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반 고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2.30 네덜란드인이 선정한 2011년 세계 10대 뉴스 (50)
  2. 2009.05.27 고흐의 삶을 찾아서... (34)


올해 네덜란드인에게 가장 충격을 준 사건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지구는 멸망한다고 예언했다.
그가 예언한 지구의 멸망은 언젠가 히틀러, 나폴레옹보다
더 끔찍한 이가 나타나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
그의 예언을 믿거나 안 믿는다는 것을 떠나 지금까지
그가 예언한 몇 가지 사건들을 보며 그의 예언에 대해
가끔 생각하게 된다
.

한국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에는 여러 종류의 언론 매체가
있지만
, 네덜란드인이 제일 신임하고 가장 많이 시청하는
뉴스는 매일 저녁
8, 25분간 네덜란드 전 지역에 전파되는
공영방송의
NOS 뉴스다. 진보적인 색채를 띤 이 공영방송의 뉴스는 매회 백만 명
(1,000,000) 이상의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한다. 이렇게 많은 시청자가 시청한
사건 중
올해 네덜란드인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고 화제가 된 사건들은 무엇일까?

아랍의 봄


이미지 출처: nrc.nl.  Tahrir square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었지만, 올해 일어난 중동 민주화 바람은
네덜란드인에게 큰 충격을 줬다
. 30년간 독재자의 의자에 앉아 꿈쩍도 않던 전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
, 튀니지 혁명, 예멘의 반정부 시위, 카다피 정권의 몰락으로 중동 전
지역으로 번진 아랍의 봄은 네덜란드인으로 하여금 다시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줬고 또한
, 이 일로 네덜란드인과 네덜란드 거주 아랍인과의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

일본의 대지진과 원전폭발사건


이미지 출처: humantarian.worldconcern.org

중동 민주화 바람이 일어남과 동시에 일어난 일본의 대지진 그리고 일본의 원전폭발사건은
유럽과 북미대륙 뉴스에만 익숙한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위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륙이 있음을 가르쳐준 사건이다
. 특히 대지진 사건을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네덜란드인들은 무척 감동했다
. 뉴스로 통해 보여준 물 공급을 기다리던 일본인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네덜란드인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

노르웨이 총기 난사사건

아랍의 봄과 일본의 대지진 사건 다음으로 네덜란드인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노르웨이 극우파
브레이비크의 총기 난사사건
. 이 사건으로 네덜란드인은 2004년 이슬람 과격파에 의해 암살당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
(Theo van Gogh, 화가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증손)2002
생태주의 극좌파에 의해 암살된 네덜란드 정치인 핌 포트윈
((Pim Fortuyn)의 죽음을 다시 떠올렸다.
이 사건은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유럽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에 네덜란드인이
받은 충격은 한층 더 컸다
.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

Rehab, back to black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영국 R & B, 소울, 재즈,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Army Winehouse). 27세의 나이로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천재적인 음악가 재니스 조플린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와 같이 클럽
27의 멤버가 된 그녀의 죽음에 네덜란드인들은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채 못다 핀
, 또 한 명의 음악가가 사라진 것에 대해 네덜란드인들은 무척 슬퍼했다.

 

그 외 네덜란드인들의 시선을 끈 사건들은 12월에 일어난 벨기에 리에주 총격사건,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소식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 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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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해바라기와 감자를 화폭에 담은 고흐의 길을 따라서


생의 무상함을 하루아침에 느낀것도 아닌데 고국에서 들리던 슬픈소식은
다시금
인생의 허허함을 느끼게한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한줌의 재로 변하는 죽음이라는
처절한 모습은 나의 인생을 뒤돌아보게 해주기도했다
.

19세기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화가의 한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짧은 생을 마친
고흐의 삶을 찾아 그가 살던곳을 찾아나섰다.

1883년에서 1885년까지  그의 부모와 함께 거주했다는 네델란드의 도시
뉴넨
(Nuenen)이라는 곳을…(한국어: 뉴에넨)

그가 생존했을 당시 그는 화가로서 대우 받지못했다. 
위대한 이들이 살아있을동안 자주 외면당하듯이

주위의 사상과 동의하지 않는다는것은 배신자들이 하는짓이요
같은 행동을 하지않는이는 사회에서 버림받는것이다
.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런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고흐의 아버지가 목사로 지냈던 곳. 이곳에서 그는 병든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도 담기도...


고흐가족이 이곳에 머무르는동안 살던집.

뉴너빌레(NuneVille)라는 이름을 가진집.
고흐의 사랑하던 연인 마고트 베거만(Margot Begemann)이 살았던 집

그가 잠시동안 생활했던 이곳에는 아직도 많은 고흐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난과 외면에 절망했던 고흐의 그림속에 자주 등장하는 풍차,

사랑했던 여인의 집, 그의 가족들과 지내던 집이며 그시절 가난에 찌들린
서민들의 주식이였던 감자를 먹는이들의 그림들이 이시기에 그려진것이다
. 
화가시절의 그는 그의 그림을 담을 화폭마저 마련할 돈이 없었다.
그리하여 동생 테오가 마련해주는 한개의 화폭에 두번씩 그림을 그리기도

 

1837년 건축된 이건물은 고흐의 많은 스케치, 동생 테오와 교환하던 편지등을 보관하고 있는곳으로 
1976년부터 고흐의 자료보전소로 되였다.



이 작은 도시, 돌아가는 골목길마다 나는 그의 숨결을 느낄수가 있었다.

어디선가는 그의 처절한 외침이, 그가 같이 숨쉬던 농부들의 감자심는 풍경이
내눈앞에 펼쳐지기도
.
이곳에 자리잡은 고흐의 자료보전소에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그의 많은 스케치등이 보관되여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풍차

고흐는 살아생전 많은 해바라기를 화폭에 담았다.
그가 그리던 해바라기는 고갱이 아를에 체류하는동안 지낼 고갱의방
장식용으로 그린것들이였다
.
8월의 햇살아래 노란색의 찬란한 자태를 한 해바라기를 고흐는 4번씩이나 그렸다.
그중에서 두개의 작품이 그가 원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들을  그와 우정을 나누고자 하던 고갱의 방에 걸어두기도 했다.
해바라기의 꽃이 시들어지듯이 그들의 우정도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빈센트 반 고흐(1853 - 1890), 해바라기, 반 고흐미술관/Van Gogh museum, Amsterdam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먹물을 뿌려놓은듯한 하늘이 돌아가신분들을 애도하는것같다
.

해바라기의 꽃말이 기다림, 애도 혹은 숭배함이라 하니

그의 그림 해바라기는 가신분들을 애도하는것이며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마음을 뜻하는것이리라
. 
페루의 잉카문명에서는 이 해바라기가 태양신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해바라기꽃이 태양이 있는곳으로 고개를 향한다고 한다
. 

고흐의 해바라기, 가난과 서민의 상징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던 고흐

그가 떠난지도 수없는 밤과 낮이 지나갔건만 우리는 아직도 그의 그림들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고있다. 그가 만났던 생을 화폭에 옯겨놓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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