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만난 아름다운 꽃들

 

외국에서 생활하면 꽃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만나는 꽃들을 보면 항상 옛날
우리나라에서 봤던
꽃들을 먼저 연상하게 된다
.
비록 이름은 일일이 기억하진 못하지만
꽃들과 함께
담긴 추억 속으로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한다
.



이곳에서는 집집이 특색있게 정원을 가꾸고 정원에서
여러 종류의 꽃을 보는지라 꽃을
감상하려고 일부러
식물원을 찾아가는 일은 드물지만 일본정원을 둘러본 뒤
한 쪽에
마련된 꽃들의 잔치에 잠시 눈을 돌렸다.



 


찬란한 노란색의 옷을 입은 꽃이네요. 열매인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열매는 아닌 것 같고
나무도 고무나무와 좀 비슷한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에 나지 않네요.

 

 

꽃말이 순수, 순결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은 노랑 나리(백합).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는 붓꽃.

일본정원이나 집 정원에 연못을 가진 분들의 집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꽃인 것 같아요. 

 

모란(목단)인 것 같아요.




미나리아재비 과에 속한다는 흰 모란입니다.



 

절세의 미인 양귀비만큼이나 정열적인 색을 지닌 양귀비꽃.

양귀비 과의 한해살이 꽃인 이 양귀비는 이곳 국도 옆 들판에서도 자주 보는 꽃이지만

볼 때마다 중국의 미인 양귀비를 떠올리는 것은 이 꽃이 주는 정열적인 색깔 때문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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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날씨의 변동이 많은 네델란드에서는 햇빛이 조금이라도 내리째이면 기회를 놓일세라 밖으로  나간다.
내일 또 날씨가 어떨지 알수없으므로 기회를 놓칠세라...

그리하여 주말에 살고있는 네델란드 남쪽지방  큰정원을 가진 성의 주인,
개인소장의 정원을 가진이들과 벨기에인의 참가로 아름다운 정원과 성을 관람객에 문을 열였던
성을 찾아나섰다
.

이 성과 정원에서 얻은 이익금은 아르메니아 불우아동에 모두 쓰여진다고 입장료를 낼때

봉사단원 아주머니께서 알려주기도...

주머니가 풍족한 부유한 사람들이 이런 좋은일을 한다는것에 감동을 느끼기도...


실상은 꽃전시회라는 이름아래 이 고성의 문을 열었지만 꽃은 많이 피여있지 않았거나
이미 져버린 꽃들도 많이 있었다.
하나 고성의 문을 연 이유가 불우아동을 돕는다는걸 안다면 꽃이 좀 덜 피였어면 어떠하리...
고성 하나 보는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날

오른쪽에 꽃은 이름이 나를 잊지 마세요/Forget-me-not/더치어로 Vergeet-mij-nietje라는 보라색의 꽃이람니다.
중세기에 기사와 그의 연인이 강가를 거닐다가 연인을 위햐여 꽃을 따던 기사는 강물에 빠지게 되였지요.
이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그는 이 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던져주면서 하는 말이
제발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슬픔과 로맨스의 상징인 이꽃은 유럽의 신부들이 결혼식때 부켓으로 종종 사용하고 있답니다.


 



방문한 성은
17세기 만들어졌다.

주인이 몇번 바뀌기도 했지만 겉모양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하고 때로는 현대미술의

전시회장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세상만사를 잊어버린듯한 예쁜것들.
무엇때문에 그리 갈팡질팡하느냐고 나를 꾸짓어 주던것 같던 아름다운것들...












고성의 연못에 있는 금붕어.
방문한곳의 주변이 대체로 자연보호구역이라 올챙이 보호구역까지 만들어 놓았더군요.
하기야 요새는 올챙이도 점점 살아나갈 장소를 잃고 있는 지경이라...



성이라고 하면 문득 생각나는 귀신이 나오거나
  어쩐지 무서울것만 같은 생각은
이 성의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 내가 흔히 영화에서 본 그런 무시무시한 성이라기 보다는

신록을 알리는 푸른색으로  뒤덮힌,  사람이 숨소리가 들리는 성, 정이 가는 그런 성이였다.
더구나 불우아동을 위해 개인의 집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마음씨도  한층 고맙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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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나?

