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명상법의 설립자 마하리쉬와 비틀스

 

 

사는 네덜란드에 일명 TM(Transcendental Meditation) 대가 마하리쉬

(Maharishi)가 거주하고 있었다.  몇 년 전 91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은 뒤

고향 인도로 돌아간…,

이 요가의 대가 마하리쉬와 비틀스는 아주 깊은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반전운동이 한창일 때 평화의 상징, 히피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던 비틀스의
멤버들은  그가 거주하던 이곳을 방문하고 그들의 생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

존 레넌을 제외하고는

마하리쉬는 1990년부터 이곳 네덜란드 남부지방, Vlodrop(프로드롭)이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마하리쉬 방송대학을 설립하고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제자들 또한 오백여
명에 달한다
.

그가 말하던 구호가 지구 상의 평화라고 말하는 것 같고, 이들은 그들만의 지폐도 있다.
60,70년대에 이르러 요가의 대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연예인들. 비틀스,
비치보이스, 미아 패로우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히 연예인들과의  관계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고 알려진 마하리쉬는 그의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인도까지 간 존 레넌을
제외한
, 조지 해리슨등 나머지 비틀스의 구성원들은 이곳을
몇 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출처: life.de

사진출처: hotelspecials.nl
반전운동가
, 평화를 부르짖던 존 레넌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되였지만 이곳 네덜란드에는
아직도 그와 그의 부인 오노 요코가 신혼여행 때 평화를 위해 시위한
,
그 당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침대시위 사진들과 그들이 투숙했던 암스테르담
힐튼호텔에 두 사람이
투숙했던 방마저도 간직하고 있다
.
존 레넌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둘러봐도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젊음이 무엇인가를 알려줬던  예술가로서
기억하는 나로서는 무척 의미가
있는 곳이라 생각함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Posted by femke

 

네덜란드 대학생 어떤식으로 정부로부터 학자금 지원받을까?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의 대학은 대체로 8월 중순에서 9월에 개학을 한다.

이런 대학지망생들을 위해 봄이되면 각 대학에서 홍보를 위해 오픈 데이를

주최하고 대학지망생들은 이 오픈 데이에 많이 참석한다. 올해도 이 오픈 데이가
올것이고 대학생을 가진
, 대학지망생을 둔 부모들이 등록금으로 걱정하는것은

이곳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

우리나라에 등록금 상환제가 실행되는것 같은데 이곳과 어떻게 다른지,

네덜란드 정부가 대학생을 위해 어떻게 학자금 지원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처럼 국립대, 사립대, 지방대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것이 옳을것이다.  디자인, 예술방면쪽으로 사립대(대학이라기보다는

연구소, 특정 교육기관이라고 보는것이 옳을것 같다)가 몇군데 있긴 하지만

그리하여 대학지방생이 선택하는 대학의 선택과정도 좀 다른것 같다.

굳이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과 같이 큰 도시로 몰리지도 않고 간혹 유학생들이

질문하는 이곳의 좋은 대학, 유명한 대학이라는 관념도 이곳에서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대학의 평준화라고 볼수있다. 학생들중 10%미만이 대학에 입학하는 이곳
학생들의 학자금은 어떤식으로 정부로부터 지원 받을까
.


 

등록금:

 

올해(2009-2010) 이곳 대학 등록금은 € 1620이다.

이 등록금은 네덜란드 전 대학에 적용된다. 어느 대학이 등록금이 비싸고 어느과가

등록금이 싸다는 그런식의 등록금은 이곳에는 없다. 모든 교육제도는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한다
. 환율시세가 날마다 조금 다르고 외환을 팔때와 구입할때의 가격이 달라 
오늘 환율을 이용하여 1600원으로 계산하니 이곳 학생 한해 등록금이 약 2 6십만원정도.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 수입으로 보면 대략 한달 봉급이다. 물론 넷으로(세금을 공제한 봉급)…

거액이라면 거액인 금액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우리나라 등록금이(사립대학)
800에서 900만원인것 같았다. 유로로 환산하면 거의 5천유로.
제법 부자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이곳 사람들이 자식을 대학을 보내기위해 이 돈을
저축하자면 제법 많은 시일이 걸릴것 같다.
 
