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허정무 감독

 

국가대표팀 감독이신 허정무 감독은 우리나라
국가대표 박지성
, 이영표 선수가 에인트호번

PSV에서 활약하기 훨씬 이전인 1980-1983년에
네덜란드에서 한국의 축구를 보여주신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 이곳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허정무 감독의 모습 중 당시 아약스에서 활동하던
,
네덜란드 축구의 왕이라는 요한 크루이프와의
대결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덴마크

 

모르텐 올센 감독(Morten Olsen)

 

남아공 월드컵 덴마크 국가대표팀 감독.

수비수로 한때 벨기에, 독일 경기장을 누비던
모르텐 올센 감독은
102번이나 덴마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고 수비수로서 4번을 골을 넣기도
했다
.
40세까지 경기장에서 활동했던 올센 감독은 1997- 1998년 아약스팀 감독으로 활동하다
그 당시
아약스 선수였던 프랑크, 로날드 더 부르형제와의 싸움으로 결국 아약스를 떠났지만 아직도

축구팬들이 존경하는 감독 중에 한 분이다. 올센 감독 외 현재 아약스에서 뛰는 데니스 롬메달 과
크리스티안 에릭센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덴마크 국가대표팀 선수다
.

 

네덜란드 축구팀에 덴마크 등 다른 북유럽선수들의 활동이 많이 있는 이유는 그들의 생활환경과
네덜란드 생활환경이 비슷하고 이곳의 문화
, 언어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두 나라의 사고방식이 비슷한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psv.nl(허정무 감독과 요한 크루이프)
 

그리스

 

게오르기오스 사마라스(Georgios Samaras) + 앙겔로스 카리스테아스(Angelos Charisteas)

 

우리나라와 대결했던 그리스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게오르기오스 사마라스, 앙겔로스
카리스테아스
.

현재 셀틱 FC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마라스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헤렌벤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골을 넣었지만 안타깝게도 주전선수로서 활약하지 못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아약스와 페예노르트 두 팀에서 활약한 앙겔로스 카리스테아스.

그의 아약스팀 이적으로 페예노르트 축구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특히 앙숙인 아약스: 페예노르트전에서 골을 넣은 카리스테아 선수는 페예노르트 축구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선수로 현재 독일 뉘른베르크팀에 활약하고 있다.

 

카메룬

에용 에노(Eyong Enoh)

남아공 케이프타운 아약스에서 이전한 카메룬 국가대표선수. 터키, 사이프러스팀에서 활약한 바
있고
케이프타운 활약 시 당시 골키퍼로 활약한 네덜란드 국적소지자인 한스 퐁크에 의해 아약스에
알려져 현재 아약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동 중이다
.
앞으로 이 선수의 이름을 자주 들을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우루과이
 

루이스 수아레즈(Luis Alberto Suárez)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으로 네덜란드 FC 흐로닝언에서 활약하다 현재 아약스에서

캡튼으로 활동 중인 공격수.

 

브라질

 

에우렐류 고메스(Heurelho da Silva Gomes)

 

브라질 대표팀 골키퍼.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골키퍼로 뛰고 있으며 4년간 PSV에인트호번에서 활동했다.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네덜란드 축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일본

 

혼다 케이스케(Keisuke Honda)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VVV 벤로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현재 CSKA 모스크바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코트디부아르

 

솔로몬 칼루(Salomon Kalou)

 

첼시 FC에 활동 중인 국가대표팀 선수로 네덜란드 국적을 소지한 형 보나방튀르 칼루와 마찬가지로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다
. 17세의 어린 나이로 페예노르트 데뷔한 칼루는 축구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다재다능한 선수였고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한때 마르코 반 바스턴, 요한 크루이프 등
솔로몬 칼루의 네덜란드 국적취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당시 이민국으로부터 거절당했다
.

