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한국]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 촌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 촌을 

찾은 것은 영주 부석사로 가는 길이었다. 소수

서원이 1541년에 세워졌다니 우리 조상은 예전

부터 학구열이 대단했던 것 같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소수서원은 

문화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유교

건축물로도 이름 높은 곳이다.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가 1575년 설립되었고 이보다 200여 년 전

 네덜란드에서 제일 오래된 중고등학교가 1342년 

암스테르담에 세워졌다. 학문을 전수하는 지방

사립대학교 역할을 한 소수서원이 50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은 서당

향교, 서원 등 예전 우리나라 교육시설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준다.


안동에서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를 거쳐 영주를 갔다. 기차를 타고 풍기를 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모습이 무척 정겨웠다.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도 

보고 익은 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늘어진 감나무도 보면서 이런 모습이 진정 

한국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서원이 학문을 전수하는 지방사립대학교 구실을 한 곳이라면 선비 촌은 조선 시대 

전통가옥을 복원한 민속마을이다.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선비 촌은 엿을 

어떻게 만드는지 떡 만드는 과정 등을 보여주며 조선 시대의 전통가옥의 모습과 생활상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 이런 민속마을은 여러 곳에 있지만, 영주를 찾는 여행자

라면 소수서원과 함께 옛적 우리 조상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선비 촌도 같이 구경하면 

좋을듯하다.




















선비촌 입구에서 본 모습









우리나라 장독의 모습은 언제나 정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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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국]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지금 안동에는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로 한창이다

민속마을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지임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췄던 우리 조상의 춤 속에는 삶의 애절한 사연이 

있음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모든 것을 소유한 권력층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게 피지배층의 의무라고. 그러나 

그 시절에도 권력층에 대항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회마을의 탈춤이다. 가면을 쓴 사람은 지배자를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 사실은 탈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양반의 코가 비뚤어진 탈과 보기에도 이상한 탈의 모습은 이러한 권력층에 대한 

비웃음이 숨겨져 있다. 현대인보다 더 용감한 조상의 모습을 이곳에서 발견한다. 그들은 탈춤을 

통해, 해학으로 권력에 대항한 것이다.











소원을 적은 쪽지를 저렇게 매달아 놓고 있다.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정겨운 장독의 모습





벌써 들판엔 누런 벼들로 황금 들판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허수아비가 빠질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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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


영남과 호남이 만나는 곳
, 작가 김동리의 소설 역마속의
화개장터는 떠돌이들이 거쳐 가는 장소라 하지 않던가
.
쌍계사를 보고자 하동까지 왔지만 그 유명한 화개장터도
봐야 마땅한 일
.

장이 서는 날이 아니어서 그랬던지 내가 찾아간 그날
화개장터에는 역마살이 낀 여행자의 모습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는 상인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
화개장터를 둘러보기에는
좋은 날이었지만 막걸리 한 잔
걸치는 떠돌이의 모습을 상상하고 찾아간지라 예상외로
한적한 장터 모습에 조금 실망도 했다
. 하나 외국의 재래시장
과는 또 다른 우리나라의 옛 장터 모습을 보면서
옛날
길거리에서 만났던 엿장수의 가위질
, 짐을 머리에 인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며 화개장터를
둘러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지만 그래도 한때는 우리나라
5
대 장터에 속했다는 화개장터에서 시골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으니 나름 즐거운
여행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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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다닐즈음 학교도서관에서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을
읽어본것같다.

기억에 남아있는것은 장터와 허생원.

작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 봉평을 다녀왔다.



9월초에 메밀꽃축제가 있었던것 같았는데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때는

이미 많은 메밀꽃은 지고 간혹 보이던 흰눈송이같은 메밀꽃이 간혹 보일뿐

아직도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던 이곳은 옛날 지게를 지고

장터를 가시던 할아버지와 그할아버지의 입에서 풍기던 텁텁한
막걸리 냄새마저도 떠오르게 해준것 같다
.


 













설치된 문학관에는 이분의 작품세계를 만날수있고
여러개의 산책길도 있었던것 같다. 
이분의 작품세계나 문화마을로 지정된 이곳을 방문하시고 싶은 분들은
 메밀꽃으로 눈이 부실듯한 흰색으로 장식되는
9월에
한번 방문해보는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2008년 한국여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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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과 탑

 해마다 석가탄신일이 다가올때 즈음이면 한국에 계시는 노모에게 전화를 건다.

