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09 네델란드 동화속의 토끼, 미피[Miffy]를 찾아서... (77)
  2. 2009.03.05 풍차와 화가들 (20)
  3. 2009.01.20 몬드리안[Piet Mondriaan] (4)

미피 혹은 네인찌[Nijntje]라고 불리는 동화속의 토끼

네델란드 어린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동화책이 있다.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 친구 토끼의 이야기.
엄마와 함께 읽는 토끼인형 미피의 동화책이다.
미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있는 이토끼는 네델란드에서는 네인찌라고 불리우며
아이들을 가진 가정이라면 한두권의 이 미피의 동화책이나, 연필, 프즐등을 가지고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그들의 친구, 아이들의 필수품이라고도
말할수 있을것같다.

이 네인찌, 미피는 어린이 동화책의 주인공이며 토끼 네인찌 프르이스(Nijntje Pluis)라고도
이곳에서는 부르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친구 미피는 네델란드 대학도시 우트레흐트에서
1955년 처음으로 탄생되였다. 딕 브루나에 의해...
저자는 글만 쓰는것이 아니라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들도 직접 그린다.
1955년 처음으로 출판되였다는 이 동화책의 동기가 된것이 저자의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로 그가 아들과 네델란드 해변(에그몬드)에서 본 토끼가 이 이야기의
동기라고 알려지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 동화책은 짧은 이야기책으로 아이들이 그림을 보면 금방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수있을만큼 간단하다.
아이들의 세계가 단순하고 순수한것처럼...

딕 브루나집에 있는 상점입니다.
예쁜 티셔츠와 가방등 여러가지가 있더군요.



네델란드에서 네인찌로 알려진 이 이름을 Miffy, Mifi라고도 부르고 독일어로는
Nientje, Ninchen, 스웨덴에서는 Lilla Kanin, 아프리카에서는 Kleintjie, Katryntjie
중국어로서는 Mi fei라고도 부른다는것 같다.

저자 딕 브루나(Dick Bruna, 1927, Utrecht)의 짧은 소개

Hendrik Magdalenus(Dick) Bruna(핸드릭 마그다레누스 부르나)는 1927년
출판업자의 둘째아들로 우트레히트에서 출생했다.
작가, 미술가, 아동문학가로 불리우는 저자는
중학교도 채 마치지 않은채 런던과 파리로 떠났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암스테르담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이것마저 중도에 그만뒀다.
그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로서는 피터 몬드리안, 유명한 네델란드 건축가 -
게리트 리트펠트(Gerrit Rietveld, 그의 건축물 Rietveld Schoderhuis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물에 지정되여있음)와
프랑스화가 마티스등이라고 알려져있다
.

그의 작품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설이 있다고하나
대체로 작품의 그림들이 간단하고 색깔이 밝기때문이라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던것 같다.


딕 브루나집/A Home for Miffy

아이들의 친구 토끼를 그리는 할아버지 딕 브루나는 글만 쓰는것이 아니라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에이즈 파운데이션을 위해 카드도 만들고 어린이들을 위한 우표에
그림도 그린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는 자전거를 타고 우트레흐트의 작업실로
간다고 하니 아이들의 존경의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을것같다.

참고: 입장료, 6유로(성인)
관람시간: 화요일에서 일요일
주소: Nicolaaskerkhof 10, Utrecht, The Netherlands

Dick Bruna(네델란드어: 딕 브루나, 한국어: 딕 브루너)
Utrecht(한국어:우트레흐트 혹은 위트레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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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풍차를 그리는 대가들 [반 고흐, 모네, 몬드리안]


De Hompesche molen, 1702, 네델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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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를 둘러보면 자주 만날수 있는것이 많은 성당과 풍차라고 생각된다.
더치인들의 문화와 건축, 생활양식에 영향을 준 성당건물과 서민들의 일상에 빼놓을수 없었던 풍차.
현재는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있는 이 풍차들이 옛날에는 생활수단의 한 방법으로 곡식을 갈고
이것으로 빵을 만들어 굶주린 배를 채웠다는 사실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의 관광객의 눈을 유혹하는
낭만적인 물체가 아니라 서민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생활도구였을것이다.

