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전 네덜란드 우승이 낳은 유머


큰 경기의 우승과 패배 뒤에는 항상 팬들과 시청자들의 비판과 유머가 

뒤따른다아직은 첫 경기밖에 치르지 않은 네덜란드 팀이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낳은 후유증이 대단하다. 축구 팬 다수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하지만 승리는 즐거운 것. 따라서 경기에 따른 팬들의 

반응 또한 다양하다.


네덜란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신발 끈 

묶는 일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무언가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

로서는 상당한 일이다. 숫자, 글자가 아닌 아이 스스로 운동화 끈 묶기를 

배운 아이들은 학교로부터 수료증을 받는다. 아이들이 학교를 채 졸업하기 

전 학교로부터 제일 먼저 받는 증명서가 되는 셈이다.


스페인 네덜란드 경기에서 아리언 로벤은 운동화가 벗겨졌지만 운동화 끈을 

풀어 신발을 다시 신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여 이를 본 시청자

들은 로벤선수에게 멋진 선물을 줬다. 네덜란드 초등학생에게 주는 운동화 

끈 묶음 수료증. 물론 로벤 선수도 분명히 초등학교에서 이 수료증을 받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이미지 출처: google.nl




투우사가 된 반 페르시.




네덜란드 마트에는 스페인 산 오렌지가 대부분이다. 예전 이탈리아, 이스라엘

에서 수입하던 오렌지는 스페인 산 오렌지로 바꿨다. 거의 100% 시장 점유율

이다. 그림은 스페인 산 오렌지와 그것으로 주스를 만든 네덜란드를 표현한다

스페인 팀이 네덜란드 팀에게 참패했다는 뜻이겠지.





반 페르시의 헤딩슛에 대한 반응과 재미있는 이미지가 가장 많다.


에볼루션으로 인간의 진화과정을 그려낸 인간 진화론에 비유한 이미지.




플라잉 더치맨. 피터 팬과 함께 나는 반 페르시.



네덜란드 상징 사자와 스페인 상징 투우. 당연히 사자의 우승이다.



시계로 그려낸 네덜란드에 5골을 허용한 카시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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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고학력 취득자의 취업방법


우리나라 청소년 실업률이 상당히 높다는 소식이다. 그중 고학력 실업자율도 

상당하다고 했다. 이 고학력 실업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 그중 

부유하다고 알려진 서방국가에도 큰 골칫덩이다. 그리고 이 추세는 앞으로 몇 

년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심지어 유럽에서 고학력 취득자 실업

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인 네덜란드도 고학력 실업률에 걱정하기는 마찬

가지다.


현재 네덜란드 고학력 취득자의 실업률은 약 4-8%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공과는 상관없이 전체 대졸 출신의 실업률이다. 따라서 전공한 과목이 무엇

이냐에 따라 고학력 취득자의 실업률은 달라진다. 

 

참고:


2012-2013년 네덜란드 대학생 수

 

2012-2013 네덜란드 대학 재학생

Universiteit(유니버시티)

241.300

Hogeschool(호게스쿨)

421.500

네덜란드 총 대학생 수

662.800


네덜란드에는 두 종류의 대학교가 있다.

연구중심의 유니버시티와 실습중심의 호게스쿨


2012-2013 네덜란드 대학교 1학년 학생

Universiteit(유니버시티)

52.000

Hogeschool(호게스쿨)

96.900

네덜란드 대학교 1학년 학생수

148,900

 

2000년 중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에도 네덜란드 경제가 침체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도 대졸 취득자 특히 이공계 그중 공과출신의 취업은 거의 100%였다

이 점은 지금도 거의 같은 수준이다. 그 이유는 이공계가 어렵기도 하지만 대학을 

갈 수 있는 고등학교에서 취급하는 과목도 문과나 경제 혹은 법대를 지망하는 

이곳에서 말하는 소위 알파학생과는 다르게 굉장히 어려워 이공계 지망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요만큼 공과출신이 많지않아 자연히 

이들의 대우가 높아지고 따라서 취업률도 다른 전공의 대졸 출신과는 현저하게 

높다.



이미지 출처: Tue.nl


네덜란드에 있는 세 개의 공과대학교 중 하나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에인트호벤 공과대학교.


네덜란드 고학력 취득자의 취업은 어떤 식으로 일어날까?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처럼 대규모 공개채용이라는 단어도 모를뿐더러 일어나지도 

않는다이것은 그만큼 고학력 취득자가 우리나라에 비해 적고 또한, 우리나라처럼 

단지 취업을 위해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학생, 가고 싶은 학생만 가는 게 

네덜란드 대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갓 입학한 신입생이건 졸업을 앞둔 학생이건 네덜란드 대학생이 한 번쯤 

가는 게 대학생을 위한 취업박람회다. 취업박람회는 네덜란드에서 내놓으라 하는 

대기업이 참여하고 기업들은 인재채용을 위해 대학생들의 취업요구조건이 무엇인지 

대해 연구하고 철저히 준비한다.


둘째로 취업을 위한 방법으로는 인턴십을 통해 취업하는 방법.