 

기본보조금: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에는 대체로 몇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째로 기본보조금이라는것이 있는데 대상자는 모든 대학생과 실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 단 실업고등학교 학생의 연령은 18세이거나 18세 이상.
10년이내에 졸업장을 수료한다면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선물이라는 이름아래

이 보조금을 정부로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이 기본보조금에는 학생들이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지 아니면 자취를 하는 학생인지에 따라 그 보조금의 차이가 있는데 자취하는
학생들의 정부보조금이 대략
250유로.

하기야 이 보조금으로 방값도 제대로 내지 못하겠지만

 

교통비 지원:

 

네덜란드 정부는 학생들에게 교통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모든 공공교통은

학생들에게 무료다.(자취생과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들과의 차이점은 있다)

방학때는 교통비를 보조 받을수없지만 학생신분증으로 40%까지 공공교통비 할인을
받을수 있고 기간은 약
4.

 

추가보조금:

 

저소득 가정을 위한 추가보조금. 부모의 수입에 따라 보조금의 금액이 달라지고

기본보조금과 같이 기간안에 대학을 졸업하면 추가보조금은 공짜다.

또 하나의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정부로부터의 선물.



 

그외 학생들은 돈을 빌릴수 있는데 이자는 현재 연 4%이다. 한달에 약 800유로까지
빌릴수있다
. 단지 빌린 돈은 알고 있기로는 30년 상환에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후 갚는것으로 알고있다
. 이것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거론되는
등록금 상환제와 비슷한것 같다
. 그러나 이곳 대학생이 졸업을 하면 95%이상이 직장을
가질수 있는지라 이런 등록금 상환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 오히려 값싼 이자로
돈을 빌릴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많은 학생들이 돈을 빌리고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 대학생도 많이 있고
  또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이곳 학생들은 대학을
마칠수 있다
.
이런 등록금 상환제가 잘 운영되자면 취업도 보장되여야 할것같다.

취업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결국 학생들은 빛으로 시작하는 인생이 되고 말것이다.

 

소위 부자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이곳 등록금이 삼백만원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비싼 등록금을 지불해야 하는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한달 수입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Posted by femke

 

네덜란드인들이 관광객으로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경우는 좀 드문 일인것

같다. 거리상의 문제점도 있지만 일부 다른 아시아 즉 일본, 중국, 태국 심지어

인도보다 여행지로서는 덜 알려져 있는것 같다. 이곳에서 일본, 중국은

동양의 심볼이고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시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들이 선호하는
여행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 가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개학전 남은 여가를
이용하여 여행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태국
, 인도등지를 여행하는것을 보면

대체로 이곳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는 인위적으로 가꾼 도시의 모습을 볼수있는

곳이 아닌 사람들의 순수한 숨결이 묻혀져 있는곳, 그 나라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곳
, 햇빛이 보장되는 여행지를 즐겨 찾는것 같다.

물론 휴가내내 선텐의 목적으로 모래사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지만

 

대체로 이곳 사람들이 우리나라 방문시 찾아가는 곳들을 정리해보면:

 

서울:

 

여러 궁궐들, 인사동, 동대문시장. 가끔 한옥마을도 방문하는것 같던데 이에 대한
평가는 차이가 있는것 같다
.

그리고 판문점은 한국을 방문하는 이로서는 절대적으로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들 하는것 같고..
 

 

부산:

 

해운대, 자갈치시장(특히 이곳에 대한 평이 좋은것 같다. 특이한 장소, 네덜란드
도심지에서는 잘 볼수없는 어물시장이라서 그런것 같다
).

범어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지로 지정된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이곳도 방문한다고 한다.

 

제주도:

 

제일 유명하게 알려진것이 해녀들이다. 네덜란드 상업방송에서 보여주는

세계여행 프로그램에 이 해녀들의 모습이 몇번 등장한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가끔 우도도 방문하고 왔다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분한것은 아닌것 같다
.

 

경상도쪽으로는 단연 경주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안동 하회마을, 지리산에 위치한
화엄사도 구경한다는것 같다
.

그외 설악산, 보성녹차밭, 여수,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알려져있는
진도바닷길등도
방문한다
. 직접 이 바닷길을 걸어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것 같다
.

