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의 베네치아,
황금시대의 상징인 암스테르담 운하

 

네덜란드 특히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무엇을 구경하기 원할까
?

미술관광장에 있는 미술관들,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르라헤의 건물이 있는 담 광장
,
아니면
세계에서 제일 면적이 적은 집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집을 구경하고자
 이곳을
방문할까?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암스테르담은
위에 언급한 것들로도 유명하지만
관광객이 보고
감탄하는 것 중에는 암스테르담의 명물인 암스테르담 시를
둘러싼 운하일 것이다
.

1600년대부터 인구의 증가로 점차 운하를 개발하기
시작한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현재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문화유산으로 암스테르담의 명물이 되었다
.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예정인 고리 혹은 허리띠 모양의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운하뿐만 아니라 운하에 떠있는 물 위의 집, 운하주변의 고대 건축물 등으로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이 한 번은 꼭 방문하는 곳으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의
운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이미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국가 문화재로 보호되어 있고 관광객에게
널리 알려진 터라 굳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으로
암스테르담 시가 가진 고유의 모습을 지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가는
베네치아처럼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아닌 관광객의 구경거리밖에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암스테르담은 자유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고
생활하는데 자유는
가장 기본적이고 또한 이것을 중요시하는 이곳 사람들은 운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됨으로
생동감과 활기찬 도시의 모습이 일종의 미술관으로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레익스 뮤지움)


안네 프랑크 하우스가 있는 프린센그락트. 헤런그락트, 케이저그락트와 함께
유명한 암스테르담
3대 운하에 속한다.


물 위의 집. 암스테르담 운하에는 약 2000개의 물 위의 집이 있어요.





델프트에서 본 운하.
네덜란드 운하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 4대 강 사업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러나 수백 년을 두고 물과 싸우면서 운하를 지키고 운하를 건설한 네덜란드 운하와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4대 강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죠. 

 
레이던 시의 운하

 



위트레흐트에서 본 운하

현재 8곳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만일 암스테르담 운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면
9곳의 세계문화유산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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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빛의 화가 베르메르의 고향, 델프트[Delft]

 

 

델프트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베르메르의 고향, 델프트도기로

유명할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왕실과도 아주 깊은 인연이 있는 도시다.

트레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나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작품 또한
기억할것으로 생각된다. 빛의 화가로 불리우는 네덜란드의 거장.

그의 작품들은 매우 서정적이고 그림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수 있는 이웃과 같은 정다움
, 소박함을 보여주고 
무척 여성적인것 같다. 그시절 서민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풍경과 정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듯한 정밀하고 온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색채
.

그래서 그런지 이 델프트의 거리마저도 다정하게 보여졌다. 아담한 집들,
네덜란드에서 쉽게 만나는 운하, 그 물속에 비치는 집들, 황금시대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시청사의 건물
, 거리에서 마주치는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이지만 무척
소박한 도시라는 인상을 주는 도시인것 같다
.
마치 베니스의 산 마르코광장을 연상케 하는 시청광장앞의 비둘기 마저도
다정하게 보여지는것은 이 델프트의 거리 곳곳마다 화가의 흔적을 만날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를일

한달동안 오던 비가 베르메르의 작품속 소녀의 미소처럼 나를 반기던 델프트.

그속에서 잠시 황금시대의 거장 베르메르를 생각했다.


델프트 시청건물, 다른 시청들과는 달리 무척 웅장하고 화려한것 같다.

Vermeer centrum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 왕립미술관(Mauritshuis, Den Haag)
네델란드에서 제일 많은 베르메르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



유럽에서 항상 만나는 성당들. 오래된 건축물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은 대부분 성당인것같다.







델프트시에 있던 풍차. 풍차의 나라라는것을 새삼 느끼기도...

델프트시에서 이 델프트도자기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수없다. 유럽 상류사회에서 무척
유행했던 도자기. 만나는 상점마다 이 청색의 기념품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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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네델란드 황금시대의 거장, 요하네스 퍼메어(1632-1675) 혹은 베르메르(한국어)를 보고


Mauritshuis, Den Haag, 헤이그 왕립미술관

우리는 왜 이분의 작품에 그리 감동하는지.
그의 그림에 비친 이 아련한 여인들의 모습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섬세하고 다정한, 그시절 서민들의
생활을 
표현하는 풍경과 마치 정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듯한 방의 정밀하고 온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색채때문인지...