네덜란드 대학생은 두 번에서 세 번 반드시 현장실습을 해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

인턴십 기간은 3개월에서 5개월 정도. 물론 인턴십에 교통비 등 적당한 보수도 따른다

인턴십 기간 대학생이 보여준 능력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세 번째 취업을 위해 네덜란드 대학생이 하는 일

원하는 기업에 이력서 내는 일. 현재 직원이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그건 상관없다

기업은 접수된 이력서를 없애기도 하지만 보관도 한다. 접수된 이력서는 일정 기간 

보관하고 사람이 필요로 할 때 부르는 경우도 있다.


네 번째 취업 방법

취업사이트 이용. 여러 종류의 직업소개소가 있어 어느 취업사이트를 이용해도 관계

없지만 대체로 고학력 출신을 위한 사이트에 등록한다.


이외에도 취업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인맥으로 취업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자신의 노력으로 취업에 성공할 확률은 우리나라 고학력 취득자

보다 훨씬 높다.


유럽은 현재 고학력 실업으로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청년층 구직자를 두고 잃어

버린 세대라고도 부른다. 꿈과 열정의 세대가 아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 

말이다. 하지만 학이나 경제를 전공한 대졸 출신과는 달리 이공계, 간호학과를 전공한 

고학력 취득자에겐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만큼 취업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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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의 이름이 새겨진 헤이그[덴 학]


네덜란드 지명 중 영어로 이름이 바뀌는 곳은 두 곳이다. 유럽인을 제외하고 다른 

대륙에서 불리는 헤이그, 덴 학(Den Haag)이 그중 하나다. 덴 학의 영어식 이름 

헤이그의 정식 명칭은 스 그라벤하게(’s-Gravenhage).


네덜란드 행정 수도 헤이그는 네덜란드 모든 정부 부서와 대법원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네덜란드에 주재하는 각국 공관이 있고 국제 사법 재판소, 국제 형사 재판소

구유고슬라비아 국제 형사 재판소, 화학 무기 금지 기구, 상설 중재 재판소와 같은 

여러 유엔 기구가 있다. 따라서 헤이그는 뉴욕, 제네바, 빈과 함께 세계에서 중요한 

유엔기구가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지금까지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인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의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하여 58개국의 지도자가 참석한다. 하지만 

이런 큰 이벤트가 열리는 것이 네덜란드인에게 반갑지만은 않다. 헤이그를 세계에 

홍보하는 것보다 행사준비에 드는 24백만 유로, 회의가 열리는 동안 발생하는 

교통체증 등이 가장 큰 이유다.


핵 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는 어떤 관광명소가 있을까?


Vredespaleis(평화궁)



이미지 출처: Den Haag.nl


평화와 정의의 상징인 헤이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역시 프레데스 팔레이스(Vredespaleis), 

평화궁이다. 백 년이 조금 넘은 건물로 카네기 건설 자금으로 건축된 이곳은 국제사법재판소

상설중재재판소,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도서관 등이 있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한다.


Binnenhof(비넨호프)







네덜란드 국회의사당으로 고딕성당 형식의 건물. 수상집무실과 네덜란드 정치 중심지며 이준 

열사가 참석하려고 했던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 곳이다.


Gemeentemuseum Den Haag(헤이그 시립미술관)







19세기 새 건축스타일로 만들어진 헤이그 시립미술관은 건축학도의 동경의 대상인 네덜란드 

건축가 베르라헤에 의해 건축되었고 몬드리안의 나라인 만큼 헤이그 시립미술관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몬드리안의 유명한 빅토리 부기우기도 이곳에 있다.


Mauritshuis(마우리츠하우스, 헤이그 왕립미술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거장 요하네스 퍼메어(한국어 베르메르)와 프란스 할스의 작품 등이 전시

되어있다. 특히 퍼메어의 가장 유명한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이 미술관의 가장 소중한 

작품 중 하나다.


Escher Museum(에셔 미술관)








네덜란드 여왕 에마의 겨울 궁전이었던 이곳에 네덜란드 판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미국 

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영원한 황금 노끈)와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에 등장하는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의 미술관으로 에셔의 공간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이다.


이준 열사 기념관



이미지 출처: haagspraak.nl





을사조약 체결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임을 만국평화회의에서 폭로하려 했던 고종의 특사 

이상설이위종 그리고 이준 열사의 기록과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곳그당시 호텔 더 용(De 

Jong)에 현재 이준 열사 기념관이 있다.


Madurodam(마두로담)



이미지 출처: youropi.com


헤이그에 있는 미니어처 테마파크. 1952년 개장 후 매년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일본의 하우스 텐 보스식의 테마파크다.


Scheveningen(스케브닝겐)









예전 어촌으로 현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개인미술관 바닷가의 미술관과 스케브닝겐 

카지노 등이 유명하다.