왜 화가들이 이 풍차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을까!
이것이 그들에게 무슨 영감을 주엇을까!
가난한집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파리생활중 이 풍차를 화폭에 담고있었다.
감자를 먹는 아이, 거치른 농부의 손등으로 자주 만나는 그의 그림속에는 가난과 허기를 볼수있고
그가 그린 이 풍차속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 애정과 일상에 쫓기던 파리인들의 휴식쳐였던 몽마르트르언덕의
아늑함 같은것도 볼수가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고향에는 강렬한 색채의 해바라기와 같은 밝은 희망과 미래는 없고
오직 배고픔과 사람들의 외면뿐이였다.


The Hill of Montmartre with Stone Quary, 1886, 반 고흐, 반 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Vegetable Gardens and the Moulin de Blute on Montmartre, 반 고흐, 반 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인상파화가 모네는 3번이나 네델란드를 방문했다고한다.
모네가 친구 피사로에게 보낸 편지에 그가 바라보는 네델란드의 전원풍경에 감탄을 금치못한다고 말하는 화가는
붉고 노랑색들로 장식된 수만평의 화초를 가꾸는 밭들과 색색가지의 풍차들의 모습은,  소란과 다람쥐 체바퀴도는
파리의 대도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만났던 네델란드의 푸근한 정경이였던것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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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현대미술사에 빼놓을수없는 화가 - 몬드리안 -
아카데미식 교육을 받은 미술전문가로부터 미술가의 재능이 없다는 평을 받은 몬드리안은
그의 외로움과 절망을 믿을수있는 전원풍경속에서 위로받고자한다.
그가 숨쉴수있고 믿을수있는....
일상의 사실적인 그림으로 통하여 그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고자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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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희 뮤지움 본관과 후관

- 반 고흐미술관 -

 미술관에 전시되여있는 그림도 유명하지만  이 미술관은 건축물로서도 유명하다.
본관과 익스헤비션 윙이라고 불리는 후관을 가지고 있는 미술관 본관은 1963 - 1964년 신조형주의 멤버인 게리트 리트펠트의 작품이다.
그의 생존시 이 건물이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그가 죽은후 그의 동료들에 의해 완성되였고 이곳에는 고흐의 작품들과
그가 생전에 친분을 누리던 인상파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여있다.
주로 전시회가 열리고있는 후관 - 익스헤비션 윙 -은 1999년 개관된 일본인 건축가 Kisho Kurokawa에 의해 건축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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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피터 몬드리안

몬드리안은 1944년 72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화실에 완성 되지않은 빅토리 부기 위기(Victory Boogie Woogie)를 남겨둔채.


(Victory Boogie Woogie, oil paint, 1942 - 1944, Gemeente Museum Den Haag/헤이그 시립미술관, Den Haag, NL)

이 그림은 시각의 축제같은것을 연상하게 한다. 푸른색, 노란색, 빨간, 흰색등이 서로 춤을 추듯이...
흰색이 갑자기 회색으로 바꿔지며 청색이 진한 청색으로 바꾸어지면서 거의 검정색으로 변한다던지.
세로와 가로로 이어져가는 사각모양의 색깔들,  마치 퀴즈나 푸즐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Broadway Boogie Woogie, oil paint, 127 x 127 cm, 1942 - 1942. Museum of Modern Art, NY)

이 그림의 제목은 몬드리안이 직접 붙힌게 아니라고 한다.  작가자신은 이 그림이 이차대전의 승리를
연상시키는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빅토리 부기 우기라고 붙혀진것 같다.
그리고 이 그림은 또한 그의 1942 - 1943년의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Broadway Boogie Woogie)의
연속그림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뉴욕에서 유행하던 재즈,  짧은 음률식의 가로,  세로의 줄등
즉 이 그림이 자유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승리등을 표현한다고 전해진다.
이 그림이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유명하게 된것은 이 화가의 화가로서의 절정시대의 그림이기도 하거니와
화가의 인생을 마감하는 두가지의 세계와의 만남, 추상적인 그림인 동시에 보는이로 하여금 아무런
제시를
하지않은것이 또한 특징이라고도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현재 우리들의 세계를 볼수있을것이다. 
세계의 인종들을 상징하거나 여러종류의 사람을 상징하는 느낌도 이 그림을 통해 찾아낼수있다.