삼백여년의 세월을 두고 멀리 떨어져있던 이 화가의 작품 두개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나란히 전시되고있다.
우유를 따르는 처녀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인 저울을 가진여인
(Woman holding a Balance/De Dame met Weegschaal)이라는 작품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이 두그림은 17세기 5년동안이나 암스테르담  루레우췌(Rooleeuw)라는 상인의 집에
5년동안
걸려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그의 작품 저울을 가진 여인을 두고 이 화가의 특징을 제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의 그림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이 대가의 그림들은 매우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것 같다.
실지로 그는 그의 생존시 그리 부유하지도 그의 동료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그린 이그림들속에는
종교적이거나
그당시 유행하던 왕실의 그림들이 아닌 보통 일상의 그림들이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친근함을 느낄수가 있다.


Johannes Vermeer, c. 1665, Het Meisje met de parel, Mauritshuis

요하네스 퍼메어 혹은 얀 반 데르 메어 반 델프트(Jan van der Meer van Delft)라고도 하는 그의 그림들은
규격이
그리 크지않으나 매우 사실적인것 같다. 램브란트나 프란스 할스의 그림들과 비교한다면
그들의 그림은 
남성적이고 웅장하고 무언가 짓누르는 감정을 준다면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매우
서정적이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수있는 이웃과 같은 사람들의 그림, 정다움,
소박하고 여성다운것을 나는 느낀다.

아늑한 집안, 어딘가 머리를 대고 소근소근 들릴듯한 아야기마저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상상해보곤했다.


J. Vermeer, 1658, Het straatje, Rijksmuseum

살아생전 약45점의 작품을 남긴 화가의 출생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않고 1675년 델프트에서

생을 마쳤다고
우리들에게 알려져있는 화가.
17세기 바로코풍의 거장인 그를 두고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도 부르기도.. .

이말은 그의 그림기법이 후세인들에게 아주 수수께끼와 같고 그의 생에 대해 잘알려지지 않은것이
이유가 아닌가라고도 한다. 그당시 대가들의 그림의 테마였던 신화나 왕실의 그림이 아닌 일상을 표현하는
그의 작품속에 표현되는 주제, 그림속의 공간과 그가 사용하는 빛들을 두고 그를 빛의 대가라고 일부에서는
말하기도...

델프트의 풍경속에 나타나는 집의 모양, 실내장식, 책을 읽는 남자, 다산다난한 가정사를 표현하는
이그림들속에 수학적인,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림속에 나타나는 완벽한 빛의 사용과 색채는 마치 한장의 사진을 보는것과 같이 정밀하다는게
미술평론가들의 말.


J. Vermeer, 1660, De melkmeid, Rijksmuseum

J. Vermeer, De dame met de weegschaal, Nation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J. Vermeer, 1662, Brief lezende vrouw, Rijksmuseum

이 새개의 작품이 그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가고 있다고 하는 이 그림들은 가정적인 집안풍경,
빛이 주는 온화한 느낌을 우리는 얻을수 있을것같다.
그림이 그림으로서 벽에 결려지는 장식품으로서만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여인의 온화한 모습, 그 색채가 주는
안정감 이런것들로 나는 그의 그림에 눈을 돌릴수가 없는것이다.


헤이그 왕립미술관의 전경
호숫가를 끼고있는 이 미술관은 단지 미술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마치 한폭의 그림같았다.







유용하셨다면 댓글과 추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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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램브란트의 작품 "야경"의 수수께끼가 풀어졌다고 한다.