Huis ten Bosch paleis(하우스 텐 보스 궁전)



이미지 출처: nl.wikipedia


왕실이 아닌 국가 소유 궁전으로 헤이그에 있는 왕실의 공식 관저중 하나다. 1981년 부터 

베아트릭스 여왕 관저로 사용되었으나 앞으로 윌렘 알렉산더 왕과 가족이 생활할 궁전이다

핵 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25일 밤 윌렘 알렉산더 왕과 막시마 왕비 주최로 이곳에서 

만찬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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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일기장 훼손보다 가미카제 유서에 더 분노하는 

네덜란드 네티즌.



4일 전 네덜란드 언론으로 통해 황당한 뉴스가 전해졌다. 안네 프랑크 일기장 

훼손사건이다어린 나이로 작가를 꿈꿨던 안네 프랑크가 나치를 피해 2년간 

숨어 살던 암스테르담 프린센 운하 263-267번지에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매년 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또한안네 프랑크 일기장은 1947년 첫 

출판 이후 전 세계에 번역된 네덜란드 세계기록유산이다.


도쿄에서 일어난 안네 프랑크 일기장 훼손에 대한 네덜란드 네티즌은 침착했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곳 네티즌은 이런 뉴스에 생각보다 

흥분하지 않는다. 차라리 독재정권,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 아랍의 봄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이번 사건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나라 네티즌의 소극적

(?)인 태도도 태도지만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일본 극우단체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 사건의 뒤에는 아베 정권의 정치태도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안네 프랑크 일기장 훼손은 미개인의 행동 아니면 어느 미친 우익의 행동으로 생각

하지만 정작 네덜란드 네티즌을 분노케 한 것은 가미카제 유서 세계 유산 신청이다.


2차 대전은 유럽 역사의 일부분이다. 하여 전쟁이 종결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전쟁 

후 현재까지 문학, 영화 등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2차 대전과 파시즘이다. 그만큼 2차 

대전은 유럽인의 의식세계에 깊이 연결되어있다. 따라서 가미카제 유서 세계유산 신청은 

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일본행위의 정당성 추구나 역사를 부정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진다.  





안네 프랑크 일기장 훼손은 분명히 나치 정권이 행한 유명 문학가, 철학자 등의 서적을 

불태운 행동과 비교할만하다. 하지만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오와 역사를 

세계유산 신청으로 덮으려는 의도는 누구에게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네덜란드 네티즌이 지탄하고 분노한 가미카제 유서 세계유산 신청은 가깝게는 일본 

극우파를 향한 화살이며 멀리는 군국주의,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에 대한 

화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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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하게 한 한국의 밥상,

스테이크는 저리 가라 시래깃국이 간다.


네덜란드의 밥상은 화려하지 않다. 아주 소박하다

그건 유럽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흔히 

보는 샌드위치는 네덜란드에서 날마다 먹는 아침도 

아니요 그렇다고 평범한 직장인 또는 학생들의 

점심도 아니다. 아직도 국민 80% 이상이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에서 보는 그런 

샌드위치는 무척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그래서 

한국을 다녀온 아들이 한국의 다양한 음식을 보고 

부러워했었지.


울산 언양에 있는 신불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간월산 밑 주차장에 있던 음식점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허름한 곳을 찾았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은 음식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 같던데 나는 물과 먼 길을 갈 때 항상 챙기는 초콜릿 하나만 들고 6시간도 넘는 길을 

갔던지라 도저히 숙소까지 걸어갈 힘이 없어 어묵과 파전 등을 파는 간이음식점 비슷한 

곳을 들어갔다. 배가 고플 때는 내겐 밥 이상이 없다. 메뉴판에 적혀진 정식이 눈에 들어

왔다. 밥상을 보는 순간 울컥한다. 시래깃국이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자주 만나는 서양음식 앞에 요즘은 보기 드문 음식이 되어버린 시래깃국. 참 

감동적이다.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시래깃국이 나를 감동케 한다. 내가 어릴 땐 

시래깃국 참 많이도 먹었다. 그땐 그것밖에 없었으니. 영양분 많은 시래기가 그땐 별로

였는데 지금 내 앞에 시래기는 왜 이렇게 반가운지!





한국인의 밥상은 아름다운 목조건축물과 같다. 자연스럽고 우아하고 인공적인 것이 첨가

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목조건물. 소박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며 감동을 

자아내는 건축물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감동한다. 한국인의 밥상에. 최고급 

레스토랑의 그 어떤 요리보다 더 맛있었던 5,000원짜리 한국의 밥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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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하게 한 세 명의 산악인

 

내 고향은 경남의 알프스라는 산들이 있고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울산이다. 내가 이곳에 살던 

때는 지금처럼 산들이 유명하지도 1,000미터가 

넘는 산에 핀 억새를 구경하고자 관광객이 찾아오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서 봄에는 

철쭉꽃을 가을에는 울산주변 7개의 산에 핀 단풍과 

억새로 은빛 들판을 이루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주말은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들 하지. 내가 태어나고 성장기를 

보낸 이곳을 나는 잘 모른다. 아니 예전엔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변해 버린 이곳을 잘 알지 못한다.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나는 내 고향 알기를 거부하고 다른 지역 여행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올해는 내 여행계획을 좀 

다르게 세웠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이곳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다른 이들이 찾는 울산 관광지를 

찾아 나섰다.