이들이 우리나라를 둘러보면서  감명을 받았던것들은 모심는 풍경, 석가탄신일에 절에
즐비하게 걸려져있는 연등이였던것 같고
  그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것은 즐비한
아파트 고층건물이라고 말했던것 같다
.
편리했던점은 택시비가 예상외로 싸고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들이 아주 친절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에 대해  좋은 평들을 하고 있는것 같다.

 

윗글은 주위 비지니스로 한국을 방문하시는 분들, 한국입양아 가족들의 한국여행시
방문하는 곳
, 이곳 대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 우리나라에서 지내면서 방문하는곳을 
이야기로 통해 정리해본 것이라 이 장소만 100%  방문한다고는 어렵지만 대체로

위에 언급한 곳들이 주로 네덜란드인들이 한국방문시 찾아가는 명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2008년 한국여행중 찍은 사진. 제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사진중 하나입니다. 


2008년 한국여행시, 소매물도 가는 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Posted by femke

 

주말부부 30년을 회고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세월은 강물처럼 흐른다고 이야기 하는것 같다.

이 흐르는 강물처럼 낯선 땅에서 어느듯 삼십년도 넘은 세월이 흘러갔다.

예전 졸업만 하면, 스물 서너살만 되면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못살게 굴던

친척들의 귀찮은 충고 아닌 충고를 뿌리치고 자유인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당시 올드 미스였던 나의 생활을 180도로 바꾼것은 결혼.

그리하여 시작한 이 해외생활.


이 오랜 해외생활
, 이방인으로 해외에 생활하면서 나와 남편은  거의

삼십여년을 주말부부로서 지내게 되였다.

내가 항상 염려했던것이 아이들의 정서면이였던지라 해외나 다른 지방의

프로젝터에 일을 하게 되던 남편을 따라가지않고 아이들의 친구가 있는

아이들이 눈익은 거리들이 있는 곳에 나는 살기를 원했고 또한 생활했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고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으로….

이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편한 일들도 일어났지만 더러는 부부싸움까지

몰고 오는  일들도 있었던것 같다. 특히 아이들 교육문제로..



각 가정에는 그 가정에서 지켜야 하는 가족간의 규율
, 예의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주일동안 집에서 어떤일들이 벌여졌는지를 자세히 모르는 남편은 자신을

오랫동안 우리집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아이들이 어떤

친구집을 방문하는지 어떤 친구가 우리집을 방문하는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나와 아이들간의 가정에서의 규칙을 잘 모르던 때도 더러는 있었던것 같다.

나의 예스는 남편의 노가 될때가 있고 나의 노가 남편의 예스라는 대답으로 종종
아이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때도 있었고 또 이런 주말부부의 약점을 아이들이
이용할때도 있었던 같다
.


그러나 생각컨대 주말부부로서의 장점도 더러 있었던것 같다
.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여자들만의 여행이라는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쉽게 접할수있는 여자들끼리 가는 여행이지만(싱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네덜란드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아이들이 어릴때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던 나를
  주위사람들은 내가 참 용기있는 여자로 보였던것 같다. 
무척 이기적인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도 더러는 있었지만...

남편없이 혼자서 여행하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이들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주부는 독립적인 생활을 지향할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독립적인 행동이 여성해방의 첫걸음은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면 주말부부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이라는 경지까지 몰고가는
부부들이 더러 있다
. 서로가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시간부족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여 결국 타인으로 돌아서는 이들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

그들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을까?

주말부부로서의 스트레스를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고 얼마만큼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까?

 



가끔 나를 두고 주말과부라고 놀리는 친구들에게 요즘 내가 하는 말

주말과부가 난 훨씬 편해

부부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먼것 같다. 큰 행복을 찾기전에 내 앞에 펼쳐진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해할려고 노력한다면 주말부부로서의 어려운 문제점도
어느정도 해결할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Posted by femke
암스테르담 담광장에 서있던 자유의 상징, 여왕왕궁[Koninklijk Paleis op de Dam]





수리로 새롭게 단장한 암스테르담 당광장
(Dam, Dam Square)에 서있는

여왕의 왕궁이 관중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권위의 상징인 왕궁이

일반인들에게 왕궁의 문을 연다는것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왕실에 운영되는것으로,

왕실유지비에 대한 의혹심과 일년에도 헤아릴수조차 없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암스테르담의 경제, 문화 그리고 이 관광의 도시 이미지홍보에도

한몪하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든다.




