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 병을 앓던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


2년전 막내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었다.
에미의 나라, 한국이라는것을 조금이나마 이해시키고
이제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피가 섞인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서
..
어릴때 더러는 갔던 엄마의 모국과 성인이 된 아들이 보는 한국은 옛날 여름방학때 할머니집에
모기들로 잠을 설치던
, 무척이나  더운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이있는 청계천다리를 같이 거닐면서  환성아닌 환성을 지르고 한강을 내려다 보고
밤야경이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 남산타워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허름한 한식점에서
먹었던 그 음식들을 너무도 좋아하던 막내와 제주도를 방문했었다
.
그때 문득 떠오르던 제주도 사진작가 김영갑의 두모악.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두모악을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그의 포토에세이
그섬에 내가 있있네를 구입했었다.


[저자: 김영갑, 출판사: Human & Books]

사랑하는이의 손을 잡아볼수도, 가고싶은곳에 휘적거리며 갈수도 없이,
오직 눈빛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하는, 풀지도 풀어지지 않는 사슬에 얽매여 찍은
그의 사진들을 보았던 어느날 내 눈앞에 펼쳐진 신문에 또 하나의 독일 미술가의 죽음을 보았다
.
사진작가 김영갑씨와 같은 병을 앓고있던 유명한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요르그 임멘도르프.
60년대 아주 유토피아적이고 좌파사상적인 그림을 그리던

독일미술가, 조각가로 알려진 그의 작품에는 정치적인 색채감을 많이 발견할수있다.
예술가의 사회적인 개입, 참여, 이런것에 대한 표현이 예술가의 근본적인 임무라고
생각하고 표현하며 또한 이영역에서 그는 세계최고의 미술가라고 유럽에서는 알려져있다.
이 화가는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이나 이야기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지만 독자들에게는
금방 알아볼수있는, 흔히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그런 주제인것이다.
권력의 남용, 차별, 굶주림, 전쟁등..
이런 주제들은 그가 성장한 분단된 독일의 현실, 2차대전이후의 독일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그가 살고있던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곳에서나
발생하고 또한 현재진행중인 그런 문제인것이다.
하여 그의 작품들이 더욱 더 많은이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한것같다.
그의 사실적이고 소수집단의 엘리트를 위한 작품이 아닌 모든 대중, 서민이 참여하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원했던 화가이고 보면 이점에서 그는 그가 원하던
그림을 그린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Hoert auf zu malen, 1966, Van Abbemuseum, 아인트호벤, 네델란드)

화가는 이작품을 통해 당시 아카데미식 교육과 이시절 유행하기 시작한 팝아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말해주고 있다.
"Hoert auf zu malen - Stop with Painting"에서 표현하고자 하는것은
예술가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책임이나 의무감, 현실에 당면한 주제들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는것이 생산성에 기여하는 작품보다 더 중요한것임을
표현하고자 하는것이다.
70년대초 독일화단에서는 화가 임멘도르프와 몇몇 유명한 화가들이 새로운 독일미술의
길을 개척했다.
소위 신표현주의(Neo- Expressionism)라는...


(Kanonel, 2005, De Hallen, 독일)

(De Rake, Gemeentemuseum, Den Haag, 헤이그, 네델란드)

무척이나 거칠고 어그레시브한 그림들은 추상파나 내면적인 지적그림들에 지친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쟝느의 그림에 주목하게 되는것이다.
그들의 화폭에는 파시즘에 대한 분노, 질서정연한 사회체제에 대한 반항등을 많이
발견할수가 있는것같다.
그당시 미술계에 유행하던 개념주의와 미니멀 아트와는 전혀 다른...


(Cafe de Flore, Gesetzestafeln, Kunst im Turm, 독일)

1978년 이태리 좌파화가 Guttuso의 Cafe Greco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연속작품
"Cafe Deutschland- 카페 도이치란드"의 그림들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독일사회의
문화적, 정치적인물들로서 마치 그의 개인적 보고서처럼 그가 만난 일련의 예술가나
드당시 정치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코멘트라고 보아진다.
작품주제가 그렇듯이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 서독의 자본주의의 허구, 나찌정권에 대한 분노등...