 

다가오는 월드컵에 기대가 되는 한국 축구선수

 

석현준

 

이곳 축구팬들로부터 브루스 리라는 닉네임을 얻은 현재 아약스에서 뛰는 우리나라 선수로 다음번
월드컵에서 기대를 걸어도 좋은 선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

허정무, 노정윤(NAC 브레다), 송종국(페예노르트), 김남일(엑셀시오르), 이영표, 박지성,
이천수(페예노르트) 뒤를 이은 8번째 한국 축구선수로 네덜란드 축구사에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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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서 만난 일본정원(The Japanese Garden/De Japanse tuin)

 

 

효고(Hyogo)현에 위치한 이타미(Itami)시의 자매도시인 벨기에 림부르그(Limburg)주에
있는
  하설트(Hasselt)라는 도시를 방문했다.

(네델란드에 있는 림부르그주와 이름이 같아요)

1985년부터 일본 교토위성도시 이타미시와 자매도시인 이곳에 물과 바위와,
일본의 전형적인 정원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일본정원이있다.


 


정원을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이는것이 잉어들과 코이노보리
(Koinobori)라고
쓰여져있는
팻말. 일본 어린이날의 상징인 연모양의 잉어가 아직도 공중에서
휘날리고 있다
.

검정색의 잉어연은 아버지,

붉은색의 잉어연은 어머니,

푸른색의 잉어연은 어린이를 상징한다는



 




바위사이로 자라나는 식물들과 물위에서 피여있는 붓꽃들.
생의 한부분을 보는것과 같은 느낌을 주던 바위사이의 식물과 물위의 붓꽃

코로칸(Korokan)이라는 이름을 가진 차의식을 하는 장소





차의식을 지내는 다다미방. 일본의 집안을 한눈에 보는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아이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과 일본문화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설명도 해주던것 같았다.


일본건축에서 물은 절대적인것이라고 누구엔가 듣기도 한것 같은데

이곳을 둘러보면 실지로 많은 바위와 연못등을 볼수가 있다.

잔잔히 흐르는 물속에 비치는 자연의 형상, 그속에서 보는 동양의 고요함과
정으로 물들여진 나무들과 꽃들은 이국땅에 발을 딛고 있다기 보다는 일본의 조용한
산사를 찾은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여행자들의 휴식처와 안식처라고 부르기도


 

천황의 묘지가 있는 교토의 Senyn-Ji절의 돌들과 같은 모양이라는 연못위에 떠있는 바위들.




관광인들에게 편리는 관광버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서양과  고요하고 감정적인 동양이라고 더러는 표현하는,

이러한 서양의 한귀퉁에서 동양의 미덕과 잔잔함을 이 벨기에의 일본정원에서 만나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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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위안부할머니들



내가 살고있는 네델란드는 그리 자랑스러운 과거를 지니고 있지않다.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이것은 단지 네델란드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유럽국가가 그당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발생했던 부당한 정책, 차별대우, 인권문제등으로 네델란드는 한때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었다.
당시 네델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는 공무원,
주재상사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제법 살고있었다.

이리하여 이차대전중 일본의 인도네시아점령으로 인하여 여기에 살던 젊은여자분들,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가슴아픈일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위안부
네델란드어로 Het Troostmeisje라고 표현하는...
Troost는 위안하다, het meisje는 소녀라는 뜻이다.
즉 일본군인들을 위안한다는...



작년 네델란드 외무부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었다.
이방문기간동안 그는 일본정부의 위안부인정과 그분들의 정신적 손해배상문제에 대해
네델란드 정부입장을
강하게 표현했다.
통계에 의하면 약 400여명의 그당시
위안부할머니들이 네델란드에 있다고 한다.
이분들에게는 그렇게 많은시간이
남아있지않다. 고령이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있는 이들이 바라는것은
일본정부의 진정한
공식사과, 그들의 자유의사로 위안부가 된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위안부가 된 이야기를
역사책에 표시되기를
원하고있다.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하고자 하며 탈취당한
인생의
한부분을 정당하게
취급받기를 원하고 있는것이다. 이분들의 이야기가 절대
잊혀져서는 안된다는것이
네델란드 공식정부입장.

많은 이들이 펄 하버(Pearl Harbor)라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

작년에 정원을 손질하면서 좀 특이한 꽃이피는 동백꽃을 하나 구입했다.
네델란드를 꽃의나라라고 하고 수출도 많이 하지만 실상 꽃값이 만만치않다.
제법 키가 큰 동백은 근 40유로나 되니 그건 좀 비싼것 같고 좀 작은걸 하나 구입했었다.