가끔씩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아이들을 어떤식으로 키우느냐고.
이말은 한국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아니면 서양식, 더치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를 묻는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내주관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데로 아이들을 키운것같다.
그것은 우리아이들은 손님이 우리집을 방문하면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거나,
절하는 대신 hoi/hi라고
말하면서 악수를 청하고 어른이 계시면 술을 안마신다던가,
굳이 고개를 돌려 마신다거나 그런 행동을 하지않는다는 말이다.

어른들 대화에 톡톡 끼여든다고 핀잔받던 우리 노모식의 교육이 아닌  정치나
사회문제도 더러는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씩 같이 마시기도 하며 손님이 왔다가면
기회가 되면 잘 가시라고 인사도 하는...

한국식교육과 더치교육은 어떻게 다를까.
아직까지 여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은 별로 없는것같다.

[사진출처: Freewebs.com]

네델란드에서는 16세가 되면 스쿠터라는걸 탈수가있다.

모터의 용량이 얼만지는 잊어버렸다.
면허증은 물론 필수고.

언젠가 큰아이의 생일이 다가오던 달 아이의 친구들이 제법 왔다갔다한다.
모두 스쿠터를 타고서...
그런걸 살려면 돈이 제법 있어야하는데 하고 아들에게 물어보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선물받은 친구도 있고
집에서 이번 성적이 좋아서 선물을 받은 친구도 있다고한다.
성적이 좋다고 부모들에게 그런 선물도 받나? 공부해서 남주는것도 아닌데?
가끔씩 성적이 좋으면 작은 선물이야(초크렛 한통이나 그저 잔돈 몇푼 저금통에 넣으라고 주기는 하지만
저렇게 비싼선물을 준다는 부모는 내주위에서는 아직 한사람도 못받는데...
내가 좀 짠가?
공부 좀 잘한다고 벌써 스쿠터를 사주면 나중 대학을 졸업하면 뭘 선물하지?

그날도 친구들이 몇명이나 왔다갔다했다.
스쿠터에 한마디쯤은 해주어야도 하기에 예쁘다고도 해주고 실상 나도 여름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할리 데비슨이라는
오트바이를 보면 좀 부럽기는 하더라만은...

저녁밥을 먹는데 아들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감은 좀 잡혔지만 모른체하고 있는데 아이가 스쿠터이야기를 꺼집어낸다.
보통 우리집에선 내가 제일 많이 "No" 라고 말한다.
내가 한번 안된다고 말하면 그냥 툴툴거기다가도 아이들이 할수없이 내가 말하는대로 따라와준다.
고집센 엄마의 기를 꺽을수없으니 할수없다는식으로...
아이들이 어릴때는 내가 안된다라고 이야기해도 원인과 이유를 모르는 남편한테 아이들이 사정하면
앞뒤를 모르는 남편이 "Yes"라고 했다가 더러는 부부싸움도 일어나기도 하고...

아들의 입에서 슬슬 스쿠터 이야기가 나왔다.
비가 올때마다 자전거 타고(여기 학생들은 다 자전거타고 학교를 다녀요. 집앞에
자동차가 있어도 태워다 주는
부모도
타고 갈려고 굳이 애쓰는 학생도 없답니다)
학교를 가니 옷이 다 젖는다.

아니 비맞지말고 사놓은 비옷 입고 가면 되잖아.
자전거타고 바람불고 비오는날은 지각한다.
스쿠터를 타고 학교를 가면 몇분 안걸리는데 자전거는 세배도 넘게 시간이 걸린다.
한 십분만 일찍 일어나면 되지않니?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싱강이를 하는데 남편이 하는말 "스쿠터는 절대 안돼".
우리집에서 이런일은 잘 없는데...
나랑 아들이 놀라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아니 옛날 사진을 보니 아빠도 옛날에 이런 스쿠터타고 다녔던것 같던데 왜 나는 이걸 못 타죠?"
옛날에는 차도 별로 없었고 그걸 교통수단으로 여겼지만 요새는 성능이 너무 좋아져서 위험하다.
"스쿠터는 절대 안돼" 또 다시 못을 박는 남편앞에 불만으로 가득찬 아들.
밥이 채 끝나기전에 윗층으로 올라가버린다.
할수없이 아들을 따라 아들방으로 갈수밖에...
말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하던말도 마저 해야하고 아들을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니...
아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돈이 있는데 그걸로 스쿠터를 사고싶단다.
돈이 좀 부족하니 돈을 좀 빌려달랜다.  나중에 갚을테니...
대신 이자는 못줄것 같다라고...