(Van Abbemuseum/반 아베미술관)
미술관입구에 서있는 Honore de Balzac/발자크의 동상, 오귀스트 로댕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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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종교가 현대미술에 미친 영적정신이라는 전시회를 보고

 
Nieuw kerk, Amsterdam

현대인에게 종교는 얼마나 중요한것이고 종교가 현대미술가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아윈의 진화론을 교육받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때로는 종교가 우리생활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낄때가 있는것같다.
카토릭신앙과 현대미술은 같은길을 갈수가 없다고 한때 서구사회에서는 거론되기도 했다.
신앙이 서구인들의 생활 그자체였던 그옛날부터 소위 우리가 말하는 현대미술이 탄생된 시절까지도...
종교는 과거를 말하고 모던아트는 미래를 지향함이 그 이유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공사로 소장중인 작품들 - 절대주의의 창시자 - 미술계에서는 이것을 두고
Suprematisme(수프레마티즘 혹은 쉬프레마티즘)이라고 부르지요 - 라고 불리우는 카지미어 말레비치,
네델란드 현대미술의 대가 몬드리안 그리고 샤갈, 클레, 칸딘스키, 크라인, 프란시스 베이컨등 대가들의 종교에
관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던 암스테르담 nieuwe kerk(뉴이어 케크/새성당)에서 본 20세기 거장들의 그림속에는
종교와 현대인의 삶,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볼수가 있었지요.
때로는 전통을 아주 중요시하고 더러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있는 네델란드에서 이런 작품들 그것도 보통
미술관이 아닌 몇백년의 전통을 가진 오래된 성당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는것, 가질수있다는것은 더치인이 아니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실. 올해는 다아윈의 탄생을 맞아 다아윈에 대한 학술세미나, 축제등이 많이있고
그에따른 다아윈의 진화론에 대한 많은 종교인들의 반대의론들도 있지만 말레비치의 그림을 성당에서 감상할수
있었다는것은
나에게는 아주 깊은 의미를 주기도 했어요.

카지미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Kazimir Malevitj, 1878 - 1935]


Kazimir Malevich, Hieratic Suprematist Cross, 1922, Oil on Canvas, Stedelijk Museum, Amsterdam

키에프에서 태어나 1935년 레닌그라드(세인트 페터스부르그)에서 인생을 맞친 폴란드태생의 부모를 두고있는
미술가, 디자인으로 알려진 예술가.
1893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Kursk로 이사하여 다른미술가와 교제하며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찾고자
포비즘과 프리미티비즘에 접근하기도 했다.
1912년경의 말레비치의 작품속에서는 쿠비즘을 찾을수도 있다고...

Kazimir Malevih, Marc Shagall, Rabbi met wetsrol, 1930, Stedelijk Museum, Amsterdam

1910 - 1920년 프랑스에서 입체파와 미래주의파와 친분을 나누기도 하던 그는 이시기 색채로 가득한 화폭의 힘에의해
자아의식에 눈을 뜨게된다. 그가 원했던것은 미술에서의 물체에 대한 완전해방. 형식과 색채는 독립적인 성분이고
이형식과 색채를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서 귀착시키지 않는다고한다. 1911년 파리로 간 그는 기하학적인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이로 인하여 새로운 - 눈에 나타나지 않는 스타일, 어쩌면 공허하게조차 느껴지는 -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가 1913년에 그렸다는 입체주의 스타일의 그림, 흰바탕에 검정사각형, 이그림이 그의
절대주의로 향하는 길이된다. 단순하고 자로줄을 그은것같은, 순수한 색채.
그가 말하는 절대주의. 그의 절대주의의 세계가 시작된것이다.
예술이라는것은 새로운 형식을 표현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것같다.
그것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거나, 누군가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한다는 그런문제점을 떠나서...


공사중이였던 시립미물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말레비치 소장품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는 소련을 제외하고는 말레비치의 작품을 제일 많이 소장하고있는 미술관이다.
장장 68개의 작품들을...
대부분의 이작품들은 50년대 미술관이 구입한 작품들로서 이중에서 몇개의 작품들이 부당한 경로로 인하여
이미술관이 소장하게 되였다. 이로인하여 시립미술관과 말레비치 유족들사이에는 근 4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법정투쟁을 하였으나 2008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5점의 작품들을 유족과의 협의로
유족들에게 되돌아갔다.  

