같은것 하고는

좀 거리가 먼 글들입니다.

옛날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서 느꼈던 생각, 네델란드 정부의 네델란드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입장,
일본동백을 구입할 당시의 제심정을 적은 글.

이런글들은 대체로 독자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불편하게 만들고,  글로벌시대인만큼
이웃나라 사람들의 감정도 중요시 해줘야하고 해서 글을 쓸때도 무척 신경이 쓰였답니다
.

그러나 이것은 일본인을 증오하는 글도 아니요

일본인 개개인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아니고 다만 과거를 옳바르게 이해하자는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쓴 글.

내글이 구글에서 어떻게 검색되고 있나 궁금하여 이검색기계로 한번 검색을 해봤어요.

내 블로그에 대한 여러개의 글들도 있었으나 위에 글을 언급한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었다.

호기심에 그 사이트로 발길을 옮겼지요.

어떤분이 제글을 소개하시고 저의 글을 권유하시는 글이 눈에 띄이더군요.

놀라기도 하고 좀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때 제 심정은 그저 고맙다는 생각.

물론 게시판에 제글을 올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올린것은 당연한 일.

블로그를 쓰면서 방문객이 많은것도 기분 좋은일이지만 이런식으로 저의 글이 그것도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해 운영되는 사이트에 올려지는 일는 저로서는 참으로 감사했지요.

많은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약간의 네델란드의 정보를 알릴수 있었다는것에 대한
기쁨 같은것이 였읍니다
. 


이분들의 과거는 나의 과거이고
, 우리들의 과거이며

이분들의 슬픔 또한 나의 슬픔이고 우리들의 슬픔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는 이분들에게  많은 따뜻한 손길이 뻗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날처럼 구글이 고마웠던 날은 없었던것 같아요.

마치 마법사와 같았던 구글.

 

  

링크: http://www.hermuseum.go.kr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e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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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네델란드 위안부할머니들



내가 살고있는 네델란드는 그리 자랑스러운 과거를 지니고 있지않다.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이것은 단지 네델란드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유럽국가가 그당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발생했던 부당한 정책, 차별대우, 인권문제등으로 네델란드는 한때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었다.
당시 네델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는 공무원,
주재상사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제법 살고있었다.

이리하여 이차대전중 일본의 인도네시아점령으로 인하여 여기에 살던 젊은여자분들,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가슴아픈일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위안부
네델란드어로 Het Troostmeisje라고 표현하는...
Troost는 위안하다, het meisje는 소녀라는 뜻이다.
즉 일본군인들을 위안한다는...



작년 네델란드 외무부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었다.
이방문기간동안 그는 일본정부의 위안부인정과 그분들의 정신적 손해배상문제에 대해
네델란드 정부입장을
강하게 표현했다.
통계에 의하면 약 400여명의 그당시
위안부할머니들이 네델란드에 있다고 한다.
이분들에게는 그렇게 많은시간이
남아있지않다. 고령이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있는 이들이 바라는것은
일본정부의 진정한
공식사과, 그들의 자유의사로 위안부가 된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위안부가 된 이야기를
역사책에 표시되기를
원하고있다.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하고자 하며 탈취당한
인생의
한부분을 정당하게
취급받기를 원하고 있는것이다. 이분들의 이야기가 절대
잊혀져서는 안된다는것이
네델란드 공식정부입장.

많은 이들이 펄 하버(Pearl Harbor)라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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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정원을 손질하면서 좀 특이한 꽃이피는 동백꽃을 하나 구입했다.
네델란드를 꽃의나라라고 하고 수출도 많이 하지만 실상 꽃값이 만만치않다.
제법 키가 큰 동백은 근 40유로나 되니 그건 좀 비싼것 같고 좀 작은걸 하나 구입했었다.



