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지 정확하게 기억할수 없지만 미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것 같다.

20세 초반에 만난 고흐, 고갱, 세잔느 그리고 나이가 좀 들면서 피카소로
(특히 그의 게로니카에), 이십대 후반을 지나면서 뭉크에 푹 빠져살았다.

 

여름방학때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와 끊임없는 사회, 문학에 대해 토론도 하고

(물론 소주와 포장마차 떡볶이, 어묵도 빼놓을수는 없을것같다).

무슨 귀중한 보물인양 다 낧아빠진 전 혜린씨의 책을 벼개머리위에 놓고

보고 또 보고하던 시절

 

네델란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당시 네델란드 미술가라고는 램브란트(Rembrandt),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베르메르(Vermeer),
몬드리안(Mondrian)정도 알고 있었을뿐



출판사: Waanders uitgevers, 저자: Willemijn Stokvis
 

20십년이 지난것 같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크로아티아를방문한적이 있다.
그때 만난 젊은 부부를 통해 또 다른 네델란드 현대미술에
접할 기회를 가질수가 있었다
.
몇번의 전화통화로 안부를 묻곤 하던차 마스트릭트에 사는 그 부부집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때 이 젊은 부부의 집에 걸려있던 그림.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색채.  젊을때 뭉크의 절규를 보고 한동안 넋을
 잃어버렸던것과 같은 충격을 이 그림을 보고 받았던것 같다
.

 


과일접시와 커피잔으로 사용하고 있는 코브라 멤버 코르네유의 작품



내가 처음으로 본 코브라(Cobraa)멤버의 한사람인 코르네유(Corneille)의 그림.

중산층으로 생활하는 이로서는 그런 엄청난 거액의 돈으로 이 화가의 작품을

구입한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없는 일이지만 이 그림으로 인하여 나는

코브라 그룹(Cobra group)도 알게 되였고 또 이 코브라그룹으로 인하여

네델란드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카렐 아펠에 대해 알수가 있었다.

 

Karel Appel:

 

Christiaan Karel Appel(크리스티안 카렐 아플/네델란드어)은 암스테르담
출생으로
200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생을 마쳤다.

활동기간은 1946년에서 2006년이며 화가 그리고 조각가로서 네델란드
현대미술사에서 몬드리안
(Mondrian)과 함께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스타일은 아주 추상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화가 자신은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예술가나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용실을 경영하던 아버지를

도우며 유년기를 보낸 그는 화가의 꿈을 잊을수없어 암스테르담의
레익스아카데미
(Rijksacademie)에 입학했다.

물론 이로 인하여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전해지지만

이 대학시절 아펠은 코르네이유를 만나고 그후 콘스탄트
(이분들은 코브라 창립멤버들이다) 1948
Experimentele Geoep Holland를 창립한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인간, 동물 그리고 해.

강렬한 색채를 주로 사용하고 2차대전이후의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의 대가로

잘 알려져있다. 또한 아펠은 피카소나 마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Dutch Abstract Expressionist라고 그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Cobra는 코펜하겐(Copenhagen), 브뤼셀(Brussels), 암스테르담(Amsterdam)

세 도시의 이름입니다.

네델란드에서 그의 그림을 감상할수있는 미술관;

 

Stedelijk Museum, Amsterdam(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Gemeentemuseum Den Haag(헤이그 시립미술관)

Cobra Museum, Amstelveen(암스텔베인 코브라미술관)

Stedelijk Museum Schiedam, Schiedam(스키담 시립미술관)


 

 

 

이글은 한번 발행된 글이나 발행중 수정하는 바람에 글이 사라져버린 이유로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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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종교가 현대미술에 미친 영적정신이라는 전시회를 보고

 
Nieuw kerk, Amsterdam

현대인에게 종교는 얼마나 중요한것이고 종교가 현대미술가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아윈의 진화론을 교육받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때로는 종교가 우리생활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낄때가 있는것같다.
카토릭신앙과 현대미술은 같은길을 갈수가 없다고 한때 서구사회에서는 거론되기도 했다.
신앙이 서구인들의 생활 그자체였던 그옛날부터 소위 우리가 말하는 현대미술이 탄생된 시절까지도...
종교는 과거를 말하고 모던아트는 미래를 지향함이 그 이유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공사로 소장중인 작품들 - 절대주의의 창시자 - 미술계에서는 이것을 두고
Suprematisme(수프레마티즘 혹은 쉬프레마티즘)이라고 부르지요 - 라고 불리우는 카지미어 말레비치,
네델란드 현대미술의 대가 몬드리안 그리고 샤갈, 클레, 칸딘스키, 크라인, 프란시스 베이컨등 대가들의 종교에
관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던 암스테르담 nieuwe kerk(뉴이어 케크/새성당)에서 본 20세기 거장들의 그림속에는
종교와 현대인의 삶,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볼수가 있었지요.
때로는 전통을 아주 중요시하고 더러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있는 네델란드에서 이런 작품들 그것도 보통
미술관이 아닌 몇백년의 전통을 가진 오래된 성당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는것, 가질수있다는것은 더치인이 아니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실. 올해는 다아윈의 탄생을 맞아 다아윈에 대한 학술세미나, 축제등이 많이있고
그에따른 다아윈의 진화론에 대한 많은 종교인들의 반대의론들도 있지만 말레비치의 그림을 성당에서 감상할수
있었다는것은
나에게는 아주 깊은 의미를 주기도 했어요.