신불사는 울산 7개의 명산 중 하나로 산 높이가 1,159m. 일출로 유명한 간월재가 있는 간월산

처럼 신성한 땅, 신령의 산으로 불리며 가을이면 억새평원으로 사진작가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 

신불사를 등산 초보인 내가 찾아 나섰다. 실지로 나는 등산보다는 사람들의 찬사가 끓이지 않는 

억새평원을 더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억새는 울산 태화강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강 옆에 핀 

억새보다는 이곳 억새가 훨씬 운치 있고 산에 핀 억새라 한 번은 봐야 한다고 하도 친구가 권하는 

바람에 이곳을 갔다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하고 등산이라고는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내가 과연 천 미터가 넘는 산에 

올라가서 그곳에 핀 억새를 볼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산을 향해 올라갔다. 등산화도 신지 않은 

채 그냥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가 꽤 가파르다. 내가 올라간 등산로

보다 쉬운 길도 있었지만, 지도를 보니 거리가 거의 두 배라 빠른 길을 택한 것이 잘못인 것 같았다

한참을 올라가다 마침 나와 같은 등산로로 등산하는 부부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생각 

끝에 그만 산에서 내려가겠다고 했다. 가파른 곳을 오르니 숨도 차고 등산화가 아니라 등산로에 

깔린 낙엽들이 생각보단 내겐 무척 미끄럽다. 간밤에 비가 와서 더 그런 것 같은데 이대로 가다가는 

오지도 가지도 못할 것 같아 같이 산을 오르던 부부를 뒤에 두고 하산을 시작했다. 근데 아직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포기한 채 내려가는 나를 보던 어떤 분이 말을 건넨다.

 

"등산화 신지 않아도 산에 올라가는데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시면 안 되죠?"


라고. 그분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산을 포기하면 나는 다시는 사람들이 칭송하는 

명산도 억새평원도 못 볼 것 같은데 어쩌지. 결국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라는 울산 어느 산악회에 

몸을 담고 계시다는 그분만 믿고 다시 산에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갔는데 아까 하산한다고 작별했던 

그 부부등산인을 다시 만났다그러잖아도 날 하산하게 한 게 자신들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었다며 무척 반긴다. 이제부터 자기들이 내 옆에 있겠노라며.



날 신불사 정상까지 올라가게 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 부부



로프에 몸을 맡기고 바위를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다 오를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며 나를 격려하던 참으로 고마운 분.


하루 만에 내게 세 명의 프로 산악인 친구가 생겼다. 내가 천천히 걸으면 그분들도 천천히 산을 오르고 

내가 숨을 헐떡이면 날 기다려주던 신불사에서 만난 세 명의 산악인. 가지고 온 과일도 나눠 먹고 휴게실

에서 비록 컵라면이지만 같이 먹으며 인생사 이야기하면서 느낀 게 아직 한국에는 인간애 넘치는 사람

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에 감동하고 산다는 것이다.


내게 도움을 줬던 그분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셨으리라.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 나눈 채 헤어진 

게 조금 섭섭하지만 세 명의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으로 나는 알았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애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정이 많은 민족, 인간미 넘치는 민족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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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선풍기에 대한 가족의 애착

 

내겐 아들이 두 명 있다. 올해 32번째 생일을

치른 아들과 현재 한국 X대 서머스쿨 한국어

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국을 방문 중인

아들. 아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문화를 제대로 체험하고 왔으면

생각하는데 이곳 대학과는 달리 숙제가 많아 시간도

없고 다들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한국을 간지라 한국

여행은 경제적으로 부담되어 포기한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한국어라고는 감사합니다 와 맥주 그리고

밖에 모르는 아들 고생 상당히 하는 모양이야. 선풍기

이야기가 아들 이야기로 변한 것 같군. 이럴 때 한국에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고 하지.

 

첫 아들이 9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던 게. 한국의

여름은 정말 덥지. 그때 아들은 노모 집에서 처음 선풍기를 봤다. 엄청나게 신기한 모양

이었다. 20년이 넘는 시절 네덜란드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은 없었으니까. 한국의 차에 필수

적인 에어컨이 이곳에 소개된 것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0년쯤 되었을까. 같은

거리에 사는 어떤 부부가 한국차를 샀다고 내게 자랑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차에 에어컨도

있다는 말을 내가 들었던 것도. 그러니 내가 이곳에 와서 에어컨이 있는 차를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난 사람이 그분이다. 하여튼 신기하게 돌아가는 선풍기에 반한 아들이 한국에서

선풍기 한 대 사자고 했다. 선풍기 실상 북유럽에선 그리 필요치 않다. 한국처럼 더운 여름

날씨가 있는 날은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고 북유럽에서는 이런 물품을 사치품으로 여겨 잘

사지도 않는다.  하나, 아들이 갖고 싶어하기도 하고 네덜란드에는 없는 선풍기 가지고 가서

자랑도 하고 싶은 마음에 선풍기를 네덜란드 집으로 가져왔다. 그동안 이 선풍기는 큰아들

방에 있다가 작은아들 방에도 지내다가 어느덧 23년이라는 세월을 우리 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런 고물 선풍기가 이제는 목을 다쳤다. 작동도 회전도 잘 되는데 똑바로 서 있질 못해.