열심히 절을 찾아가시지는 않는 노모이지만 석가탄신일때만은 우리가족들의

등을 달아주시니 올해도 어떻게 되였는지 하고


시원한 물도 한모금 마시고 오른쪽의 사진은 불영사 영산화상도 입니다.

특별한 종교를 믿는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절이 나에게 주는것은 신앙이라는것을 떠나서

그 주위경관으로  잠시동안이나마 인생사의 모든 잡것을 잃어버리게 해주는

정신의 고향이라 해야할지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때 나보다 한달 먼저 태어났다고 오빠라고 불러줘야하는 사촌과

올케와 함께 불영사를 방문했었다.

한국을 8번이나 일주했다는 사촌, 가는곳마다 설명도 해주고 올케가 준비한

인스턴트 커피와 시원한 배를 차안에서 먹으면서 달리는 차창밖으로 보던
내나라의 경치에 감탄사를 연발할수밖에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라고 했던것 같아요.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더군요.
현혹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버섯

저녁 6시쯤에 종이 울리면 계시는 스님들이 여기에 모인다고....



꽃이 한창이더군요. 집에와서 한국에서 자라는 이나무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기후관계로 여기에서는
좀 다른 백일홍나무가 있더군요. 배양나무라는...
작년에 두그루를 심었는데 저희집꽃도 한 백일쯤 피여요.



스님들이 기르시던 밭에 고추랑, 호박, 옥수수가 주렁주렁 했더군요.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 그림자가 항상 못에 비치므로 불영사라고 불렀다는

(네이버백과사전에 의하면)

가을이라 백일홍이 만발했던 불영사.

백일동안이나 꽃이 피여 백일홍이라고 부른다는 백일홍, 연못의 연꽃들은 이미 지고
없었지만 스님들이 가꾸던 야채밭등을 둘러보면서 그저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귀웃거리며
돌아본  불영사.

지금쯤 연등으로 휘황찬란한 모습을 하고있을 이 불경사가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불영사 일주문

 

 불영사 소재지: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신라때 의상법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지고 있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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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쭈꾸미, 내고향 남쪽바다의 가곡을 연상시켜주는 예술의 도시 통영에서



내고향 남쪽바다라는 가곡이 어디선가 들릴듯한 남쪽바다 통영.
여행하는 사람들의 동기와 목적에는 여러가지가 있을것같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자, 어디론가 꼭 떠나야 한다는 집요한 생각으로
여행을 가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유명하다고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덩달아 가는 이들의 나들이,
자기자신만의 공간을 갖기위해, 자기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이들의 나들이등.

질서와 무질서, 혼란과 평화, 자유와 속박이 공존하는 대 도시가 뿜어내는 뜨거운 입김을 잠시 피하고자
머물고 있던곳의 시외버스터미날에서 버스로 2시간 달려간 통영.
이 거리는 네델란드집에서 차나 기차로 암스테르담 갈 정도의 거리다.
버스터미날에서 구입한 물한명, 짭쫄한 그러나 향수가 흠뻑스며들어있는 새우깡 한봉지를 들고
달리는 버스의 창가에 머리를 들어대고 바라보는 바깥경치도 일품이였다.
허름하고 빈터에다 정류장을 만들어 놓은것같던 버스터미날에 내리는순간 그래도
내 예감이 틀리지는 않았노라고 한숨을 돌렸다.
그것은 어디선가 날라온 짭짤한 소금기가 있는 그런냄새를 맛볼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관광안내소가 있다는 표지말을 보고 사무실을 찾았지만 문이 꼭 닫혀져 있었다.
버스에 내려 지도를 보고있는동안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혼자 여행하느냐고, 어디를 갈것이냐고. 자주 듣던 이야기.
여자 혼자 여행하니 그것도 청바지에 그저 그런 티셔츠를 입고 등에 가방을
맨 중년부인의 모습이 이상한 모양이다.
옛날 혼자서 여행할때도 숙소를 정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던 주인장들의
눈초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숙소까지 도보로 갈려니 숙소가 좀 먼것같아 택시 한대 집어타고 숙소까지 오긴 왔는데 어쩐지 좀...
인터넷으로 찾은 숙소였는데 겉모양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다른 숙소를 찾을수밖에...









2008년은 시인 유치환씨의 100주년해였다.
1908년 한의사의 둘째아들로 태여났다는 청마 유치환, 목사나 장로의 자제들이 대다수였다는
연희전문학교 문과의 그 따분한 분위기가 싫어 그만 뚜쳐나와 동경으로 건너가 허탕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몇해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그는 어릴때는 집안에서 무척 고집세고
성가신 아이라고 나의시집 "청마시선"에 적혀져있다.