나는 또한 동백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줄은 미쳐 몰랐다. 같은 동백이라도 영국출산지인
동백을
카밀리아 찰스라고 부르고
중국산도 더러는 보였다. 내가 산 동백은 아마 일본에서
접한 동백인것 같았다.

이름이 Camellia Japonica-Oki no nami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일본에 대해 아직도 약간 거부심같은것을 느낀다.
이것은 아마 나의 세대들이 가지는 일본에 대한 감정일것이다.
이 감정은 일본인 개개인에 대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시아에
저질은 행위와
아직까지 한번도 일본천황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비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일등으로 인한 불만같은것이리라.

그 유명한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도 아우스비치에 가서 화환을 놓고 그앞에서 무릎을
끓고 눈믈을 흘리지 않았나.

나찌독일이 저질은 죄악에 대해...
6백만명의 유태인들에게 용서를 빌고 이로하여 골다 메이어 수상마저도 독일땅에
처음 발길을 내딪고....

실지로 빌리 브란트수상은 유태인들에게 사죄하지 않아도 되는일이였다.
이렇게 잘못된것은 잘못된것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는게 정당한 일.

이십오년도 넘던 시절에 남편과 함께 일본을 여행한적이 있다.
친정집을 방문한 기회로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맞기고
싸서 고생한다는 노모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뒤로두고 부산에서 시모노세끼로 가는 배를 타고
열시간도
더 걸리는 긴 여행을 한적이 있다.
시모노세끼, 남편이 보고싶어했던 히로시마, 교토, 나고야등을 한바퀴 둘러봤다.
호텔에 숙소를 정하지않고 자그마한 일본전통 여관에다 숙소를 정하고 그때도
아마 벗꽃이 만발했던것 같았다.
너무도 친절하던 여관장 아저씨.
내 생전 처음으로 타봤던 신강생.
말이 통하지않아 지도를 펴고 보잘것없는
한자실력으로
남편과 둘이 길을 찾아
다녔던일. 밤늦게 돌아다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라면집에 들어가
순식간에
라면 한그릇씩을
뚝딱 해치운일. 너무도 깨끗했던 거리등의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에 고맙기도 했지만
히로시마에 가서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정리 잘되고 원자폭탄으로 죽은 영령을 기념하는 기념비.
어찌 한사람의 한국인의 이름이 기록되여 있지않다는 말이냐.
강제징병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우리들의 조상들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하루하루 고통을 이겨낼수 없었던 그 조상들.
치료는 커녕 죽은이에 대해 단 한마디의 말도 언급되여있지 않았던 히로시마.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푸르졌다 하다가 남편의 팔뚝을 끌어당겨
다시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기도 했던 히로시마.



이 동백을 살때 약간 망설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꽃은 꽃이고 또한 이동백의 희귀한것이 한나무에 두종류의 꽃이 핀다는것.

한가지에는 붉은색, 또 다른가지에는 분홍색의 동백이..

삼월내내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날씨마저 추웠던 이유로 동백이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몇번 봐도 꿈쩍도 않던
이꽃이 어느새
꽃이 피였다. 나는 이런꽃이 좋다. 좀 노블하다고
해야하나. 자신이 만만하게 보이는 꽃, 귀인같은 꽃.
이곳에서 피는꽃은 유럽남부지방이나
우리나라에서 보는것 하고는 또 다르다.

꽃이 나에게 주는 감상마저도...

기후탓일까. 꽃망우리가 한창일때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하니 언제 이것들이 활짝필
기회가 없다.

옛날 오동도나 말타에서 본 동백하고는 비교도 되지않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심상한
야포니카라는 동백.


선운사 동구[미당 서정주작]

선운사 고랑으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욕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공이 쉬어 남았읍디다.

책장을 뒤집어보니 발행이 1974년이라고 적혀져있다. 민음사출판에다 가격이  350원.


우리는 더러는 잊어버려서는 안될일을 잊고 사는때가 있다.
그러나 이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잊어서는 안될일이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서도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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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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