동양인, 서양인, 아프리카대륙의 사람들을
......

Piet Mondriaan(1872 - 1944
)

Pieter Cornelis Mondriaan(피터 코네리스 몬드리안)은 1872년 3월 7일 네델란드 암메스포트(Amersfoort)에서
태어나 학교를 마친뒤 암스테르담에 있는 Rijksacademie(레익스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이 시절에 그는 주로 풍경화와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을 많이 그린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 암스테르담에서 생활하면서 상징주의 화가와 점묘주의 화가들의 영향으로 이에 대한 작품등을
만들었으며 그즈음 프랑스 입체파의 영향으로 파리로 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시대에 파리는 화가들의 "The place to be"가 이유였던것 같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그의 작품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비평을 받았다고 알려지고있다.
몬드리안은 칸딘스키를 Cercle et Carre라는 예술가의 모임에 만난 이후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1938년 독일 나찌정권을 피해 런던으로 가게되고 1940년 뉴욕으로 떠나
그가 생을 마칠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몬드리안을 De Stijl(Neo-Plasticism/신조형주의)의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도 한다.

현재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디자인의 아버지.


(Evolutie/진화, 약 1911, oil paint, Haags Gemeentemuseum/헤이그 시립미술관, Den Haag)

De Stijl(신조형주의)

신조형주의라고 불리는 이 예술가의 모임은 1917년 네델란드 예술가들이(건축가와 화가들) 이곳 레이든(Leiden/이곳에 네델란드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과가 있다)에서 창립되었다. 중요한 멤버로서는
테오 반 두스부그(Theo van Doesburg), 몬드리안, 바트 반 데르 렉(Bart van der Leck) 그리고 유명한 건축가
게리트 리트펠드(Gerrit Rietveld)등을 말할수 있다.

이 조형주의의 특징은 1차색을 사용하며 때때로 검정, 흰색, 회색등을 복합하기도 하고 직선을 주로 이용한다.


[Gerrit Rietveld, Rood-blauwe stoel, 빨강-청색의 의자, 1917 - 1918,
collection Torsten Broeham, Duesseldorf, Germany
)

신조형주의의 아이디어와 주체는 단순함과 추상적인것을 추구하며 빨강, 노랑 그리고 청색을
주로 이용하며  이 신조형주의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1923 - 1924년에 지어진
리트펠드-슈로더집(Rietveld-Scholderhuis)이라고 알려진다.


헤이그에 있는 시립박물관에는 무려 158점의 몬드리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빅토리 부기 우기도 볼수가 있다.  네델란드 국립공원이 있는 호게 벨루웨(Nationaal Park de Hoge Veluwe)에
있는 Kroeller-Mueller Museum(크롤러 뮬러미술관)에서는 주로 1914년에서 1918년 시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의 출생지에는 몬드리안을 추모하고자 몬드리안의 집이 있으며 암스테르담에도 그의 이름을 가진
학교와 거리가 있다.



 몬드리안의 빅토리 부기 우기는 1997년 유로화 직전 82 million(네델란드 굴던)(현 유로 37 million)으로
미국으로부터 네델란드 국립예술협회에서 구입했다. 이 미술품 구입 당시 찬, 반론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거액의 돈을 들여 미완성의
작품을 구입한다는것에 대단히 불만이 많았던 반대론자들의 이야기였다.
실지로 이그림은 네델란드 중앙은행이 유로화 직전 구입하여 네델란드 국립예술협회에 기증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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