이분이 한때는 친일파라는 이름으로 무척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작곡가 윤이상씨와는 또 다른 사상의 시비에 걸렸던 예술가.
한분은 동백림사건으로 공산주의로 몰리고 또 다른 한분은 친일파의 시대의 상자속에 갇히고...

청마 유치환의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에 꽃 같이 숨셨느뇨.

통영에는 참으로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달아공원에서 보는 푸른 바닷가와 섬들, 제승당, 우리나라 최초의
터널이라는 해저터널, 한국의 몽마르트르라고 불리는 달동네 동피랑마을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거리와 그분들의 생가 그리고
활어시장에서 풍기던 고기비릿내 냄새등은 그렇케 쉽게 잊을수 없을것같다.


작곡가 윤이상씨를 추모하기 위하여 해마다 열리는 통영국제음악회가 열리던 통영시민문화회관



유명한 충무김밥에 쭈꾸미로 한끼를 때우고 밤의 별을 헤아리면서 휘돌아다녔던 통영의 야경은
내가슴속에 새겨져 어느새 나의 친구가 되였다.

*** 2008년 한국여행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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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인연

2008년 삼주동안의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서울을 떠나기 몇일전 동대문시장을 둘러봤다.
출출하던 배를 쥐어잡고 동대문시장가  뒷골목의 어느 허름한 한식집에 저녁한끼 해소하러 가던날.

요새는 그럴싸한 레스토랑, 와인과 스테이크같은것을 먹을수있는 멋진 음식점도 많이 생겼지만
실지로 나는 그런곳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시큼시큼한 김치, 시골아낙내 냄새가 풍기는 된장찌개, 아삭아삭 씹는 깍뚜기 그리고 바다를
연상시키는 비릿한 한 조각의 생선 그런것을 더 애정을 느끼므로...


(동해안 어느바닷가에서)

신발벗고 어딘가 들어가는 문화권에서 태어나서, 성장했지만 신을 벗고 음식점에 들어가는것이
귀찮아서 어디 앉아서 먹을만한 식당은 없을까하고 이곳저곳 귀웃거리다 겉모양은 꽤 허름했지만
고등어구이를 먹을수있다는 메뉴판에 이끌려 이 음식점에 들어갔다.

손님도 별로없고 허름한 음식점, 그러나 마치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온것같이 친절하게 맞이해주시던
두 아주머니의 안내로 자리를 잡고 고등어구이를 시키는데 어쩐지 서투른 한국어가 귀에 들어왔다.
두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사진을 찍고있었다.
친구들인가보다. 네명이 다같이 사진을 찍으면 좋을텐데...
"사진 찍어들일까요?"
좀 어리둥절하고 경계하는 눈초리로 날 쳐다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사진 몇장을 찍어주니 자기네들과 자리를 같이하면 어떻케느냐고 정중히 묻는다.

그들은 몇마디의 한국어를 할줄아는, 한국을 참으로 사랑하는 국제문화교류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어도 공부하는 아시아권 나라에서 온 기자들.
캄보디아, 몽골, 필리핀 그리고 베트남의 국영방송에서 기자로 일하는 이웃나라의 사람들이였다.


(서울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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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슬 소주와 맥주잔을 주고 받으며 그들의 식민지시대의 이야기, 볼이 터질만하게 상추를
입속으로 밀어넣으며 주고받던 그들과의 대화, 베트남 하노이 국영방송에서 일한다는 앤이
집에 두고온 어린딸 걱정에 같이 모성애를 느끼기도하던 동대문 시장의 흐름한 음식점.
내년에 꼭 캄보디아를 방문하라는 캄보디아 방송기자 나릿트의 초청 아닌 초청을 받고 글썽거리던
앤의 등을 두드려주며 정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이게 인연이고 우정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던 서울의 밤.






(두개의 상반된 얼굴을 가진 동대문의 어느거리)

삭막하다고만 말하고, 느껴지던 세상에 아직도 우리는 한잔의 술에, 한조각의 삼겹살속에
우리의 인연을 만나고 우정을 나눌수있다니...
이차, 삼차도 같이 하자는 네명의 젊은이들을 뒤로두고 다음날 나릿트의 요청으로 그들이
참석하는 국제문화교류심포지움에 참여하기로 손가락을 걸면서 돌아서던 동대문의 허름한 음식점.
한잔의 소주와 맺은 그들과의 우정.
이 우정으로 나의 서울에서의 밤은 더욱 풍성해진것 같았다.

- 2008년 한국여행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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