나처럼 나이가 들어 고개를 잘 들지 못하게 되었어.

 

 

 

 

며칠 전부터 갑자기 기온이 30도가 넘는 바람에 올해 처음으로 이 선풍기를 꺼내 바라보며

이젠 이 선풍기 작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가족에게 말했다.

우리 집 선풍기 이제 다 됐어. 내버려야 하겠다.”

식구들이 모두 반대다. 선풍기 목만 다쳤지 바람도 시원하고 작동도 잘되는데 내버리긴 왜

내버리느냐고. 하긴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지. 하지만 요즘은 이곳에도 디자인 멋진 선풍기도

많고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 고물 선풍기는 그만 재활용센터로 보내고 싶다. 고장 난

제품 우리 집 남자들 잘도 고치는데 이 선풍긴 모두 고치려 생각조차 않는다. 재활용센터로

보내면 누군가가 고치거나 고치지 못하면 폐품으로 처리하겠지.

 

 

 

 

우리 집 무궁화도 배롱나무도 모두 잘 자라줘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올해는 그냥 이 고물 선풍기 사용하고 내년에 다시 생각하라는 가족의 말처럼 이 선풍기는

올해는 우리와 함께 지내겠지. 하지만 버리기엔 조금 아까운 선풍기지만 내년엔 정들었던 선풍기

우리 집을 떠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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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행동과 사상이 보장되는 곳
,

그곳이 진정한 고향

가끔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원할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 내 블로그에는 센세이션 기사나
연예인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술정보와 여행정보
또는 단순히 글을 읽고자 찾는 독자들이 대다수다
. 헌데
간혹 블로그 방문자 중 외국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
. 방문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외국생활이
한국생활보다 편리한가
?”. 혹은 외국생활이 한국생활보다
좋은 이유는 어떤 것들일까
?”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게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를
.

내가 또 한 번 한국이냐 외국생활이냐? 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예전 선택과는 상관없이) 나는 아마도 외국생활을 선택할 것 같다. 외국생활
특히 북유럽 생활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유
때문이다. 사상의 자유, 행동의 자유,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아도 소외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
. 아나키스트건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다 하더라도
타인으로부터 사상이나 행동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삶에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 다른 사람의 생에는 이 사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런 자유가 아주 중요하다
. 그래서 나는 사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다시 선택할 것 같다
.

한국생활보다 외국생활을 택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이곳에선 척할 필요가 없다. 지식
있는 척할 필요 없고 부자처럼 행동할 필요 없고 나이 든 사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으며 젊거나
나이가 들거나 입고 싶은 옷 입고 살면 그만이고 한국에선 젊을 때나 하는 짓이라고 수군거릴
그런 일도 타인의 눈총받을 필요없이 행할 수 있다
.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살면 되는 곳이 이곳이다
.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니
정신적으로 아주 편안하다
.



간혹 친구들이 묻는다.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으니 다시 한국에 가서 생활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한국을 여행하며 한국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제대로 알고
싶다고
. 그러나 한국에서 영원히 생활한다는 것은 이제 못할 것 같다고. 아직도 무슨 일을 하든
통제받는 느낌이 드는 곳에선 못 살 것 같다
.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에 주위 사람들로
부터 제재받는 일은 이제 원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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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의 추운 겨울 지내기,

스웨터 하나 더 입기.


처음 네덜란드에 살면서 놀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

첫째로 기차가 지나가면 마치 방울이 딸랑일 때와
같은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들리면 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차들이 전부 모터를
끄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다
. 기차가
한 대가 지나가든 두 대가 지나가든 모두 자동차
모터를 끈다
. 그리고 기다린다. 모터를 끄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는 모습들이었다
. 이건 연료비를
절약한다는 뜻도 되지만 대기오염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는 뜻도 된다
.

둘째로 놀란 점은 나보다 몸집이
두 배나 큰 사람들이 아주 작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모습이다
. 부자건 부자가 아니건 모두 소형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 자동차는 단지 교통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 그리고

세 번째로 놀란 것은 이곳 사람들의 겨울을 지내는 방법
.

네덜란드인들이 근검절약하고 구두쇠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농담 중에 네덜란드인들은
이웃으로부터 초대를 받으면 동생도 데리고 간다고 한다
. 공짜니까. 그만큼 이곳 사람이
구두쇠라는 것이다
.

네덜란드도 겨울엔 우리나라만큼 춥다. 그런데 그 추운 겨울에도 응접실 온도를 18도 이상 올려
놓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 나처럼 추위 잘 타는 사람은 그런 친구 집을 방문하면 아예 스웨터를
몇 개 껴입고 간다
. 추워 얼굴이 파랗게 변한 사람을 보며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던 적도
있다
. 추운데 떨지 말고 실내 온도를 좀 높이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당황했고 한국의 온돌방이 그리웠을 때는 결혼 초 시댁을 방문했을
때 침실에 난방장치가 없어 겨울이 두려웠을 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 아직도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공부방이 아니면 침실에 난방을 켜는 사람이 거의 없다
. 난방은커녕 그 추운 겨울에 창문도 열고 잔다.


