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여행기] 88개의 다리가 있는 렘브란트 출생지 레이던[Leiden]


레이던은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불리는 바로크시대의 거장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가 태어나 화가로서 꿈을 키우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그만의 특유한
명암법과 그의 익살스럽기조차 한 작품들을 탄생하게 하여준 곳이 레이던이 아닌가 싶다
.  

 

암스테르담에서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이곳은 2,700여 개의 문화유산을 지닌 도시로서 네덜란드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이 있는
,  대학도시로 유명하고 이 도시에 있는 운하와 운하를 연결하는 88개의 다리를
볼 수 있다
. 자칫 유명한 곳을 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지나치기 쉬운 도시지만 유럽에서는 상당히 잘
알려졌고 지성미가 넘치는 도시다
.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동시에 지닌 도시, 렘브란트의 출생지인 만큼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산책하는 맛도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


풍차의 나라답게 가는 곳마다 풍차를 만난다.
굳이 관광객이 몰려드는 킨더다이크(Kinderdijk, 네덜란드어: 킨더데이크)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1630년 작품인 렘브란트 자화상.
렘브란트의 발자취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화창한 날 네덜란드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유로움, 휴식을 취하며 하루를 즐기는 도시인들의 모습.


시티 게이트(Morspoort),
성채의 도시로 현재 외벽만 남아 있는 이 시티게이트는 이 도시의 상징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도시의 과거를 말해주는 곳이다
.
현재 레이던에는 두 개의 시티게이트만이 남아 있다.


운하와 운하를 연결하는 다리. 88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하루만에 이곳을 전부 구경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면을
보여주는, 이 소박함을 지닌 도시를 방문해 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맛을 즐길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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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네덜란드 여행기] 요새와 풍차를 만나는 흐이스든[Heusden]

 

 

유럽을 방문하다 보면 많은 요새, 마을을 둘러싼 성벽을 만나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방어선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처럼 네덜란드에는
요새
, 방어선을 가진 도시들을 많이 있다.

이 방어선과 요새 등을 둘러보면서 얼마나 이들이 처참하게 자연, 외적의 침입에 대해
고심했던가를 알 수 있다
. 이 흐이스든이라는 곳은 도시라고 말하기에는 규모가 아주
작은
, 거의 동네에 가까운 곳이나 이곳의 방어선은 네덜란드 문화유산 지로 지정되어
있다
. 파괴된 방어선과 요새들은 거의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증설되고 있고  
모든 요새가 완전히 복구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그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보는 이들의 문화 유산지에 대한 애착과 열정은 때로는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이곳에 있던 레스토랑, 반대편엔 주인이 운영하는 작은 맥주박물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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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귀중한 문화유산, 풍차

 

 

네덜란드라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것이 풍차인것 같다.

지금은 관광객이 많이 찾아드는 이 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지만

한때는 서민들의 생계를 이어주는 귀중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전 우리나라의 방앗간과 같은 구실을 한 셈이다.


쿠켄호프(Keukenhof, 한국어: 쾨켄호프)에 있는 베아트릭스여왕의 바빌리온에 있던 풍차


현재 약 1,000개의 풍차가
보존되여 있는 네덜란드의  풍차들은 정부의 지원도
더러는 받지만 많은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 이리하여 네덜란드를
봉사자들의 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 심지어 봉사자들의 활동이 없다면 이 나라는
지탱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

조상들의 문화유산 후세까지 물려준다는 확고한 생각이 없다면 이런일은
유지되기 어려울것 같다
.

예전 시골 할머니집에서 더러는 본적이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요즘도
우리나라에 보관되여 있는지는 알수없지만 한번씩 방문하는 우리나라에선
이런 방앗간 잘 볼수없었던것 같다
.
박물관이외에는

문화유산이라는것이 박물관에서만 볼수있다면 산 문화가 아니라 죽은 문화라고
생각된다
. 그곳에서 볼수있는것은 단지 하나의 물체
아무런 감동을 느낄수 없고 역사도 읽을수없다.

그속에는 조상의 피와땀을 볼수없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문화유산 잘 파괴시키지 않는다. 새로운 건축물보다는
재 건축이 훨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옛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 사람들의 생각들은

이곳에 그들의 역사가 있고 이 역사속에서  미래로 가는 길 배우고자 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De hoop, 1823년에 건축된 풍차



풍차 구경가다 만난 어느 농가



1861년에 건축된 성 안토니우스(St. Antonius)







1867년에 건축된 레오나르두스라는(Leonardus) 풍차

맷돌까지도 보관하고 있네요.

빈센트 반 고흐의 스케치에 자주 등장하는 누넨(누에넨/Nuenen)에서 만난 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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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어느 특파원의 글을 보고..

언젠가 신문에서 "문화비전"이라는 제목의 특파원의 글을 보면서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죽은 문화는 보존하면서 역사 담긴 장소와 건물들 재 개발로 없애는 건 야만"
이라고 글을 쓴 영국 The Time의 서울 특파원 앤드루 새먼씨의 글이다.

(2008년 한국방문중 동해안에서...)

한국을 방문할때마다 나의 젊음이 묻혀있는, 인생의 한 조각을 그곳에 두고 온
내 나라가 서구의 나라 못지않게 잘살게 되였다는것을 친척이나 친구들로부터
수차례 듣기도 하고 실지로 내눈으로도 확인할수 있는 거대한 빌딩,
심심산골에까지 깔려져있는 아스팔트 도로길이건만 그런 변화하는 내 나라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찹찹하다. 마치 입안에 무슨 돌맹이를 씹는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비운과 과거가 새겨져 있는 한조각의 돌, 한그루의 나무들로 엮어진
그런 광경들이 차츰 우리들로부터 사라진다는 것이다.

불도저로 밀어부친 그 역사의 장소에는 비참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는게
대부분. 선진국의 대열에 참여하기 위하여 이런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것일까?
한국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콘크리트 건물에 질식할것이다.
이런 콘크리트 건물속에서는 한국의 역사나 진정한 한국의 모습을 찾아볼수없다.
이것은 그들의 나라에서도 흔히 볼수있는 그저 그런 하나의 형상, 건물일뿐.

(네델란드 수도 헤이그/Den Haag)

유럽에서는 몇 백년이나 되는 건물들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실지로 이런곳에서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불편한점도 많이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건축물들을 아끼는것은 이 건축물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Identity, 과거, 역사, 문화인것이다.
이런것들을 파괴한다는것은 그들의 정체성, 역사를 파괴하는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믿는것이다.

특파원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에게 묻겠다.
외국 관광객이 서울에 오면 한옥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북촌에 더 가보고 싶어할까,
한옥이 껍데기일 뿐인 남산 한옥마을에 더 가보고 싶어할까" 라고

나의 대답;

나는 관광명소로 되여있는, 껍질뿐인 곳을 찾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이나 우리들의 역사는 찾아볼수없는 어쩐지 속이 텅빈 껍데기만 있는
조형물에 정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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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