Rembrandt, De Nachtwacht, 1642, Rijksmuseum, Amsterdam

역사가의 말에 의하면 램브란트의 대작 야경/De Nachtwacht/Night Watch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회지휘, 연령,
이들이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었는지도 발견했다고 전해지고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감상하는 한사람으로 이그림의
주제나 작품이 나에게 어떠한 감동을 주는가에 대한 깊은관심은 있지만 여기에 나타나있는 인물들의 사회적지위나
나이같은것에는 별로 마음에 두고있지 않은지라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발견이 때로는 작품이 주는 신비함, 작품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나라가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것을 때로는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발견을 통하여 그시대 예술가들의 생활,
작품들의 배경을 하나씩 음미해보는 재미도 더러는 있을것 같다.
작년인것 같다. 반 고흐의 그림을 X-Ray로 연구한 결과 그는 같은 화푝에 두번씩이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가난했던, 동생 테오의 재정적지원을 받던 그로서는 이런 물질을 아낄수밖에 없었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영혼이 담긴,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그의 그림들에 더욱 애착을 느끼는지도...


Rembrandt, Hendrickje badend in river, 1655, National Gallery, London

부흥하던 네델란드 식민지시대, 소위 황금시대라는, 17세기 네델란드의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 알려지는 램브란트는
주로 단체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즈이드 홀란드(Zuid-Holland)주 레이든(여기에 네델란드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과가 있고
한국에서 건너온 입양인들이 더러는 이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있어요)
방앗간아들로 태어났다는 화가.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램브란트 할멘스존 반 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램브란트.
마침 풍차가 레인(Rijn)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이름이 Harmen(할멘), 그로인하여 할멘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혀진 램브란트.


네델란드나 스칸디나비아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Johan-son(요한의아들), Peter-son
(페터의아들)등의 이름을 가진이를
많이 만날수있고 직업을 알려주는 Visser(어부), Molenaar,
Molemaker(방앗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자주 접할수 있어요.



1630 -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곳에서 유명하게 되고 미술학교도 세웠다고.
살아생전 약 700여점의 작품과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고 하니 무척이나 생산적이였던 예술가였던것 같다.

그의 재정상의 문제점에는 여러가지 설이많다. 그가 후년에 매우 가난했다는설과 그렇지않다는 반대설.
그러나 후세 그의 그림에 많은 감동을 받고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런 역사적인 분석인 돈과의 관계보다는
그의 그림이 더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야경

램브란트는 1642년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야경을 그렸다.
단체초상화, 그시절 암스테르담시를 보호하던.... 지금까지 알려져있던 이 그림에 나타나는
유명한 대령/Frans Banning Cocq이
이분이 아니라 변호사직위의 전혀 다른가문의 Banninck Cocq고
그림속의 루테넌트인 Willem van Ruytenburch마저도
다른사람이라고 역사가는 말하고있다.
이그림이 야경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가 작품속의 배경이 하도 어두워서 야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으나 실지로 이그림은 어두운 밤이아닌 낮의 배경이였다고도 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속에 자주 만나는 명암, 이빛과 그림자의 강한대조를 만나는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이 명암은
그가 발견한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가장 잘 적용한 화가로 우리세대에 알려져있고 
그는 이것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것 같다.

램브란트는 해외로 여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있다. 그당시 유명했던 이태리 화가들의 작품마저도
보려고 하지않았다는...

네델란드에서도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는지라 굳이 해외로 여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우리들이 만나는 그의 작품속의 주제들이 성경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가족들이다.
부인과 그의 아들 티투스등.


Rembrandt, Het Joodse bruidje, 1664, Rijksmuseum, Amsterdam

램브란트만큼 유명한 반 고흐마저도 "내인생의 십년과 단 10일만의 시간을 바꿀지언정 램브란트의 유태인신부를
볼수만 있다면"
이라고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니 이 대가의 그림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미술학계에서 말하기를 램브란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의 제자들이 그린 작품들을 잘 구분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것은 램브란트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제자들이 학비대신 램브란트의 지시대로 그의그림을 복사하는일을
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이제자들의 그림에 그는 그의 사인을 넣고 작품을 팔았다고 하니 그런일로 미술학계에서는
램브란트의 그림과 제자들의 그림을 더욱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Rijksmuseum/레익스뮤지움, 네델란드 건축가 Cuijpers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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