네덜란드 어촌 볼렌담의 전형적인 집

언젠가 친구에게 너희는 추위 안 타느냐고 물은적이 있다. 자기들도 추위를 탄단다. 추운데 왜 응접실
온도를 이렇게 낮게 하고 사느냐고 물었다
. 그때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친구야, 가스비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아느냐?”

추우면 스웨터 하나 더 껴입으면 돼.”

이것이 이곳 사람들의 추운 겨울 지내는 방법이다. 우둔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우둔한 방법이다. 하나
네덜란드인들의 겨울 지내는 방법이 우둔하다고 생각하던 나도 지금은 이곳 사람처럼 아주 우둔하게 산다
.
추우면 스웨터 하나 더 입고 감기가 들어도 침실에 난방은 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코냑 한 잔 마시고 이불
뒤집어쓰고 자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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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의 횡단보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우선적일까
아니면 주행자가 우선적일까
?

한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 중에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선 문제가 없지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선
보행자가 사고를 각오하고 건너야 할 만큼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위험스러워 보였다
. 설마 모든 운전자들이
사람보다 차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 그러나
주행자의 아주 기본적인 또한
, 당연한 일인, 차가 보행자를
위해 횡단보도에서 정지해야 한다는 점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유럽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운전자들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 뭘까?
그것은 차보다 사람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마치 죽음을 각오하고 건너야 하는 것 같았다
. 버스도 택시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보행자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구 뛰어간다.
 
왜 그렇게 해야 하나?
누구를 위해서 횡단보도가 만들어졌지.

 

유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반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행자는
100
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보행자는 항상 모든 교통수단으로부터 보호받고 받아야 한다고
보행자나 주행자는 생각하고 있고 실행된다
. 이것은 운전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차보다 사람의
목숨이 우선적이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 주행자는 횡단보도에서 서 있는 보행자를 보면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가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도록 차를 정지해야 한다
. 보행자는 한국에서처럼 뛰어갈
필요가 없다
.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는 보행자로서 권리가 있고 주행자는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주행자가 횡단보도 정지선에 정지해야 한다는 것은 횡단보도에서는 무조건 사람이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도 이점에 대해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지켜지는 것이다.

 

처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누군가가 차를 멈출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운전자들은
보행자가 서 있건 말건 아랑곳없이 달린다
. 참다못해 네덜란드에서 하던 식으로 횡단보도를 건넸다. 욕먹을
각오하고
. 차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는 일이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사람들
, 마치 자신이 행한 일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사람들 누구 하나
미안하다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 권리와 의무가 뒤바뀐 듯했다.

 

운전자의 가장 기초적인 상식과 보행자의 권리가 외면되는 한국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아직은 차가 멈추기를
기다리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에게 화를 내는 운전자에게 미소와 손을 흔들지만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를 일
. 다음번엔 나도 화내는 사람에게 같이 화를 내며 한국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지나 않을지 벌써
걱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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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들은 결혼 12.5주년, 25주년이 되면
제법 큰 결혼기념일 파티를 엽니다
.

결혼 50주년, 60주년은 더 성대히 치러지기도
하지만 결혼을 늦게 하는 이곳 사람들에겐

50, 60주년 결혼기념일 파티는 이제 보기 드문
행사로 되었지요
. 이 결혼기념일 파티에
간혹
특별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 그것은 결혼식에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파티 때 입는 모습이랍니다
.
결혼 전 간직하던 날씬한 몸매는 사라져 제대로
맞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바탕 웃으며 결혼식을
하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즐기기도 하지요
.
그 드레스를 입다가 몸에 맞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

 

오늘은 문득 장롱 속에 잠들고 있는 제 한복을 바라보며
전통혼례식은 올리지 못했으나 웨딩드레스와 한복을 입었던 결혼식이 생각나기도 하고
성스드라마를 보면서 눈여겨본 것이 의상이라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았던 장롱 속의
제 한복에 한층 눈길이 간 것이지요
. 한국을 방문하고 이곳 친척들에게 한복을 선물 줬던
일이 생각납니다
. 한복을 선물 받고 과연 좋아할까라는 의심도 했지만
막상 한복이 들어
있는 제 선물보따리를 풀자마자 환호성을 올리던 조카
, 시누이, 동서의 모습에
기뻤지요.
꼬맹이던 조카, 그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조카는 단지 숙모가

선물을 줬다는 기쁨에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서 자랑도 했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조카는 그 한복을 간직하고 있지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복 입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양의상보다 활동하기가

불편해서 선뜻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쁜 옷을 왜 감춰두고만 있느냐는

친구의 성화에도 아랑곳없이. 주인이 찾아와 주기만 기다리던 한복은 오늘도 예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주인에게 원망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간절곶에서
 

문득 이 한복을 바라보면서 , 내가 너무 오랫동안 한국인임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네덜란드어를 찾으려고 사전을 보는 게 아니라 한국어가 빨리 생각나지 않아

한국어 사전을 찾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힙니다. 장롱 속 제 한복처럼 한국어도 그렇게

잊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 아름다운 한복을 종종 입어봐야겠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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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말하는 가정교육이란

외국생활을 하면서 많이 공감하고 놀라는
일이 있다면 이곳 사람들의 가정교육이다
.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남들보다 잘산다는

뜻이었고 그것 또한 대단한 일인 것처럼
자랑하고 살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이곳
사람들의 가정교육을 보면서 느낀다
.