 


새성당과 암스테르담 관광카드출처: www. amsterdam.com



제가 사용하고있는 외규장각 도서환수라는 위젯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읍니다.
부당하게 빼앗긴 우리들의 문화유산. 우리들의 과거, 역사가 숨겨져있는 이 문화유산들을 이제는 당당하게
되찾아야할때라고 생각되는군요. 의무가 있으면 권리도 있는법.
우리들의 유산을 우리들이 찾는권리 이젠 행사할때가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분들이 블로그를 사용하고 계시는지 그수는 정확하게 알수없어나 만일 이블로그에
이런 "문화유산 되찾기캠페인" 위젯을 단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입니다.
소리없는 시위지만 언젠가는 이시위가 바다를 넘고 우주를 한바퀴쯤 돌아서 우리들의 문화유산이 되돌아
오는날이 있지않을까 생각되네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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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2008년 헤이그시립미술관 루시안 프로이드의 전시회를 보고

헤이그시립미술관에서 루시언 프로이드의 전시회를 보고왔다.
이화가의 작품을 전시회를 통해 보는것이 아주 어렵다는것을 신문에 본것같아 서둘러 다녀온 전시회.
기차를 타고 헤이그까지 도착하니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꽤 심하게 불었다.
그저 그런 바람이 아니라 바닷바람, 소금냄새가 풍기는 그런 냄새.
피카소작품들과 같이 전시를 하고있었으나 이 피카소의 작품들은 바르세로나 피카소미술관을
다녀온지라 대가의 작품은 뒤로하고 칼 아플의 풍경화 몇점을 보고는 이분을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꽤나 많은 독일차들이 있었던게 이분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하여 이곳까지 온것이다.


(헤이그시립미술관)

루시안 프로이드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또한 니체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연인이였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 Salome)와도 교분이 있던 지그문드 프로이드의 손자다.
1922년 베를린에서 출생하여 30년대에 독일 나찌정권을 피해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국적이 영국으로 되여있다.


(Sleeping girl, 1979 - 8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Head from girl, 1975 - 7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1954년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벤 니컬슨(Ben Nicholson)과 함께 베니스의 비엔나레에
영국대표로 참가한 이후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50년대 후기 루시안 프로이드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돼지털로 만든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또한 이것이 그의 그림에 큰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지며 이후 그의 모델들도 점점 뚱뚱해지고
그와 함께 이시절 빛과 그림자 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 자주 접할수있는 테마는 주변의 인물들. 
친구,  이웃,  가족 혹은 그의 연인. 
이 미술가는 그의 모델에 지독하다고 할만큼 요구가 많다고 알려진다.
주변환경이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는게 화가의 생각이므로 그가 모델의
어느 부분을 화폭에 담지않더라도 모델은 꼼짝도 하지않고
그가 시키는데로 서 있거나 앉아 있어야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Lage Interior, 1981 - 83,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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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가의 책임은 이것을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한다.
마치 개가 냄새를 맞고 본능적으로 먹이를 먹어치우듯이".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들의 초상화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대인의 두려움, 고독, 분노와 질투로 뒤얷힌 현대인의 초상화, 우리들의 초상화.



헤이그시립미술관(Gemeentemuseum Den Haag)

19세기 건축스타일로 유명한 네델란드 건축가 H.P. Berlage
(Hendrik Petrus Berlage/
헨드릭 페트루스 베르라게) 의해 건축된 미술관으로서
1935
공식적으로 관객들에게 문을 열었다.
베르라게는 미술관을 그림을 감상하는 미술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일종의 휴식처같은 역활을 하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의자라던지 불필요한 데코레이션을 없애고
그림을 감상하고 휴식하는 현대인의 정서의 휴식처로.
건물이 그의 중요한 최후의작품이다
  미술관은 많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세계에서 제일 많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빅토리 우기 부기(Victory Boogie Woogie) 이곳에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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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