한번 다녀가는 관광객이 뿌리는 금액들도 결코 무시하진 못하겠지만

네델란드를 다녀가는 관광객이 이나라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가는것을

분석해보는것도 중요한 관광사업의 업무라고 볼수있는것 같다.

왕궁앞에 벌여지는 각가지 행사들, 10m거리도 되지않는곳에서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들
, 왕궁앞에 세워져있던 많은 자저거들은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을 대표한다고도 볼수있을것 같다.

방문하는 관광객이 단 한번의 방문으로 끝이나는것이 아니라 재방문의 가치를

자유를 만끽하는 이런 거리풍경에서도 느낄수 있을것이다.
이런 방문객들의 태도가 결국 영구한 관광사업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으로 생각된다
.


 


암스테르담 담광장에 있는 이왕궁은 여왕의 집무소 역활을 한다.

헤이그에 있는 다른 두개의 왕궁처럼.

여왕집무소이외의 왕궁의 주요역활은 네델란드에서 일어나는 큰행사,

해외귀빈들을 모시는 장소로 주로 사용되고있다.

전쟁기념관 건너편에 서있는 왕궁은 야곱 반 캄펜

(Jacob van Campen, 한국어: 제이콥 반 캄펜) 1648 – 165년 건설한것으로

원래는 암스테르담 시청사였다.

겉으로 보는 여왕의 왕궁은 그리 화려하다고는 말할수없다. 회색이나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겉모양의 건축물은 왕실을 대표하는 왕궁의 화려함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허나 실내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주치는 거대한 대리석의 기둥들, 바닥.
천장을
장식하는 어마어마한 천장 프레스코, 수없이 많은 왕실소장품들,

옛 네델란드 가구들은 네델란드 황금시대를 연상케한다.

13,659개의 기둥과 석재로서는 독일의 벤다임지역에서 생산되는 사암을
이용했다는 이곳은 한때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의 많은 후보가운데 속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행정목적의 건물이기도 했다
.




 


네델란드여왕 베아트릭스가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것은 아니였다.

여왕과 이 암스테르담시와의 관계도 그리 좋았던것도 아니였고.

그녀가 독일귀족태생 클라우스 본 암스베르그공(Claus von Amsberg)과의

결혼사실이 발표되였을 당시에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그녀의 지위마저 흔들렸다.

그이유로서는 이차대전의 후유증, 클라우스공의 독일출생이라는점 그리고
이분의 젊은시절 나찌정권 청년단가입등으로

그러나 클라우스공의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가 생존시 왕실의 보수적인 이미지타파,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참여등으로 한때는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화려한 왕궁에서의 왕실로서가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를 중요시하고

서민들과의 거리감을 타파하고자 네델란드왕실은 많은 노력을 한다.

직접 조각을 하는 베아트릭스여왕의 예술에 대한 관심도는 너무 잘알려진 사실.

 





바닥에 쓰여진 재료로서는 대리석이고 이바닥에 두개의 반구가 그려진 지도가있다.

서반구와 동반구.

이것은 당시 네델란드 식민지정책과 영토에 대한 지도이다.

네델란드역사를 잘 반영해주고 있는것 같다.


네델란드 왕궁들로서는:


Paleis op Dam{Royal Palace}, Amsterdam(암스테르담),

여왕의 집무실로 사용하고있다.

Paleis Noordeinde, Den Haag(헤이그), 여왕의 집무실

Paleis Huis ten Bosch, Den Haag(헤이그),

하우스 텐 보스라는 왕궁.

많은분들은 일본 나가사키, 사세보(Sacebo)시의 테마파크 하우스 텐 보스를

알고 있을것이다. 이곳은 네델란드 왕궁의 이름을 빌린, 네델란드의 한부분을

복사해서 만들어놓은곳이다.

De Eiken, Wassenaar(와세나르)

Huis Het Loo, apeldoorn(아펠도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Posted by femk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