 

노모가 네덜란드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네덜란드에서 삼 개월을 지내면서 노모는
딸보다
젊은 이곳 여성들의 주름살 또한,
그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들의
태도에도 놀랐지만
가장 놀랐던 것은 젊은
여성들의 손이었던 것 같다
. 실지로 네덜란드 삼십대 중반 여성의
손이 60
다 되어가는 내 손보다 더 거친 사람이 많다
. 일을 할 때 장갑을 잘 끼지도 않을

뿐더러 이곳 여성들은 남자 못지않게 하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다. 겨우 전구 정도
갈아 끼울 줄
아는 나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집안 페인트칠, 정원 가꾸기,
도배하기는 고사하고
어릴 때부터 집안청소, 설거지 돕기는 가족의 일원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
, 의무고 이것이
중요한 가정교육이라 네덜란드인들은 생각한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의 말로는 소위 우리나라

잘 사는 집안의 자식들은 아직도 집안청소 같은 것을 모르고 산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그런 식으로 성장했고 또 그런 가정교육이 자식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나 이곳에 살면서 네덜란드 부모들의 가정교육을 보고 노모의 가정교육이 옳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여운 자식 매 한대 더 때린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을
나의 노모는 잘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이곳 대학생들이 호프집이나 레스토랑에서 그릇을 씻고 추운 겨울 토요일 재래시장에서

채소나 빵을 파는 일, 자기 집이나 초대받은 집에서 식사한 후 그릇을 치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식사를 마친 뒤 빈 그릇도 치우지도 않던 한국에서 방문한 친척으로

딸과 말다툼까지 했다는 친구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에서 소위 대학에 다니는 딸과

스위스 친구 집을 방문한 친구 언니 딸은 식사가 끝나고 나서 친구의 딸과 아들이 상을 치우고

부엌일을 하는 것을 보고도 도울 생각도 하지 않고 부엌일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어느 정도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절대 이런 일

하지 않죠. 내 집이거나 남의 집이거나 어른보다 먼저 일어나 상을 치우는 일은 어른들에 대한

예의고 초대한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들 생각해요. 실상 나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공부가
제일 중요하고 일등만 하면 모든 세상 일이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했고 그것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인들은 학교성적보다는 가정교육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학교성적도 중요하지만 실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내 부모처럼
 
손이 더러워진다.”거나아직 그런 일 안 해도 된다.”라고

네덜란드 부모들은 말하지 않아요
.

 


글을 보고 가정교육과 공부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

우리나라 가정교육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상 우리는 이런 실리적인 가정교육보다는 공부,
학교성적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아직도 나의 부모처럼 공부하는 자식이 안쓰러워서 혹은

귀여운 자식의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먼저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일은 결코 자식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내 손보다 더 험한 손을 가진 때로는 마치 중노동 하는 사람의 손을 가진
젊은 여성들
,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척척 해내는 그들의 손을 보면 아무것도 잘할 줄 모르는
내가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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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외국생활이
편해서 좋을 것 같다는 친구

 

한국을 방문하면 간혹 친구들이 나의 외국생활에
대해 말해요
.

너는 외국에서 생활하니 좋겠다.” 아니면 낯선 땅에서
생활한다고 고생 많이 하겠다
.”라는

두 종류의 말에 다 수긍이 가고 실상 친구들의 말처럼
한때는 그렇게 느끼고 생활했어요
.

외국에서 생활하니 좋겠다.”라고 말하는 친구 말 속에는

 

외국에는 고부갈등이 없어 좋을 것 같다.

아이 교육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친지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생활해도 된다.”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정말 이곳엔 고부갈등이 없을까?

시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 외국생활에서 제일 부러웠던 게
시어머니를
둔 친구였다.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우리나라 고부간의
갈등을 듣고 본 적이 있지만
낯 서른 외국생활에 시어머니가 생활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살아가면서
이곳에도 알게 모르게 고부간의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그런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80년대 까지만 해도
네덜란드는 딸이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했다
.