카지미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Kazimir Malevitj, 1878 - 1935]


Kazimir Malevich, Hieratic Suprematist Cross, 1922, Oil on Canvas, Stedelijk Museum, Amsterdam

키에프에서 태어나 1935년 레닌그라드(세인트 페터스부르그)에서 인생을 맞친 폴란드태생의 부모를 두고있는
미술가, 디자인으로 알려진 예술가.
1893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Kursk로 이사하여 다른미술가와 교제하며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찾고자
포비즘과 프리미티비즘에 접근하기도 했다.
1912년경의 말레비치의 작품속에서는 쿠비즘을 찾을수도 있다고...

Kazimir Malevih, Marc Shagall, Rabbi met wetsrol, 1930, Stedelijk Museum, Amsterdam

1910 - 1920년 프랑스에서 입체파와 미래주의파와 친분을 나누기도 하던 그는 이시기 색채로 가득한 화폭의 힘에의해
자아의식에 눈을 뜨게된다. 그가 원했던것은 미술에서의 물체에 대한 완전해방. 형식과 색채는 독립적인 성분이고
이형식과 색채를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서 귀착시키지 않는다고한다. 1911년 파리로 간 그는 기하학적인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이로 인하여 새로운 - 눈에 나타나지 않는 스타일, 어쩌면 공허하게조차 느껴지는 -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가 1913년에 그렸다는 입체주의 스타일의 그림, 흰바탕에 검정사각형, 이그림이 그의
절대주의로 향하는 길이된다. 단순하고 자로줄을 그은것같은, 순수한 색채.
그가 말하는 절대주의. 그의 절대주의의 세계가 시작된것이다.
예술이라는것은 새로운 형식을 표현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것같다.
그것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거나, 누군가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한다는 그런문제점을 떠나서...


공사중이였던 시립미물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말레비치 소장품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는 소련을 제외하고는 말레비치의 작품을 제일 많이 소장하고있는 미술관이다.
장장 68개의 작품들을...
대부분의 이작품들은 50년대 미술관이 구입한 작품들로서 이중에서 몇개의 작품들이 부당한 경로로 인하여
이미술관이 소장하게 되였다. 이로인하여 시립미술관과 말레비치 유족들사이에는 근 4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법정투쟁을 하였으나 2008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5점의 작품들을 유족과의 협의로
유족들에게 되돌아갔다.  

 


새성당과 암스테르담 관광카드출처: www. amsterdam.com



제가 사용하고있는 외규장각 도서환수라는 위젯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읍니다.
부당하게 빼앗긴 우리들의 문화유산. 우리들의 과거, 역사가 숨겨져있는 이 문화유산들을 이제는 당당하게
되찾아야할때라고 생각되는군요. 의무가 있으면 권리도 있는법.
우리들의 유산을 우리들이 찾는권리 이젠 행사할때가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분들이 블로그를 사용하고 계시는지 그수는 정확하게 알수없어나 만일 이블로그에
이런 "문화유산 되찾기캠페인" 위젯을 단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입니다.
소리없는 시위지만 언젠가는 이시위가 바다를 넘고 우주를 한바퀴쯤 돌아서 우리들의 문화유산이 되돌아
오는날이 있지않을까 생각되네요.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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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레익스뮤지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레익스뮤지움, 암스테르담

2008년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델란드 국립미술관에 8601의 다이어몬드로 만들어진 영국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For the Love of God"가 전시되였다.
18세기 해골에다 백금을 덮어세우고 그 해골에다 어마어마한 수의 분홍색의 다이어몬드로 장식한...
레익스뮤지움이라면 미술을 아는 사람들이면 다 알고있는 유명한 램브란트의 그림이 걸려져있는 미술관.
이 미술관에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작품을 전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켰고
이 미술가에 대한 찬, 반론의 의견들로 이 전시회가 한때는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했다.
현대인조차 이해하지못하는 현대미술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밤에 본 그의 해골을 보는순간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기도했다.


데미안 허스트/For the Love of God

그의 말로는 이 작품을 75만유로에 처분했다고한다.
만일 그의말이 사실이라면 생존해있는 미술가로서 최고의 가격으로 경매한 최초의 예술가라고
미술학계에서는 말하고있다.
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서"에 사용된 다이어몬드에 허스트는 14만파운드를 지불했다고도 하니
어쩐지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켓팅의 천재쯤이 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페터 푸스/For the Laugh of God

그의 폴란드 동료 페터 푸스는  이 허스트의 작품과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었다,
허스트가 그의 작품을 "For the Love of God" 라고 부르는 반면 페터 푸스는
그의 모조품을 "For the Laugh of God" 라고 부른다.
그는 또한 허스트의 백금과 다이어몬드 대신 플라스틱과 유리를 사용하고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금송아지

이년전부터 프란시스 베이컨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 그가 외면하던
회고적인, 과거를 추상하는 작품을 만들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과 함께 떠올리는 빅 비지니스.
이 빅 비지니스의 상징인 그를 80년후반, 90년대 전반기에 형성된 Young British Artist의
대표자라고 불렸던것같다. 이 YBA의 중요테마가 아이로니, 타락 혹은 퇴페된 사회나
정치적인것이였다니 반전데모, 플라워파워, 자본주의에 대한 학생운동도 사라져버린
갈팡질팡하던 시대에 또 다른 형태의 미술을 만들어냄으로서 상업적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었나보다.
그들의 브랜드인 YBA가 눈깜짝할사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였으니...


데미안 허스트/Anatomy of an Angel

그가 인터부하는것을 텔레비젼을 통하여 보면서 느꼈던것은 에술가라기보다는 팝스타같은
느낌을 버릴수가 없었다는것이다.
U2의 보노와 비교하던 한 비평가의 글때문이였는지는 알수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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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em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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