유로가 되기전이니 2500 당시 네델란드 굴덴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모은돈이 1500굴덴밖에 없다.
나머지 돈을 저축할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스쿠터상점에 가보니 아주 멋진 스쿠터가 있더라.
실상 이렇게 말하는 아들녀석이 좀 장한것 같기도 하고 지돈벌어 지가 사겠다는데
돈을 그저 달라는것도 아니고 빌려달라는데...
약간 머리가 어지러웠던것은 사실이고 이때만큼 맹자의 어머니를 깊이 생각한적도 없었을것같다.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맹자어머니는 이럴때 어떤식으로 아들에게 이야기 했을까 하고...
남편한테 이야기를 해보는수밖에...


[사진출처:Globalpackagegallery.com]

결국은 스쿠터도 사고 돈도 일년만에 받고 이자대신 꽃과 맥주를 받았지만...
그여름 무더운날 파심느라고 흙투성이가 되고 짓눌린 딸기를 따느라  손톱이 마니큐어를
바른것처럼 빨갛게 되면서 
몇년을 벌어논 용돈을 그런식으로 날려버려야 하나 하고 반신반의도 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벌언돈 아이들이 쓰는데 별로 간섭 안하고 아이를 키우는 에미,
굳이 숙제했느냐고 아이들을 쫄쫄 따라다니지도 않는 에미,
그래도 그럭저럭 네델란드에서는 고등교육인, 대학을 들어갈수있는 고등학교도 탈없이 졸업하고
대학생도 별로 없는 나라에서 대학교도 다니고 졸업장도 따오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엄마

가끔씩 유튜브에 핑크 프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이나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들으면
다들 내옆에서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듣자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만족하며 사는 엄마.
봅 딜런의 노래를 틀려고 하면 귀를 틀어막고 돌아서는 아이들을 놀려준다고 음향을 더 올리는 얄미운 엄마.
록콘서트에 갔다오면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핑크 프로이드의 포스터를 슬쩍 내미는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에 만족하는 엄마.
한국식으로 아이를 키웠는지 더치식으로 아이를 키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아이들이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고 남에게 애정을 배푸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엄마이고 그렇게 교육시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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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는 소리를 들려주는 황금빛 수선화

 

 


봄이
오는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것같아요.
몇일간의 카니발축제도 끝이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뭔가  허전한것 같기도 하고 
기분전환겸 재래식시장이 있는곳으로 발길을 옮겼어요.

작년에 심어놓은 튜립, 히아신스와 나르시스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걸 보고

봄이 오기는 오는구나 생각했지만...
아는이의 집의 나르시스는  벌써 꽃망울까지도 맺고있었어요.

아직  카니발방학이라서 그런지 재래식시장에는 꽃이 별로 나와있지않아

그냥 튜립 한묶음으로 나르시스대신  꽃병에다 꽃아놓으니 그런대로 봄의 향기가 온집안에



나르시스의  꽃말이 자만심, 이루어질수없는 사랑, 고결,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로도 잘알려져 있지만 
봄이오면 만나는 나의 나르시스는 꽃말이나 신화보다는 양희은씨의 일곱송이의 수선화가 정겹답니.

The brothers Four 일곱송이 수선화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양희은씨가 부른노래. 

 

좋아하는 딜런, 제네시스의 노래들과 찬미주의의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
파올로 코옐로의 연금술사, 심지어는 고대미술가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 에코와 니르시스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황금빛 수선화.

황금빛 수선화 대신 황금빛 튜립을 가슴에 안고 그녀의 노래 일곱송이 수선화를 들어며
햇살이 나고 따뜻한 봄날의 환상의 날개를 펼쳐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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