 

 네덜란드에도 외아들을 둔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강한 독점욕, 자신의 생활방식을
강요하며 무조건 며느리가 따라와 주기를 원하는 시어머니로 고부간의 싸움이 일어난다
.
하나 고부갈등이 우리나라처럼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부갈등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의무와 책임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 이곳 며느리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시어머니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표시를 한다
. 또한, 네덜란드 노인복지 제도, 정책으로 우리나라처럼
자식에게 기대어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없어 시부모들도 며느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 어릴 때부터 준다.”라는 것과 빌려준다.”라는 경계선이 명백한 이곳
사람들의 교육방식으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한다거나 부모의 유산을 크게 기대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부모들 또한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을 원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고부갈등은 예전보다 더 심각하진 않는 것 같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듯하나 생각건대 네덜란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친밀한 것 같다. 서로 의무와 권리를 존중하고 인정함으로 이런
안정된
고부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선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을 많이 의식하며 생활하죠. 서양의 가족관념이란
직계가족을
말하는 것이며 친척들은 다른 친척의 개인생활에 왈가왈부하지 않고 사촌과
왕래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이곳 친척의 의미는 미미해요.
설령 친척이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왕래를 원하지 않으면 왕래하지
않으면 되니 친척에 대해 크게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
. 이런 점은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겉치레 인사라도 챙겨야 하는 우리들의 생활보단 훨씬
편하고 차라리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서로서로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왕래는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곳의 친척에
대한 관념은 때로는 친척들에게 지나친 사생활 간섭을 받는 우리나라 가족관계보단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생각된다
.

 


친구들은 서양에서 생활하면 아주 편한 것으로 생각들 하더군요
. 서양생활과 한국생활을
비교하면
살아가는데 우리나라가  편한 점도 많이 있어요. 그러나 어디에서 생활하든 장단점은
있겠지만
타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지 않고 살아도
인정받을 수 있고
,
자기 주관대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 생활은 친구 말처럼 편하고
또한 이것이 외국생활과 한국생활의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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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자전거 나라라면 단연 네덜란드이지요
.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네덜란드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이용하는 것이 이 자전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자전거
증명서를 받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이곳 교통법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아주 보호하고 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를 자전거 앞과 뒤에

태우고 싱싱 거리며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부모들,
비가 오는 날 장바구니를 싣고 한 손엔
우산마저 든 채
자전거를 타는 마치 곡예사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땐
그저 신기하게만 여겨진다
.


 



델프트 시청사앞에 주차한 자전거.
 


다인승 자전거.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자전건데 한 번 타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네이메헌 자전거 박물관(Velorama)앞에 걸려 있던 자전거입니다.


자전거 루트를 알려주고 있네요.
 


레이던 대학교앞 나무위에 걸려있는 자전거.
자전거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네요


레이던에 있던 렘브란트 자전거주차보관대.


레이던 역 옆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식물원 호르투스 보타니쿠스 앞을 장식하던 박피츠.

 

이곳에서는 박피츠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화물자전거 혹은 운송자전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교통이 복잡한 도시에서 아주 인기있는 자전거이고 암스테르담과 같이 큰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아이와 애완동물을 태워 시장을 가기도 하고 주차하는데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 아이들이 있는
도시인들에게 아주 유용하고 인기있는 자전거입니다
.


암스테르담 등 대 도시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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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아들에게 제일 미안했던 날

 

며칠 전 큰아들 생일날이었다.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를
하는 바람에 늦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역시 컴퓨터를 켜는 일
.
완전 블로그 중독에
걸린 엄마의 모습이다.
토끼 눈같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한 잔의 커피와
웹 서핑을 한 뒤
그날 할 일을 메모지에 적는 순간
내 눈에 보이던 달력에 그려진 빨간 마크
.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약속이 있는 날인가?


하며 달력을 쳐다보는 순간 그날이 아들의 생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비록 성인이 된 아들이지만 아직 한 번도 아들 아니 가족의
생일을 잊어본 적이 없는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가족에 대해 등한시하게 된 것 같다
.

헐레벌떡 문자를 보내고 문자만으로는 나의 미안함을 제대로 표시할 수 없어 다니는 회사로

전화를 걸어

“X야 생일 축하한다.”라고 말했더니

생일?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대단할 것도 없는데.” 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일 아닌

날이지만 아들의 생일을 잊어버린 나는 엄마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오랫동안의 외국 생활에 모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나에게 블로그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지만 아들의 생일마저 잊어버린 채 블로그에 열중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도가 지나친 것 같다. 몇 달 전부터 혼자 생활하는 아들의 집에 카드와 꽃을 가져가

장식을 해놓고 돌아서면서 예전 내 생일을 위해 새벽부터 미역국을 끓이던 노모의 모습이 잠시

스쳐갔다.

만일 노모가 내 생일을 잊었다면 나는 노모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생일날 미역국은 끓이지 않지만 생일엔 가족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즐기는 날이다. 유난히 삼겹살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삼겹살도 준비하고 저녁엔 푸짐한
생일상을 마련했지만 미안한 마음은 며칠을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생일을 잊어버려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오히려 나의 등을 두드리며


엄마, 블로그 운영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도 생각해야지.

취미가 지나치면 득보다는 해가 많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이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들의 말 또한 백번 옳은 줄도 알지만 이 글을 올리면서

나는 아마 오늘도 또다시 새벽이 되도록 컴퓨터에 앉아 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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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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