나는 또한 동백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줄은 미쳐 몰랐다. 같은 동백이라도 영국출산지인
동백을
카밀리아 찰스라고 부르고
중국산도 더러는 보였다. 내가 산 동백은 아마 일본에서
접한 동백인것 같았다.

이름이 Camellia Japonica-Oki no nami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일본에 대해 아직도 약간 거부심같은것을 느낀다.
이것은 아마 나의 세대들이 가지는 일본에 대한 감정일것이다.
이 감정은 일본인 개개인에 대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시아에
저질은 행위와
아직까지 한번도 일본천황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비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일등으로 인한 불만같은것이리라.

그 유명한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도 아우스비치에 가서 화환을 놓고 그앞에서 무릎을
끓고 눈믈을 흘리지 않았나.

나찌독일이 저질은 죄악에 대해...
6백만명의 유태인들에게 용서를 빌고 이로하여 골다 메이어 수상마저도 독일땅에
처음 발길을 내딪고....

실지로 빌리 브란트수상은 유태인들에게 사죄하지 않아도 되는일이였다.
이렇게 잘못된것은 잘못된것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는게 정당한 일.

이십오년도 넘던 시절에 남편과 함께 일본을 여행한적이 있다.
친정집을 방문한 기회로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맞기고
싸서 고생한다는 노모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뒤로두고 부산에서 시모노세끼로 가는 배를 타고
열시간도
더 걸리는 긴 여행을 한적이 있다.
시모노세끼, 남편이 보고싶어했던 히로시마, 교토, 나고야등을 한바퀴 둘러봤다.
호텔에 숙소를 정하지않고 자그마한 일본전통 여관에다 숙소를 정하고 그때도
아마 벗꽃이 만발했던것 같았다.
너무도 친절하던 여관장 아저씨.
내 생전 처음으로 타봤던 신강생.
말이 통하지않아 지도를 펴고 보잘것없는
한자실력으로
남편과 둘이 길을 찾아
다녔던일. 밤늦게 돌아다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라면집에 들어가
순식간에
라면 한그릇씩을
뚝딱 해치운일. 너무도 깨끗했던 거리등의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에 고맙기도 했지만
히로시마에 가서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정리 잘되고 원자폭탄으로 죽은 영령을 기념하는 기념비.
어찌 한사람의 한국인의 이름이 기록되여 있지않다는 말이냐.
강제징병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우리들의 조상들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하루하루 고통을 이겨낼수 없었던 그 조상들.
치료는 커녕 죽은이에 대해 단 한마디의 말도 언급되여있지 않았던 히로시마.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푸르졌다 하다가 남편의 팔뚝을 끌어당겨
다시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기도 했던 히로시마.



이 동백을 살때 약간 망설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꽃은 꽃이고 또한 이동백의 희귀한것이 한나무에 두종류의 꽃이 핀다는것.

한가지에는 붉은색, 또 다른가지에는 분홍색의 동백이..

삼월내내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날씨마저 추웠던 이유로 동백이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몇번 봐도 꿈쩍도 않던
이꽃이 어느새
꽃이 피였다. 나는 이런꽃이 좋다. 좀 노블하다고
해야하나. 자신이 만만하게 보이는 꽃, 귀인같은 꽃.
이곳에서 피는꽃은 유럽남부지방이나
우리나라에서 보는것 하고는 또 다르다.

꽃이 나에게 주는 감상마저도...

기후탓일까. 꽃망우리가 한창일때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하니 언제 이것들이 활짝필
기회가 없다.

옛날 오동도나 말타에서 본 동백하고는 비교도 되지않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심상한
야포니카라는 동백.


선운사 동구[미당 서정주작]

선운사 고랑으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욕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공이 쉬어 남았읍디다.

책장을 뒤집어보니 발행이 1974년이라고 적혀져있다. 민음사출판에다 가격이  350원.


우리는 더러는 잊어버려서는 안될일을 잊고 사는때가 있다.
그러나 이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잊어서는 안될일이고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서도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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